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논단] 포스테키안 제 목소리 내기는 어떻게 가능한가
[독자논단] 포스테키안 제 목소리 내기는 어떻게 가능한가
  • 임강훈 / 신소재 01
  • 승인 2003.04.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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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25일 화요일, 오후 2시에 있을 이라크전 파병안 통과를 위한 첫 국회 본회의를 앞두고 전국에서 반전/파병반대를 외치는 각종 시민단체 및 대학총학생회를 비롯한 다양한 층의 사람들이 국회의사당 앞으로 모여들었다. 수백 명의 시민들이 몇 배가 되는 숫자의 전경들에게 둘러싸인 가운데 상당히 격렬한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던 이날,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 속에는 작은 수였지만 포항공대 학생들도 있었다. 그런데 우리학교 학생들의 시위모습은 다른 사람들과는 사뭇 달랐다. 다른 단체나 학교에서 온 사람들처럼 소속단체 및 출신학교를 나타내는 화려한 깃발이나 현수막도 없었고, 소박하게 준비해간 파병반대 메시지를 담은 푯말에도 포항공대에서 왔다는 표시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물론 그것은 학교의 이름을 내세워 온 자리가 아니었기에 당연한 모습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함께 지방에서 올라온 타대학 학생들이 취재 온 기자들 앞에서 당당히 이름을 밝히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고만 있어야 했을 때, 우리는 왠지모를 부끄러움과 아쉬움을 함께 느낄 수 밖에 없었다.

다음 날 학교 내에서도 반전 메세지를 표출하기 위해 78계단 공고가 만들어지고, 촛불을 이용한 작은 이벤트도 행해지기도 하였다. 하지만 결국 이러한 목소리들을 한자리에 모아 외부로 표출해내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크다. 실제로 몇몇 학생들이 자발적으 모여 학생들의 목소리를 한 곳에 모으기 위한 집회를 계획하기도 했으나, 결국에는 여건 조성의 어려움으로 무산되고 말았다. ‘침묵하는 지성’의 굴레를 벗어나보려는 노력은 일단 몇 번의 작은 시도로만 끝나버린 셈이다.

파병안 결정은 결국 많은 논란 끝에 국회를 통과했고, 이제 이라크 전쟁은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국내의 반전여론은 뜨겁다. 지난 월드컵 응원과 여중생 사망사건 촛불시위를 통해 새롭게 변화하고 있는 시민들의 시위문화와 사회참여 의식은 이번 반전시위를 통해서 다시 한번 그 위력을 발휘하였고, 비록 파병 결정을 막지는 못했지만 국가 정책에 대한 시민들의 뜻을 알리려는 노력은 멈추지 않고 있다.

그런데 우리학교는 어느새 다시 외부로부터 동떨어진 세상으로 돌아온 듯 하다. 한때 BBS를 가득 메우던 반전 열기도 어느새 식어버렸고, 곳곳에 보이던 반전 메시지를 담은 공고들도 어느새 자취를 감추었다. 중간고사 기간이 다가와서 일까. 하지만 사회에 목소리를 내고자하는 학생들의 발목을 잡는 것은 빡빡한 학업로드 뿐만은 아니다.

우리대학의 교칙에는 ‘학생활동 제한’ 조항을 통해 네가지 항목에 대해 학생들을 징계할 수 있음을 규정해놓았다. 네가지 항목 중 두가지는 학내외의 정치활동에 대한 금지이며, 다른 둘은 대학기본기능 수행방해 및 학내질서 유지에 위배되는 행위에 대한 금지이다.

물론 세계최고의 연구중심대학이라는 건학이념을 추구하는 우리대학에서 개교 당시 우리나라의 어지러운 정치적*사회적 여건 속에서 학생들의 학업 환경을 지키기 위한 조항의 필요성을 전혀 납득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여기서 단순히 정의해버리는 ‘정치활동’이 과연 현재 사회에서의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 사회참여와의 명확한 구별성을 가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항이라고는 하지만 이공계의 위기가 계속되고 있는 지금 오히려 포항공대 학생들을 사회의 비주류로 몰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대학이 추구해야 할 바가 과학기술의 증진을 통한 국가 경쟁력 향상 및 세계평화에의 이바지라면, 우리학교 학생들의 가장 중요한 역할 역시 끊임없는 학문의 정진임은 의심할 바가 없다. 그러나 학생들의 역할을 일찍부터 사회에 대한 참여로부터 억압하고 격리시킨다면 그것은 원래의 목적을 잃어버리고 원래의 뜻마저 잊어버리는 일이 아닌가 한다.

“양심이 결여된 학문은 발전할 수 없다.” 1999년 학생 정치활동 금지에 대한 신입생 서약서 폐지와 함께 13대 총학생회에서부터 추진해오고 있는 명예제도의 핵심정신이다. 이때 서약서는 폐지되었지만, 학생활동 제한에 대한 조항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정치활동 금지’라는 모호한 조항이 이공학도로서 학생들의 양심적 목소리마저도 막고 있다면 이는 하루 빨리 수정, 폐지되어야 할 것이다. 이공학도로서 사회에서의 제자리 찾기는 그 다음에서야 이루어질 수 있을 우리의 숙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