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텍칼럼] 영향력 높은 연구를 위하여
[포스텍칼럼] 영향력 높은 연구를 위하여
  • 이재성 / 본지 주간, 화공 교수
  • 승인 1970.01.0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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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에는 우리대학 교수들의 연구의 질을 자랑할 수 있는 반가운 소식들이 잇따라 나와서, 마침 화창한 봄을 맞아 활짝 핀 영산홍과 함께, 총장 선임지연으로 침체되어 있던 캠퍼스 분위기를 모처럼 밝게 만들었다.

화학과 박수문 교수는 국내 과학자로서는 처음으로 미국 과학정보연구소(ISI)로부터 ‘최고 논문 피인용 저자’로 선정되어 이 연구소의 인터넷 사이트에 이름을 올렸다. 세계과학논문색인(SCI)의 데이터베이스 역할을 하여 과학계에서는 가장 친숙한 이 기관은 세계의 과학기술 논문 중 인용이 많이 된 논문의 저자들을 조사하여, 자연과학, 의학, 공학 등 21개 분야별로 100~200명씩을 소개하는데 박 교수는 전도성 고분자를 포함한 전기화학 관련 논문들이 전세계 과학자들로부터 3천여 회의 인용을 받아 재료과학 분야에서 선정된 것이다.

학술정보원에서 집계한 2002년도 국내 대학들의 논문발표 결과에서도 우리대학은 논문의 질을 나타내는 지수인 논문당 평균 영향지수, 교수 1인당 평균 다인용 논문 수에서 압도적인 국내 1위를 고수하고 있다.

또 지난 4월22일자 동아일보는 수학, 물리, 화학, 생명 등 자연과학 학과 교수 들 중 SCI 피인용 수 1천회를 넘긴 교수의 수가 서울대 16명, 우리대학 13명, 카이스트 9명이라고 보도하였다. 물론 기사제목은 엉뚱하게도 “서울대 교수 노벨상 가능성 높다”라고 부쳤으나, 교수의 숫자가 가장 적고 연구의 역사도 가장 짧은 우리대학에서 나온 이 결과는 우리대학 교수들의 연구역량이 타 대학들에 비하여 월등함을 나타내고 있다.

연구자로서 가장 영광스러운 것은 자기의 연구 결과가 세계의 다른 연구자들에게 읽히고 과학계 뿐만 아니라 우리사회에 전반적인 영향을 주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 과학계나 대학사회, 그리고 연구비를 지원하는 정부기관에서는 연구의 질보다는 논문의 숫자로서 연구자를 평가해 왔다. 그 결과 우리나라 모 대학은 교수 1인당 논문 수에서 세계 1위를 기록한 학과도 있다. 그러나 그 학과의 논문 한 편당 영향지수는 외국 일류대학들보다 훨씬 낮은 것은 물론이고 국내 대학들 중에서도 그저 그런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이것이 논문의 숫자 드라이브를 했을 때 생기는 우스꽝스러운 현상이다.

우리나라가 대학원 교육과 연구수준이 열악했던 20-30년 전에는 연구를 장려하는 비상 수단으로서 논문 숫자를 따졌던 것은 필요했다고 할 수 있겠으나 그것이 지금에까지 이르고 있다는 것은 국제적인 기준으로 보면 부끄러운 이야기이며 과학발전에 오히려 역효과가 되기도 한다. 한 과학자를 어느 분야의 대가로 만드는 것은 논문의 절대적인 숫자가 아니라 그 논문들이 미치는 영향력인 것이다. 어느 경우는 그것이 논문 한편인 경우도 있다.

다행히 우리대학은 논문의 숫자를 교수 평가의 최소기준으로 평가하는 탄력적인 인사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우리대학이 위에서 언급한 연구의 질적 수준을 나타내는 지표에서 잘하고 있는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으리라 본다. 그러나 우리대학마저도 아직도 교수의 업적을 볼 때 발표논문 수에 가장 먼저 눈길을 보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대학이 국내 최고를 넘어 세계적인 대학이 되기 위해서는 이제 논문 숫자에 연연하는 것으로부터 과감하게 탈피하여야 한다. 영향력이 높은 좋은 연구결과는 연구자가 혼신을 다 바쳐 한 우물을 파면서 매진할 때 나온다. 제도적으로 이러한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대할 발전을 책임지고 있는 대학당국의 책임이다.

SCI 논문이니, 영향지수, 피 인용수니 하는 소위 ISI 지표들도 국제적으로 공인된 객관적인 것이기는 하나, 그것을 맹목적으로 적용할 경우 원래 취지와는 달리 왜곡된 평가가 될 수 있다. 특히 공과 대학의 경우 이러한 지표로 나타낼 수 없는 것 즉, 산업계나 실제 사회에의 기여가 더욱 중요한 경우가 많다.

이러한 지표들의 한계를 이해하고 단지 참고자료로 활용하여 결국은 정량적인 것보다는 정성적인 평가가 우리대학에는 적합하다고 생각된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우리 대학을 세계적인 대학으로 만드는 것은 연구 결과물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그 분야에서 인정받고 있는 연구자가 많아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