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여덟오름돌] 청소년 보호인가 사이버 검열인가
[일흔여덟오름돌] 청소년 보호인가 사이버 검열인가
  • 문재석 기자
  • 승인 2001.11.2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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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청소년 유해 매체물 전자 표시제도”가 시행된 지 이제 3주가 지났다. 시행을 앞두고 제기되었던 많은 문제들은 무시한 채 3주라는 시간이 흘렀고, 지금도 정보통신부는 개선의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인터넷 등급제는 말 그대로 인터넷의 사이트, 혹은 게시물에 등급을 매기는 제도이다. 인터넷 등급제는 많은 나라에서 인터넷의 부정적인 기능을 최소화하고 인터넷의 본질적인 목적을 최대화 하기 위해 시행하고 있다. 북미의 경우, ICRA(RSACi), SafeSurf, Netshepard등 의 다양한 민간 운영 기반의 등급이 존재한다.

이를 위해서 PICS(Platform for Internet Content Selection) 표준기술을 사용하여 등급을 각 사이트에 표시하고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이를 인식, 사이트 접속을 차단한다. 정통부의 청소년 유해 매체물 전자표시제도도 이러한 기술을 사용하고 있다는 면에서 일종의 인터넷 등급제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유독 우리나라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등급이 민간 자율적으로 설정되지 않고, 정부의 주도하에 독점적으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반문할 것이다. 차단 소프트웨어를 설치하지 않으면, 혹은 차단 등급을 낮게 설정해 놓으면 해결되는 문제 아니냐고. 하지만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우선 PICS 표시를 하면 서버 단위의 차단이 가능하다. 이 청소년 유해 매체물 전자표시제도가 시행된 지난 1일에 맞추어 하나로 통신의 하나포스서비스에서 시행한 서버 단위의 차단프로그램은 가입한 모든 회원이 ‘걸러진’ 사이트만 볼 수 있게 하였다. 또 정통부에서 배포하는 차단 소프트웨어인 Safenet의 경우, 등급이 표시되어 있지 않은 사이트에 대해서는 기본설정이 “차단”으로 되어 있어 프로그램 설치만으로도 많은 사이트들이 차단되는 것이다.

이 표시제도를 담당하고 있는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이하 정통윤)의 기준의 애매모호함과 자의성 또한 전부터 문제가 되어왔다. 이번 등급제에서 쓰이는 기준을 예로 들어보자. ‘언어’를 기준으로 보았을 때, 1단계 ‘일상 비속어’와 2단계 ‘거친 비속어’ 그리고 3단계 ‘심한 비속어’의 구분을 어떻게 할 것인가? 또 ‘음주조장’이라든가 ‘마약사용 조장’과 같은 기준은 개인에 따라 너무 주관적이라는 생각이다. 동성애를 다룬다는 이유로 “퇴폐하다”는 판정을 받고 폐쇄당한 “엑스죤”과 같은 많은 동성애 사이트들이나, 청소년 유해판정을 받고 폐쇄당한 김인규 교사 사이트 등은 정통부의 기준의 자의성을 명백히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다.

정확한 검토끝에 내린 판정이라면 그나마 다행이다. 등급판정 과정에 있어서 많은 부분들이 기계적 검색에 의한 것이어서, 국제 동성애자협회(www.ilga.o rg)과 같은 UN ECOSOC(경제사회이사회)의 협의 자격을 가지고 있는 권위있는 홈페이지 조차 “퇴폐2등급” 판정을 받아 무리를 빚고 있다.(실제 이 사이트는 퇴폐 판정을 받을 만한 아무런 이유가 없다)청소년 보호의 관점으로 돌아가 보자. 청소년 보호를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어떻게’에 있는 것이다. 현실에서는 원조교제와 학원폭력이 난무하는데, 인터넷에서 단지 ‘보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지정을 하여준다고 그것이 청소년 보호일 수는 없다. “아이노스쿨”을 폐쇄한다고 무너져버린 공교육이 바로서는 것이 아니며, 채팅사이트를 막는다고 원조교제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다. 단지 센세이션을 일으킨 몇 개의 사이트를 보고 그것이 청소년 문제의 근본인 양 취급하고 통제하는 것은 정부의 오버센스다. 진정으로 청소년을 보호하고자 한다면, 어떻게 하면 공교육을 바로 잡을 수 있을까 고민하고, 학생들의 바른 성의식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모든 것을 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 정통부는 자기만이 정보에 대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오만함을 떨쳐버리지 않고 있다. 그러한 ‘혼자만의 잘난 척’이 존재하는 한, 네티즌의 권리는 보장받기 힘들다. 네티즌에 의해 합의된 기준, 방법을 이끌어내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 시간을 이유로 한 지금과 같은 자의적이고 독단적인 규제 방법을 합리화하여 주지는 않는다.

지금의 방법은 단지 국가의 검열에 대한 욕심을 채워주는 것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