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영어강의에 대하여
[기고]영어강의에 대하여
  • 서의호 / 산공 교수
  • 승인 2002.05.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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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강의와 영어 토론은 적극 추진되어야 한다

포항공대가 국내 타대학과 비교하여 경쟁우위를 가질수 있는 요소는 무엇일까? 연구중심의 환경, 학생대 교수 수의 비율이 적은데 따른 개인적 관심을 쏟는 교육, 좋은 시설과 실력있는 교수진, 탄탄한 재정, 합리적인 학교운영… 이런 것들이 머리에 떠오른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포항공대의 경쟁우위는 ‘국제화’에 있다. 국내 거의 모든 대학이 국제화를 부르짖고 있으나, 포항공대는 국제화에 있어서 매우 좋은 위치에 있다. 우선 학교가 작기 때문에 기동성이 있어, 국제화에 필요한 여러가지 장치들을 빠른 시일내에 시행할 수가 있다. 학교의 운영 자체가 서구적인 형태를 띠고 있고 교수진 거의 전원이 해외에서 학위를 받았기 때문에 역시 국제화 감각에 있어서 앞서고 있다.

국제화를 위한 여러가지 장치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영어강의”이다. 최근 영어강의를 놓고 찬반 양론이 비등하고 있다. 나는 영어강의가 왜 시급한 것이며, 왜 영어강의가 포항공대의 국제화를 위하여 절대적으로 시행되어야 하는 시책인가를 주장하고자 한다.

세계는 급변하고 있다. 최근 경영환경의 4가지 큰 변화는 소비자의 강세와 그에 따른 프로세스 중심의 사고, 인터넷으로 촉발된 정보화, 기술개발 사이클의 단축에 따른 경쟁의 격화, 그리고 가장 중요하고도 현저히 나타나는 현상은 세계화(Globalization)이다. 세계화는 세계를 구성하는 단위가 전통적인 객체인 국가에서 기업과 같은 경제활동 단위로 바뀌고 있으며, 경제경영의 규모는 한 개의 국가를 탈피하여 점차 세계로 바뀌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세계화의 물결속에서 살아가기 위하여 공통된 언어를 구사하는 것은 이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필수적인 과제이다. 이미 한국의 대기업들은 중역회의를 영어로 진행하는 경우가 많으며, 기업들은 직원들에게 영어를 필수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세계화 시대에 있어서 대학원생들도 국제학회에서 영어로 발표해야 하고 영어로 논문을 써야 한다. 교육부도 BK21 등을 통해 영어강의를 장려하고 있고, 포항공대와 경쟁학교인 카이스트, 서울대 등도 영어강의를 적극 장려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영어강의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그 뿌리를 “영어강의가 강의를 진행하는데 있어서 의사소통의 어려움을 가져온다”는 주장에서 찾을 수 있다. 이것은 영어강의에 대한 정의를 잘못 내리는 데에서 비롯된다. 영어강의는 강사가 일방적으로 영어로 강의하고 학생들은 듣는 상황으로 정의를 내려서는 안된다. 영어강의의 본질은 영어로 강의하고 영어로 발표하고, 영어로 토의하는 데에 있다.
영어강의의 본질은 “학생들에게 영어로 듣고, 이야기하고, 토론하는 자연스러운 환경을 조성하여 줌으로써 세계화시대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학교에서 훈련시킨다”는 데에 있는 것이다. 강사가 영어능력이 부족하여 이러한 환경을 조성할수 없다면 할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강사가 그러한 능력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영어강의를 하지 않는다면, 그건 잘못된 판단이다. 학생들에게 영어로 듣고 이야기하는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은 그러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교수의 책임인 것이다. 많은 졸업생들이 사회에 나가 영어의 필요성을 뼈저리게 느끼고, 학교시절 영어로 좀더 강의를 많이 듣고 영어로 말하고 토론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는 모습을 수없이 보았다. 국제학술대회에서 영어 때문에 애를 먹으며, 좀더 영어발표능력을 키우지 못한 것을 후회하는 학생도 많이 보았다.

왜 우리는 시행착오를 반복해야 하는가? 실패는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실패로부터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할 때 그것이 부끄러운 일이다. 혹자는 영어가 편한 사람은 영어로, 한국어가 편한 사람은 한국어로 강의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왜 교과서는 영어교과서를 사용하는지 반문하고 싶다. 한국어교과서가 훨씬 읽기 편하다면, 교과서도 한국어교과서를 사용해야 한다.

영어교과서를 사용하는 이유는 학문적 용어 및 느낌에 있어서 세계의 학자,학생들과 함께 호흡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포항공대 수준에서 Relational Database를 ‘연관형 자료기반’이라는 식으로 공부한 학생들이 국제사회에 나가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는가? 읽는 속도가 떨어지고 읽기가 쉽지 않은 영어교과서를 사용하는 목적이 위와 같다는데 동의한다면, 영어강의와 영어토론의 당위성은 쉽게 이해되는 것이다.

또 일부는 외국인도 포항공대에 와서는 한국말을 배워 강의를 들어야 한다고 강변한다. 그것이 국제화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것은 지극히 국수주의적인 사고방식일 뿐이다. 한국역사나 태권도학을 공부하러 온 외국인이면 한국어를 배우는 것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Polymer, Database, Genetics 이러한 과목을 배우러 온 외국인이 이러한 과목을 한국어로 강의를 들어 자기나라로 돌아가서 한국어를 사용하여 전공을 살릴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 용어가 처음부터 끝까지 영어로 되어있는 학문을 토씨만 한국어로 배웠을때 그 외국인에게 한국어 강의는 큰 의미가 없을 것이다.

어떠한 가정하에서 포항공대는 영어강의와 영어토론을 활성화해야 하는가? 포항공대에서의 영어강의나 영어토론의 필요성은 “포항공대가 국제화를 지향하는 대학이고 한국의 일류대학”이라는 가정 위에서 존재한다. 포항공대가 졸업생이 그저 국내에서만 활동해야 하고 지역적으로만 활동하는 그런 지역에 한정되는 대학이라면, 또 포항공대 학생이 국내학회에만 참가하는 그런 대학이라면, 애써 영어강의 및 토론을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포항공대는 그러한 대학이 아니다. 포항공대는 한국을 대표하여 국제화사회를 리드할 인재를 배출해야 하는 대학이다.

우리는 교육의 목표가 무엇인가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교육의 목표는 ‘학생들을 편하게 해주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며 , 힘들더라도 ‘학생들이 장래에 필요한 것’을 가르치는 데에 있다. 학생들이 영어강의를 듣는 것이 불편하고, 영어토론과 발표가 힘들다고 영어강의를 폐지할 것이 아니라, 더욱 장려하고 훈련시켜, 세계화시대에 역군으로 키워나가야 한다.

여기에 소개하는 한 개의 에피소드는 모든 것을 설명하고 있다.
수 년전 재학시절, 영어강의와 토론이 불편하다고 유난히 불평이 많던 한 학생을 서울의 지하철에서 우연히 만났다. 대기업에 다니고 있던 그 학생은 필자 앞에서 90도로 절을 하면서 “교수님 죄송했습니다. 대기업에 들어가니 정말 재학시절 영어강의와 영어토론의 감사함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후배들에게는 좀더 강하게 밀어 부쳐 주십시오”라고 말했다. 재학생들은 일부 불평할지 몰라도 지금까지 만나본 졸업생들은 모두 입을 모아 “재학시절 영어강의와 영어토론을 강화시켜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하고 있다.

졸업생들의 이러한 간곡한 부탁이 있는 한 영어강의의 당위성은 엄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