[기고] 신임총장은 외부에서 투명하게 초빙해야
[기고] 신임총장은 외부에서 투명하게 초빙해야
  • 권오대 / 전자 교수
  • 승인 2003.05.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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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여름, 대학은 새총장의 선임을 기다렸었다. 대학의 재도약을 염원하던 교수들은 배신의 가을만을 낙엽처럼 맞았다. 겨울은 갔으나 교수들의 마음은 아직 얼음이다. 다시 맞은 이 계절은 여름이지만, 대학인의 마음에 여름이 다시 찾아온 것은 아니다. 저기 시계탑의 바늘은 돌아가지만 대학인의 시계바늘은 멈춰있다.

이제 재단은 새총장 선임을 6월까지 결정, 9월 신학기에는 신임 총장이 집무하도록 준비한다는 계획을 대학본부를 통하여 교수들에게 전달하였다. 찾는 방법은 명시되지 않았다. ‘일단’ 외부 총장을 찾을 것이라고 한다. 1년을 허비한 재단이 한 달만에 찾는다는 것이다. ‘일단’은 ‘반드시’와 같지 않다. 한 달 후 대학인의 시계 바늘은 어느 시각에 맞춰질 것인지, 어떻게 움직일 것인지 아직 분명하지 않다. 오래 기다린 만큼 그 결과에 대한 기쁨이 배가될 것인가? 그래서 우리 대학은 약 10년의 고진감래, 재도약의 꿈을 실현할 것인가? 아니면 장고 끝에 나온 것이 다시 또 악수일 것인가?

지금 우리 대학은 상처뿐인 영광, 낭랑 17세 사춘기 가출대학이다. ‘이공계기피’의 사회에서 우리 학생들은 더러 3층 빌라에서 보따리를 싸고 서울로 가출한다. 천릿길 ‘참새 아빠’ 또는 수만릿길 ‘기러기 아빠’ 교수들도 가출한다. 가족단위 가출, 또는 고층합숙소에 독신 귀양으로 역가출 당한다. 교수들은 논문에 눈을 맞추고 연구비 마련에 혈안인데 학생들은 교육에 불만이다. 재단 기금이 수천 억이고 500억짜리 도서관이 새로 솟았는데, 학생들은 식비 인상에 불만이고 교수들은 왜 재단전입금이 불지 않는지에 불안하다. 이 오리발 대학 가족들은 서로 코드가 전혀 맞지 않는다. 그만큼 대학은 위기다.

오늘 우리들의 자화상 아닌가? 지난 8년의 ‘고생과 기대와 허탈’에 지친 교수들은 생각하였다. 75%의 교수들이 평의회 설문에 응답한 바, 이제는 ‘반드시 외부 총장’이라는 모험적 승부수를 던져야한다고 결론지었다. 교수들은 이제 힘들어 하는 포스코의 부담을 줄여주는 대신 밖으로 재도약할 능력을 가진 ‘외부총장의 초빙’이라는 대안을 관철시켜보자는 것이었다. 외부로의 재도약이 쉽지는 않다. 그래도 포스코가 건재한 동안 우리 대학은 필경 가야할 길을 힘차게 내딛어야 한다. 대학의 위기가 기회일 수 있는 가능성은 바로 이것이다.

그러나 작년 여름 대학은 외부 총장을 초빙하지 못하였다. 이제 어떻게 해야 외부에서 훌륭한 새총장을 급하게 잘 뽑을 것인가?

우선 모든 주요과정이 투명해야 함이 철칙이다. 우선 교수들의 총장추천위원회(총추위)부터 절대로 투명해야 한다. 교수들에게까지 한 일을 보고하지 않고 비밀에 붙인다는 발상은 도대체 아무런 설득력이 없다. 총추위는 재단과의 수차례 회동 결과들에 불만이 많다고 했다. 필요하다면 그런 사실까지도 명백히 교수들에게 알려야 한다. 총추위가 엉뚱하게 함구로 일관하기 때문에 일부 교수들까지 오히려 총추위를 심하게 비난한다는 걸 직시해야 한다. 일례로 재단 이사장은 지난 가을 왜 S씨를 선임하지 못하였는지 교수들에게 분명히 설명하였다. 그런데도 총추위는 이에 대해 설만 무성하지 공식적 설명 한마디도 없다. 그럼 교수들은 누구를 의심하겠는가?

교수들은 재단을 더욱 의심하는 것을 재단 스스로 잘 알 것이다. 왜 1년 전에 변형윤 총선위원장의 갑작스런 사퇴가 발생하였는지, 왜 총장부터 선임해야할 재단은 오히려 본부보직자 임명권만 거두어갔는지, 재단은 교수들을 시원하게 설득하지 못하였다. 그 선임지연 이후 발생한 일련의 지난 가을 학기 사건들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이상과 같은 내홍이 재연되지 않고 재단이 교수들의 불신을 사지 않으려면, 재단이사들 위주로 구성된 총장선임위원회(총선위)도 당연히 교수들에게 투명해야 한다. 이 나라에, 아니 이 세상에 우리 대학같이 후보 이름까지 감추고 비밀스레 총장을 정해버리는 대학이 있는가? 없다. 그런 밀실 행정으로 대학이 잘 되지도 않았고 오히려 대학을 망치는 화근이 되었다. 우리가 본딴 총장추천제를 시행하는 미국도 그렇지 않다. 비밀을 요하는 후보는 불이익을 받는다. 우리도 그래야 한다.

포항공대 총장 후보가 되는 것 자체를 명예로 여길 수 없어 쉬쉬하는 자들은 후보로 선정할 필요가 없거나 우선순위를 낮추어야 한다. 꼭 비밀을 요하는 후보는 혹시 선임된 후 공개되었을 때, 이미 공개적으로 거론된 후보들에 비하여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즉, 공개 후보들을 제치고 비밀 후보들이 갑자기 부상했을 경우, 대학구성원들의 흔쾌한 동의를 얻지 못하면 부임할 필요도 없이 용퇴한다는 불이익 정도는 분명히 있어야겠다.

그리고 교수들은 반드시 3~5명쯤의 최종후보들을 검증해야 한다. 시간 단축과 효율성을 위하여 그들을 대통령 선거처럼 동시 초청하여 그들의 비전을 비교하는 것도 고려할만한 방법이다. 이러한 초청 토론 또는 강연회들은 대학 구성원들의 큰 관심을 불러일으킬 것이고, 바로 이것이 대학의 실추된 사기를 회복하는 지름길이 되기도 할 것임을 인식해야겠다. 그러한 선임과정의 상당부분을 대학 구성원들에게 돌려주는 만큼 대학은 응집력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각 구성원들은 총장 선임과정에 스스로 참여하였다는 긍지와 책임감을 갖게 된다. 그렇게 대학의 정신적 시계탑은 재깍재깍 다시 움직이기 시작할 것이다. 너무 오래 멈춘 우리 마음의 시계가 더 이상은 멈출 수 없다는 이 위기감을 어서 해소하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