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계단] 침묵의 ‘봄’
[78계단] 침묵의 ‘봄’
  • 황정은 기자
  • 승인 2003.03.0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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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은 단순히 교육이 이루어지는 장일뿐만 아니라 사회와 흔히 환경이라고 부르는 캠퍼스 주변 생태계 그리고 자연과 활발하게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곳이다. 캠퍼스와 환경 사이의 물질과 에너지의 흐름을 살펴보면 캠퍼스는 대량의 물, 에너지, 음식과 공산품을 받아들이고 각종 폐기물과 폐열을 내놓는 소비 주체임을 알 수 있다. 우리 학교는 다른 종합대학에 비해 규모가 작음에도 불구하고 1년에 683,555톤의 물, 61,582,168kWh의 전력을 소비하고 655톤의 쓰레기를 배출한다.(가속기연구소 포함, 2002년 기준) 또한 공대라는 특성상 폐산, 폐염기, 중금속, 유독성 유기화학약품 등 환경에 심각한 영향을 끼치는 폐기물을 대량으로 발생시킨다. 더군다나 마스터플랜에 맞추어 캠퍼스를 확장시키고 새 건물들을 짓는 단계에 있기 때문에 환경과 더욱 큰 상호작용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내 구성원들의 환경에 대한 인식이나 구체적인 실천은 여전히 미약하다. 본부가 적극적으로 환경 정책을 만들어 시행한 적도 없고, 기존 건물들은 물론 새로 지은 청암 학술정보관도 친환경성에 대해서는 거의 고려하지 않은 채 건설됐다. 절전이나 절수, 쓰레기 분리수거 등 환경보전을 위한 기본적인 실천도 적극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환경공학부가 있어 학문적으로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지만 모든 학내 구성원을 아우르는 기본적인 환경 교육은 전무한 상황이다.

학생 차원에서는 환경 운동을 추진하는 동아리나 자치단체가 없고, 이로부터 짐작할 수 있듯이 우리 학교 학생들은 장래에 환경에 대한 막대한 영향력을 쥐게 될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환경 문제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관심이 없어 보인다.

우리 앞에는 당장 시작해야 할 화급한 문제들이 놓여있다. 무엇보다도 학교 본부가 환경 정책을 만들어 시행하는 노력을 보여야 할 것이며, 학내 구성원들을 대상으로 환경 교육을 시작해야 한다. 모든 학내 구성원을 대상으로 안전 교육과 더불어 환경 소양 교육을 실시하는 방안도 있을 수 있다. 그리고 마스터플랜을 완성해나가는 과정에서도 환경에 대한 배려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테면 건물 하나를 에코 빌딩을 테마로 하여 건설한다면 여러 측면에서 이익이 될 수 있다. 태양광이나 수소에너지와 같은 청정에너지를 사용하고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하며 폐기물의 배출을 최소화하고 자연친화적인 재료를 사용하는 등 복합적인 에코테크놀러지를 적용한 건물을 짓는다면 환경을 덜 해칠 뿐만 아니라 학교 이미지 제고에도 큰 역할을 하리라 본다.

또, 독성 폐기물을 제대로 처리 하지 않고 무단 방출하는 등의 반환경적 행위가 캠퍼스 내에서 자행되지는 않는지 감시하고 시정을 요구하는 환경 감시단을 학내에 조직하는 일도 필요하다. 이와 같은 일을 하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만큼 학부생 보다는 교수나 대학원생이 주축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움직이기 쉬운 구성원은 학생들이고, 큰일은 작은 것부터 시작하는 법이다. 거의 대부분의 메이저급 종합대학에는 여러 개의 환경운동 동아리가 무분별한 캠퍼스 확장 반대, 반환경적인 골프수업 반대 운동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우리 학교에도 언젠가 환경운동 동아리가 구성되어 학내에 녹색 파동을 일으키는 진원의 기능을 해주기를 기대한다.

동아리는 없지만 당장 올해부터 축제를 준비하고 운영할 축제 준비위원회는 일회용품 사용을 최소화하고 쓰레기를 줄이는 등의 환경에 대한 배려가 있는 축제를 준비해주기를 바란다. 또한 최근의 연고전에서는 연세대의 환경운동 동아리들이 연합하여 무절제한 낭비와 대량의 쓰레기 발생을 방지하고 환경 의식을 고취하기 위한 서명운동과 언론을 통한 홍보를 했다고 한다. 올 가을에 우리 학교에서 개최될 제 2회 포항공대-카이스트 대제전도 환경 친화적인 축제로 만들기 위해 연고전에서의 연세대 환경운동 동아리들의 연합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앞서 언급한 제안들은 모두 기자의 짧은 생각의 산물에 불과하다. 그러나 생산적인 논의를 적극적으로 시도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실험해 나간다면 우리 학교의 환경운동은 사회와 환경에 책임을 다하는 과학기술인을 양성하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룩하는 준거점으로서 의미있는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학인은 시대정신을 읽어내고 실천할 줄 알아야한다. 우리에게는 학생의 정치적 활동을 금지하는 학칙 때문에 지난 시대의 도도한 역사적 물결이었던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지 않은 역사가 있다. 우리 학교가 이미 새 시대의 커다란 물결로 다가오고 있는 환경운동의 물결에서도 발을 빼고 구경꾼으로 남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