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논단] 열린 생각, 열린 대학
[독자논단] 열린 생각, 열린 대학
  • 김성재 / 화공 박사과정
  • 승인 2002.12.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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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개교기념일에 즈음하여 “오랫동안 학교 구성원으로 계신 선배”로서 하고 싶은 말을 학교 신문에 써주었으면 한다는 전화를 받았다. 포항에서 월드컵을 세 번이나 보고 올림픽을 두 번이나 봤지만 난 아직도 학교에서 인사 받을 사람들보다는 인사할 사람들이 많다. 나보다 더 오래 학교에 있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내가 후배들을 잘 몰라서일까. 난 아직 서른도 되지 않았다. 인생을 대충 일흔까지 산다고 하면 난 아직 인생의 반도 살지 못한 풋내기이다. 당연히 어디서든지 평균적으로 내가 인사해야 할 사람이 많지 않을까? 학교에는 나보다 오래 있지는 않았지만 내가 인사해야 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이 질문에 우리들은 “학교 다니는 사람들 중에...” 혹은, “학생 중에...”라는 생각의 제한을 무의식 중에 가지고 살며 자신의 생각을 좁게 만들고 있지는 않은가?

내가 입학했던 1994년에는 개교기념일이 토요일이었고, 95년에는 일요일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이 학교는 개교기념일에 쉬지 않고 일부러 수업이 없는 휴일로 하는 곳이구나 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그 때 내가 왜 그렇게 생각했었는지 지금도 알 수 없지만 결국 그 생각은 3학년 때 화요일에 개교기념일이 되는 것을 보고 나서야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포항공과대학교하면 아직도 사회에서는 상아탑의 이미지가 남아있다. 하지만 상아탑은 원래 “속세를 떠나 오로지 학문이나 예술에만 잠기는 경지”라는 비평적 의미가 다분한 사전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정말 포항공대의 존재 이유가 오로지 학문만을 위한 것일까? 연구중심대학이라는 모토가 상아탑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일까? 내가 직접 겪어본 바에 의하면 그 대답은 “NO”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학부 4년과 그보다 더 길었던 5년 동안 대학원에서 소위 학자의 길을 갔고 아직도 그 길을 가고 있는 중이다. 그 동안 포항에 있었던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은 인정하는 바이지만 누군가 나에게 포항 상아탑에 있는 대단한 사람이라고 하면 나는 화를 낼 것이다. 포항공대가 연구중심 대학을 표방하고 있지만 다른 주변 사람들은 신경도 쓰지 않고 자신의 공부와 연구에 몰두하는 그런 상아탑이 되어서는 안 된다. 숙제의 양이나 논문 제출 시기에 쫓기다 보면 한 학기, 1년은 금새 지나가버린다. 그러다 보면 어느 사이에 졸업이 다가오고, 남는 것은 웬만한 성적의 학점과 논문 정도가 될 것이다. 그리고는 일류대학 졸업생이라는 꼬리표를 가지고, 그 꼬리표가 인생의 성공을 보장한다고 착각하면서 사회로 나간다.

우리 대학 출신들의 일 처리 능력은 최상위권이다. 몇 달 전에 실시된 전국 대학 평가에서도 1위를 하였다. 하지만 무엇인가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사회적 인지도 부분의 순위가 다른 순위보다 매우 낮았었고 그 이유를 나름대로 생각해봤는데, 그 이유는 오래되지 않아 잘 알려지지 않은 학교이기 때문이 아니라 일은 잘 하지만 생각을 크게 하지 못하고 제한이 있다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지금도 내년 기숙사 자치회장 후보가 없다는 사실을, 총장님이 결정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해 걱정하고 있는 학생이 얼마나 될까. 학교에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 나라에 신경 쓸 수 있겠으며 나라를 위하지 않는 사람이 인류를 위한 일을 할 수 있을까.

지리적인 위치가 불리하다는 가장 큰 걸림돌과 더불어 기숙사 생활이 주는 해방감에 의해 학교에서만 생활하려는 습관이 결국 활동 영역을 좁게 만든다. 심지어 이 좁은 학교에서조차 연구실과 기숙사, 식당만을 오가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생각의 제한으로 이어진다.

이런 글을 쓰고 있는 나 조차도 1년에 학교를 떠나 있는 날이 열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로 학교에 계속 있는 편이다. 나 자신도 생각이 좁다는 것을 느끼고 벗어나고자 노력하기 시작한 것이 얼마 되지 않았다. 거창하게 해외 여행을 간다거나 하는 큰 일을 벌이자는 것은 아니다. 부모님께 안부 한 번 더 여쭙고, 가족을 한 번 더 돌아보고, 체육관에 찾아가 역기 한 번 더 들어주고, 학교 사람들 이외의, 나와 비슷한 환경에 있는 사람들 이외의 사람들을 만나는 간단한 것들이 상아탑에서 살아가는 학자라는 생각의 제한을 없앨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환경, 다른 분야에 있는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사는가, 그 사람들의 입장은 어떠한가를 이해해야 나만의 연구가 아닌 “과학과 국가와 미래를 생각하는” 남을 위한 연구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생각의 제한을 없애고 넓은 생각을 갖자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그러한 당연한 것을 지키고 사는 생활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교통 신호를 지키는 것, 길거리에 휴지를 버리지 않는 것, 생각에 제한을 두지 않는 것, 이러한 얘기는 당연한 것들이지만 실상 너무나 지키기 어려운 일들이다. 학생식당에 걸려 있는 명예제도에 관한 글도 당연한 것이지만 잘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곳에 걸려 있는 것이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늘 처음처럼, 대학 신입생 때의 부풀었던 초심으로 돌아가 당연한 것들을 지켜가면서 포항공대 생활을 해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