敎授任前上書
敎授任前上書
  • 김재성 / 신소재 박사과정
  • 승인 2002.08.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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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들께.

청둥오리는 어떻게 집오리들이 나는 법을 잊어버렸는지 일러준다.
“암, 집오리들이 날아가면 사람들이 가만있지 않을 거야. 아주 오랜 옛날에 사람들은 날아다니는 오리를 잡아다가 날지 못하도록 했단다. 토끼장 같은 곳에서 오랫동안 가둬놓거나 날개를 잘라 버리기도 했지. 좁은 곳에 오랫동안 갇혀 있으면 날으는 법을 잊어버리거든. 사람들은 굳이 먼 곳으로 날아다니지 않아도 살 수 있다고 거짓말했지. 먹을 것을 많이 주고, 오리들을 설득했어. 그래서 날려고 하면 때리기도 했지. 토끼장보다 더 작은 곳에다 가둬놓기도 하고, 오리들의 생각도 바뀌기 시작했어. 굳이 힘들게 날지 않아도 살 수 있었거든. 사람들이 먹이를 배 터지도록 주었으니까 말야. 그래서 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거야. 먹이도 풍부했고, 다른 동물들이 위협하면 사람들이 지켜주었으니까. 그러나 보니 날지 못하게 된 거야. 날개가 있어도 날지 않으면 소용이 없지.”

위 글은 ‘창작과 비평사’가 펴낸 창비아동문고 161권에 수록되어 있는 ‘하늘로 날아간 집오리(저자:이상권)’의 일부를 발췌한 것입니다. 이 동화는 양갑수라는 사람이 집오리 네 마리를 얻고, 그 중 한 마리인 검둥오리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과정을 사람의 시각으로 풀어놓은 것이며 부분적으로 실화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동화에서 집오리는 잊어 버렸던 모성본능을 깨우치고 새끼를 키우고, 새끼에게 나는 법을 가르치게 됩니다.

초대 김호길 학장님 시절부터 교수님들은 학생들에게 소수정예라는 기치아래 학생들에게 공부와 연구만을 요구해 왔습니다. 일련의 정치활동은 금지되었고, 중요한 학교정책에 대해서도 일부 복지와 관련된 사항 이외에는 학생들의 의견이 무시되어 왔습니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 포항공대는 초기의 활력과 젊은 교수들의 열의, 충분한 연구비 등을 바탕으로 혁신적인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발전의 가속도는 계속 이어져 왔고, 연구성과는 국내의 다른 대학들을 앞지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시간이 흘렀고, 초기의 활력은 없어져 가고있고, 또한 교수님들의 순수한 연구 열의도 사라져가고 있으며, 학생들은 그러한 상황에 의지를 맡긴 채 매너리즘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이미 스스로의 생존능력을 상실해버린 학생들은 학교의 나이와 함께 정체되어 버릴지도 모릅니다. 충분한 먹이가 주어지고, 더 이상 날 수 없게된 집오리들처럼 학생들은 학교정책에 대한 적극적인 참여보다는 이제껏 이루어왔던 학교 이름 위에 안주하고, 피둥피둥 살쪄서 사회에 잡혀 먹히는 것만을 기다리는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무엇인가 발전을 거듭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이 필요하다는 절박감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새로운 대안이 자유 민주주의라고 생각합니다. 거창한 것이 아니라 바로 헌법에서 그렇게나 강조하는 자유 민주주의이며 그에 따른 자유 의지라고 생각합니다. 학교 구성원들간의 대화, 학교 인력의 유동성 확보, 학교 발전을 위한 끊임없는 합리화의 길은 바로 이 하나의 개념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주인정신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주인이 된다면, 학교 발전을 위해 고민하고, 주장하며, 대화할 것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과거 이념가들이 주장하는 민주주의의 당위성을 얘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민주주의를 주장하는 것은 좌파적 이념도 아니고, 학업과 연구에 대치되는 것도 아닙니다. 대학이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것은 그것 자체가 학교 발전을 위한 가장 합리적인 일이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는 서로를 동등한 주체로 인정합니다. 과학처럼 올바른 선택이라는 것은 서로가 권력에 의지하지 않는 동등한 입장에서 이성적인 대화를 바탕으로 상대방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이러한 대화의 과정은 구성원으로 하여금 스스로의 선택임을 인지 시켜주고, 실현의지를 발현시키고, 성공가능성을 높이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민주주의는 결정과정을 양성화함으로써 기관의 투명성을 보증하며, 서로를 견제할 수 있는 기능을 가지게 됩니다.

올해 8월은 새로운 총장님이 취임하는 달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구성원 대부분은 어떠한 과정과 기준을 가지고 총장을 뽑는지 전혀 아는 바가 없습니다. 또 왜 이렇게 미뤄지고 있는지도 알지 못합니다. 구성원들은 자신들의 리더가 될 후보들의 공약을 듣고, 투표하지는 못할지언정, 적어도 학교가 지향하는 총장의 기준요건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기준요건이 합리적인 것인지 구성원들과 대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학교가 비밀리에 뽑은 총장과, 비밀리에 만든 마스터플랜에 대해서, 비밀리에 관심을 가지지 않고, 그것에 따르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총장 관련 위원회가 있다면 과감히 선출기준과 후보, 그리고 그들의 공약을 공고하고, 선출 후에는 선출이유를 명시함으로써 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학교 민주주의의 기틀을 마련하는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어쩌면 민주주의를 위한 시작은 힘들지도 모릅니다. 이미 정치, 학생운동 등에 대해 학교 뿐만 아니라 학생들도 거부감을 가지고, 오직 그 대안을 개인주의에 맡겨둠으로써 모든 것을 해결하려하고 있습니다. 그 원인에 대해서는 학교 구성원들 모두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며, 이제는 조금씩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실없는 농담으로 대화를 가득 채우기보다는, 다음 총장은 어떤 사람이고, 어떤 공약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대화가 캠퍼스 안에서 자유롭게 논의되는 분위기에서, 민주주의의 싹은 트게 되고, 학교와 구성원들의 한 단계 높은 발전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