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계단] '선거'가 그리운 까닭
[78계단] '선거'가 그리운 까닭
  • 박종훈 기자
  • 승인 2002.10.3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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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문을 들어서기 전부터 학생들에게 전단지를 나눠주고 학교 내에서 사람들의 눈에 띄는 곳이라면 어디든 입후보자를 홍보하는 사람들. 입후보자들의 성명과 출마기호를 외치는 소리로 떠들썩한 캠퍼스. 보통 운동권과 비운동권의 계열로 나뉜 입후보자들이 나와 총학생회장 자리를 놓고 경쟁하고 그 선거결과가 다음해의 학내 분위기를 좌우할 정도의 큰 영향을 미치는 다른 대학교의 총학생회 선거 풍경은 모습들은 이제까지 경선 없이 총학생회장을 선출하는 경우가 많았던 우리 학교에서 보기에는 상당히 이채롭기까지 하다.

굳이 우리 학교의 상황에서 다른 학교의 모습을 따라갈 필요는 없다. 하지만 총학생회장의 선출이 경선 없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빈번하다는 점, 그래서 입후보자들이 각자 공약을 내세우고 일반 학생들을 설득하는 과정이 우리 학교의 학생회장 선거에는 빠져있다는 것은 어찌 보면 부끄럽기까지 하다. 입후보자들이 공약을 내세워 학생들을 설득하는 과정이 없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곧 총학 선거의 유권자이자 총학생회의 주체인 전 학우들의 다음 총학생회의 활동 방향을 선택하는 기회를 박탈당한다는 뜻이다.

경선이 없는 총학생회장 선출의 문제는 다른 문제도 안고 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총학생회장의 대표성에 관한 문제이다. 각기 다른 입장을 가진 입후보자들 중에서 한명을 선택하는 것이 아닌, 총학생회장 자리를 맡겨도 될 인물인가 아닌가에 대한 투표로 선출된 총학생회장은 그 개인적 자질에 대한 논의는 차치하더라도 그 대표성에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단독출마에 이은 찬반투표를 통해 입후보자를 학생의 대표로 한 이듬해 총학의 구성에 대한 문제에 구성원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데에는 문제가 많기 때문이다.

우리학교의 여건상 다른 대학들보다 활발한 총학생회의 활동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은 사실이다. 이미 많은 이들이 공감하듯이 학생 개개인의 학업 문제와 이공계 대학이라는 특성을 그 원인으로 들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지금 우리 학교의 상황은 그러한 여건을 고려하더라도 지나칠 정도로 소극적인 총학생회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참여와 관심이 너무나 저조하다. 총학생회의 역할을 단순히 학생들의 불만사항을 들어주고 그 불만을 해결해주는 것으로 착각하는가 하면 아예 부정적인 시각으로 외면하고 관심을 끊어버리는 학우들을 쉽게 찾을 수 있으며 이것은 의식 수준의 문제라고 할 수 밖에 없다. 또한 이것은 총학생회 구성 여부 이상의 우리 대학 학생 역량의 현 수준을 반증하는 것임을 의미한다.

이전부터 계속 제기되어 온 문제이지만 우리 학교의 총학생회는 학생 대표기구로서의 위상 정립을 해내지 못하고 있다. 학생들의 이해와 요구를 수렴하여 대변해내는 정책 입안은 물론이고 학내 주요 현안에 대해 제 목소리를 못 내고 있다. 특히 지금과 같이 총장 선임이 지연되며 여러 혼란스런 상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학생을 대표하는 의견을 집약시켜 발표하지 못하는 모습은 지극히 아쉬울 수 밖에 없다.

이런 상황은 이제까지 학교의 상황과 여건이 어떠했는지의 문제를 떠나서 우리 학교에서 총학생회가 진정 학생의 대표로서 거듭 태어나 학생의 목소리를 대변해야 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한다.

우리학교 총학생회가 나아갈 방향은 다른 대학의 총학생회와는 다를 수 밖에 없으며 달라야 한다. 다른 학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한총련계, 비한총련계 그리고 비운동권 중 어느 것이냐의 논란은 우리 학교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어느 것이 좋다 나쁘다 말할 수 없겠지만 우리학교의 상황에서는 총학생회가 미국 대학들의 Student Union과 같은 역할 모델로 자리잡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생각된다. 다른 학교의 총학생회가 학생들의 생활과 유리된 정치적 색깔을 띤 형태라는 이유 때문에 학생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가는 경우가 있긴 하다. 하지만, 그런 모습과는 전혀 상관없는 우리 학교에서 학생들이 총학생회 구성에 대해 무관심한 상황은 우리 학생들이 우리학교가 당면한 과제는 무엇이며 학교의 구성원으로서 무슨 일을 해야 하는 가에 대한 관심마저도 완전히 버린 것으로 보인다. 우리 학교의 총학생회 선거가 모든 학생들의 관심을 이끌어내어 학생들이 자기의 목소리를 내고 총학생회가 어떻게 구성될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 뜨거워지는 때가 하루 빨리 오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