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동산] 스승의 자격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노벨동산] 스승의 자격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 조길원 / 화공 교수
  • 승인 2002.12.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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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일요일 오전에 박 선생님께서 전화를 주셨다. 벌써 최근 일년 사이에 서너 번 이상 전화를 주신 셈이다. 몇 번 학교 사무실로 전화를 하셨으나 학교로 해서는 연결이 쉽지않은 것을 아시고 일요일 오전에 집으로 전화를 주신 것이다. 이 분을 생각하면 스승이란 모름지기 어떠해야 하는지를 느끼게 된다.

박 선생님을 처음 만나 뵌 것은 벌써 삼십년이 훨씬 더 지난 중학교 일학년 때이다. 그때 우리는 초등학교 육학년까지 중학교 입시공부를 하다가 7월 중순 갑자기 중학교 입시가 없어진 중학교 무시험 진학 첫회로 나는 그때까지 이름도 들어보지 못하던 어느 학교에 배정되었다. 이 학교는 성경과목이 정규수업 과목으로 있고, 매주 한번씩 전교생이 모여 예배를 보는 기독교 학교였다. 박 선생님께서는 우리 일학년들에게 작문을 가르치셨는데 수업시간에 들어오시면 작문에 관한 것은 시간의 반 정도 할애하시고 나머지는 우리에게 중학생 시절을 어떻게 보내야하며 기독교를 믿고 신앙생활 하는 것이 인생을 살아가는데 특히, 우리같은 어린 나이의 학생시기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를 말씀하시곤 하셨다. 이 분은 당신 스스로가 학창시절에 나태하고 게으른 생활을 하고 열심히 하지 못하신 것을 후회하시고 늦게 기독교 신앙을 갖고 모든일에 감사하며 열심히 생활하고 계신다는 당신 스스로의 이야기를 하시며 우리들에게 신앙생활을 하며 학창시절을 소중히 보낼것을 역설하셨다.

이때 선생님께서는 아침과제라는 ‘과업’을 우리에게 주셨다. 아침에 다른 학생들보다 30분 일찍 일어나서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세가지 일, 즉 신앙심을 기르기 위해 기도하며 묵상하고, 지력을 기르기 위해 공부하고, 체력을 기르기 위해 운동하는 일 등을 매일 아침에 30분씩 할 것을 우리에게 주문하셨다. 그리고 수업시간에 들어오시면 가끔씩 모두 눈을 감으라고 말씀하신 다음, 오늘 아침 아침과제를 행한 사람은 손을 들라고 하시곤 하셨다. 또한 선생님께서는 각 학급에서 성적이 뛰어나며 신앙심이 깊은 듯한 학생들을 모아서 모임을 만드셔서 토요일 오후에 예배를 보며 우리들의 신앙심을 북돋우시며 우리들에게 삶의 지표를 주시려고 노력하셨다. 나 또한 이 모임에서 선생님의 총애를 받으며 삼년동안 신앙생활을 하며 중학생활을 마치고 원하는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다. 선생님께서 지도하시던 모임의 학생들의 대부분이 원하던 고등학교에 진학하였고 선생님께서는 하시는 일에 큰 보람을 느끼셨으리라 생각된다.

내가 중학교때 기독교 신앙을 지니게 된 것은 전적으로 박 선생님의 영향이었다. 고등학교에 들어와서 나의 신앙은 흔들리기 시작하였으며 나는 이학년 여름 이후 교회에 나가는 것을 그만두게 되었다. 그 무렵 나는 그 당시 그 나이 또래가 흔히 그랬던 것처럼 살아나간다는 것에 대해 지독한 열병을 앓고 있었고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한 회의가 나를 감싸고 있었다. 자연히 내가 지니고 있던 믿음에 대한 회의가 나를 신앙에서 멀어지게 하였다. 그러나 이때 신앙과는 또 다른 면에서 기독교라는 종교에 대해 상당한 분량의 책을 읽었으며 이해하기는 힘들었지만 불트만, 틸리히 등 신학자들이 쓴 성경에 대한 책도 읽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고등학교 때도 박 선생님을 몇 번 만나뵈었다. 선생님께서 나의 신앙생활을 물어보시면 나는 다소 머뭇거렸지만 잘하고 있다고 대답하곤 하였다. 차마 교회에 나가지도 않고 신앙생활을 하지 못한다고 대답할 수 없었던 것 같다.

대학을 가고 나는 기독교 신앙에서 점점 멀어져갔다. 중학교때 같이 모임에 있던 친구를 만나면 박 선생님께서 내가 기독교 신앙에서 멀어져가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신다는 이야기를 전해듣곤 했다. 그 후 미국에 공부하러 갔다와서 대학교수라는 직업을 갖게 되었고 그사이 박 선생님께서도 정년퇴임을 하시게 되었다. 10여년전 정년퇴임식에서 뵈었을때도 또 몇년전에 몇몇 친구와 선생님을 모시고 저녁식사를 하는 자리에서도 선생님께서는 나를 신앙으로 인도하시는 말씀을 잊지 않으셨다.

또 다시 몇 년이 흐른 작년, 선생님께서 나를 만나고 싶으시다며 내 사무실로 전화를 주셨다. 이런 저런 이유를 대며 내가 만나뵙기를 주저하자 선생님께서는 ‘기독교 신앙을 지닌 조 교수의 모습을 보고 싶다’고 하시면서, ‘조 교수를 만났던 지난 삼십여년 전부터 매일 아침 조 교수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고 있다’는 말씀을 하셨다. 이 말씀을 듣고 나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였다.

지난 삼십년이 넘는 기간동안 선생님께서는 매일 아침 나를 생각하시며 기도를 해오신 것이었다. 떠난지 삼십년이 더 되는 제자의 이름을 부르며 매일아침 기도하시는 선생님은 대학 교수로서의 나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하셨다.

대학교수로서의 직업을 시작한지 15년이 되는 나는 그사이 나의 학생들에게 어떠하였는가. 내가 강의를 맡고 있는 학생들에게, 학부 지도학생들에게, 그리고 내 대학원생들에게 나는 어떻게 대했는가, 나는 그들에게 어떠한 존재였는가. 교수로서의 역할이 어떠한 것이 바람직한 것이냐에 대해서는 나 스스로 때에 따라서 다소 변하기도 하지만 학생들에게 스승으로 남고 싶다는 것은 내가 간절히 바라는 소망이기도 하다.

이 겨울에 박 선생님의 전화는 33년전으로 시간을 되돌리며 내가 대학에 있는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