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여덟 오름돌] 껍데기는 가라
[일흔여덟 오름돌] 껍데기는 가라
  • 배익현 기자
  • 승인 2001.10.1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난 94년부터 매년 연례행사처럼 하는 중앙일보 대학평가 결과가 얼마전 발표되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우리대학은 2위라는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이런 대학평가가 우리에게 그다지 의미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대학서열이라는 의식을 부추기고, 명문대와 비명문대를 편가름 하는 잣대의 일부로 쓰일 수는 있지만. 그러나 의외로 대학평가 결과는 발표될 때 마다 사람들의 적잖은 관심을 받는다. 단지 일개 신문사에서 연례로 하는 행사일 뿐인 대학평가가 일반인들의 필요이상의 관심을 받는 것은 교육, 특히 대학과 관련된 한국사회의 특이한 분위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한국 사회에서는‘대학은 간판’이라는 것이 상식이었고, 그런 사회를 이루고 있는 대다수의 상식적인 사람들은 많은 간판들 중에 어느 간판을 따는 것이 살아가는데에 유리한가에만 관심을 쏟는다. 소위 학벌이라는 것이 사람의 삶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풍토는 지금도 마찬가지로, 하나도 바뀐 것이 없다.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기본적인 소양과 지식을 가르쳐야 할 고등학교 입학식에서 학생들이 처음 듣게되는 것은 오로지 좋은 대학을 가야 한다는 선생님들의 처세론이다. 기업의 인사부가 일차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이력서에 첨부된 일류대학 졸업장이다.

소위 ‘명문대’로 평가받는 우리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에게도 이런 사회 구조는 심각한 문제로 인식되는 것 같다. 포스비에 심심찮게 올라오는 서울대와 포항공대를 비교하는 글들을 보면 우리학교 학생들의 은근한 서울대 콤플렉스가 드러난다. 세간의 평가와 그들의 말마따나 ‘네임밸류’를 의식하기 때문인지, 그 글들은 우리학교 학생들이 서울대 학생들보다 더 실력있고 열심히 공부한다는 사실을 증명하기에 바쁘다. 자신감을 가지라는 충고를 하면서, 그리고는 덧붙이는 말로 우리학교 사람들이 과학적인 업적을 많이 쌓아서 서울대를 따라올 수 없을 만큼 앞질러야(?)한다는 말까지 서슴치 않는다. 누군가가 꼭 노벨상을 타서, 한국 최고의 공과대학이 되어야 한다는 말도 있다. 모 교수님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부터 이런 발상을 친절히 학생들에게 심어주셨다.
이런 콤플렉스가 가지는 문제점은 최고 간판인 서울대를 비판하면서도 그런 간판 시스템을 극복하지 못한채 그 속에 침몰해 버린다는 것에 있다. 즉 얼마나 출세하기에 유리한가를 기준으로 일렬로 대학을 줄 세운다는 기본 원칙에는 아무런 비판을 가하지 못한채, 누가 1등이냐만을 놓고 다툰다는 것이다. 혹자는 우리 학교를 나와도 단순한 봉급쟁이 밖에 뾰족이 할 것이 없으니 학벌이란게 빛 좋은 개살구 아니냐고 이야기 하기도 한다. 학벌을 타파하자는 노력은 커녕 제도권 속에 깊숙이 편입된 채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 서글프다.

우리는 대학에서 무엇을 어떻게 공부했냐는 것 보다는 일류대학을 나왔다는 사실이 개인을 먹여살리는 자격증처럼 쓰이는 사회, 그 자체를 비판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교육을 개혁하자는 이야기가 벌써 수백번도 넘게 나오고 있다. 그러나 사회 변혁의 시작이 제도적 개혁이라면 그 완성은 사회 성원인 각 개인들의 노력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느슨한 신분제의 표상과도 같아져 버린 대학을 본연의 자리에 되돌려 놓기 위해서는 대학이라는 거대 집단에 속한 자기 자신을 명확히 인식하고 작은 곳에서부터 접근해오는 권력 현상에 적극적으로 저항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우리학교 학생이라면 포항공대라는 이름에 기대려는 무의식적인 태도를 극복하고 진정한 실력을 기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될 것이다. 또한 이러한 개인적 노력이 한낱 이상에 그치지 않으려면 사회적 성공에 대한 지나친 집착을 버리는 용기와 그릇된 이익을 버리고 옳은 손해를 선택하려는 도덕성 또한 필요하다.

그나마 희망은 아직까지 우리학교 학생들중에는 껍데기뿐인 대학의 이름 보다 자신의 실력을 통해 성공하고자 하는 사람이 많다는 점이다. 다른 누군가는 말한다. 사회에 나가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거 아니냐고. 특히 기술을 겨루는 분야에서라면 끝없는 자기 개발과 노력이야 말로 성공의 열쇠가 아니냐고. 이런 사람들이 많아질 때 한국 사회는 지금의 그릇된 상식이 지배하는 미래가 아닌 진정한 의미의 상식이 통하는 미래를 거머 쥘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