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동산에서] ‘T’형 과학기술자와 복수전공
[노벨동산에서] ‘T’형 과학기술자와 복수전공
  • 이재욱 / 산공 교수
  • 승인 2002.03.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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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자형 과학 기술자
“삶에 필요한 조건을 두배로 지녀라(Double your resources). 그렇게 하면 자신의 삶을 두 배로 누릴 수 있다. 아무리 그것이 뛰어나다 할지라도 한가지 일이나 재주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 자연이 가장 중요한 신체부위인 팔, 다리 등등을 두개씩 주었듯이 우리가 의지하는 것들을 곱절로 가지도록 노력하라.”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세상을 보는 지혜>에서


최근 선진국 여러 대학에서 앞으로의 과학기술자들이 가야할 방향과 지향점을 이야기할 때 자주 논의가 되는 것이 ‘T 자형 과학 기술자’ 입니다.

여기서 ‘T’ 자의 위 가로선 ‘-’(그림의 좌우로 펼친 팔모양) 는 여러 분야에서의 다양한 경험을 의미하고 세로선 ‘|’(그림에서 몸을 지탱하기 위해 아래로 뻗친 다리모양)는 어떤 특정한 분야에서의 깊이 있는 전문적 지식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급변하는 지식 수준과 점점 복잡해지는 기술, 어제의 기술이 더 이상 가치가 없어지는 현실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한가지 분야에서만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사람보다는 이에 덧붙여 다양한 분야에서의 협동 기술과 시스템 요소들을 적절하게 통합하여 운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T’ 자형 과학기술자를 육성함이 오늘날 대학의 역할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를 산업계 측면에서 보면 오늘날의 시스템은 점점 복잡해지고 신상품 개발에 허용된 시간이 점점 짧아지고 있습니다. 현재보다 나은 방법으로 일을 수행하고 시스템을 보다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복잡한 시스템의 개별 구성요소에 대한 전문지식은 물론 각 구성 요소를 효율적으로 통합하여 시스템 전체에 대한 각종 의사 결정을 지원할 수 있는, 즉 나무와 숲을 모두 볼 수 있는 안목을 갖춘 과학기술자들이 필요할 것입니다.

또한 학계 측면에서 보면 현 21세기는 BT, IT, NT라 하여 점점 여러 학문 분야의 학제간 연구가 절실해지고 있습니다. 단순히 자기 분야에 대한 전문지식만을 가지고서는 실속 있는 학제간연구를 수행하는데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다양한 경험을 갖춘 학자가 요구되는 추세입니다.

이와 같은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하여 우리 포항공과대학교 학생들은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겠습니까? 필자는 시대의 큰 흐름과 먼 장래를 생각한다면 학부생, 특히 신입생들에게 복수전공(또는 최소한 부전공)을 하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물론 한가지도 잘하기 어려운데 여러 가지를 잘하기가 쉬운 일은 아닙니다.

필자의 경험으로 비추어 볼 때 학기 중의 부담을 줄이기 위한 방법 중 한가지로 방학을 이용해 다음 학기에 배울 과목 한 두 가지 정도를 미리 준비하는 것도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제 학부 이수학점이 120여 학점으로 줄어 과거에 비해 좀더 수월해지고 있고, 학교에서도 정책적으로 많이 권장하고 있는 일이라 점점 학생들의 참여도를 증진시키는 방향으로 가게 될 것입니다.

복수전공 또는 부전공을 한다는 것이 단순히 자신의 장래를 위해서 뿐만은 아닐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 또 다른 새로운 학문을 배우는 즐거움에 빠져 밤들을 지새우는 것도 한번밖에 없는 젊은 날을 멋있게 보내는 한자기 방법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학부에서 복수전공을 했다는 것으로 ‘T’자형 과학기술자가 되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학부에서의 교육만으로는 전문적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는 대학원에서의 석사 또는 박사과정의 교육을 통해 어떤 특정영역의 전공에서 세부적이며 깊이있는 지식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최근 포항공대 02학번 신입생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포항공대신문 제177호 3월 6일자 참조)에 따르면 72%의 학생들이 석-박사 과정까지의 학업 계획을 갖고 있으며 또한 70% 이상의 학생들이 복수전공이나 부전공을 하겠다고 응답하고 있습니다.
이 결과를 보고 새내기들의 시대 감각이 뛰어나다는 생각(전문적 지식과 다양한 경험을 갖춘 T형 과학기술자가 되고 싶어하는)과 아울러 그러한 생각을 단지 계획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부단히 노력해 실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시작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처음과 끝이 한결같이 시종일관되기가 어려울 뿐입니다.

少年易老學難成 一寸光陰 不可輕
未覺池塘春草夢 階前梧葉 已秋聲
소년은 늙기 쉽고, 학문은 이루기 어려우니
짧은 시간이라도 가벼이 여기지 말라.
아직 못가의 봄 풀은 꿈에서 깨어나지못했는데
어느덧 세월은 빨리 흘러 섬돌 앞의 오동나무는
벌써 가을 소리를 내누나.
-명심보감 권학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