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논단] 대학의 역할과 우리의 소임
[독자논단] 대학의 역할과 우리의 소임
  • 주민호 / 산경 05
  • 승인 2007.06.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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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이면 성인(成人)이 되었다 할 수 있다. 그러나 요즘 대학생들을 보면 성인이 성인 같지 않다. 오늘날 부모님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해 살아가는 대학생은 찾아보기 힘들다. 대학 등록금부터 용돈을 타서 쓰는 것까지 보통 대학생은 속된 말로 ‘부모님의 등골을 빼먹고’ 생활한다. 우리나라에선 성년이 되는 해를 만 20세라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나이만 채운다고 해서 성인이 되는 것일까? 진정한 의미에서 성인이 된다는 건 과연 어떤 것일까?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의미의 성인(成人)은 뚜렷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다. 사춘기 동안 일어나는 질문에 대해 비록 완전한 답은 아니더라도 스스로가 확실한 답을 내린 사람이 진정한 성인이라고 생각한다. 혹자는 탈가치화가 이루어지는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가치관의 정립을 논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지 않느냐고 반문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느 한 방향으로의 가치관이 세워져 있지 않고는 탈가치를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질 않는다. 포스트모더니즘을 사는 우리에겐 어느 방향으로의 가치관이 세워지고 난 후에야 어느 쪽에 더 큰 가치를 둘 것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하는 자세가 요구되는 거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대학생이 가치관의 정립의 과정 중에 놓여있는 거라면, 우리가 대학에서 배우는 것들은 가치관에 영향을 주는 것들이어야 할 것이다. 적어도 대학교육의 목적이 진리탐구에 있고, 참된 인간의 양성에 있는 것이라면 대학은 인간을 완전한 성인(成人)이 되게 하고 더 나아가 성인(聖人)을 만드는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의 대학은 단순히 기업이 원하는 인재를 키워내는 곳이 되고 말았다. 기업의 입장에서 인재란 이윤추구를 위한 전문지식에 능통한 것이지, 그 인재가 어떤 가치관을 가졌는지는 그리 중요한 게 아니다. 오늘날 좋은 대학을 나오고 방대한 양의 지식을 습득하고 나면 사회적 신분이 상승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실제로 대학은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는 가르쳐주고 있지는 않은 듯하다. 오늘날의 대학은 지식을 습득하면서 소속감을 통해 친교를 나누는 장이지, 진지한 진리 탐구의 장은 아닌 듯싶다.

공자의 어록이 담긴 논어에는 군자불기(君者不器)라는 말이 있다. 군자는 그릇이 되지 않아야 된다는 뜻이다. 그릇의 크기와 모양에 따라 그 쓰임새가 각각 다르듯이 사람들 또한 모두가 맡은 역할이 각각 다르다. 그런데 공자는 왜 군자란 그릇이 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을 했을까? 군자는 오늘날의 지식인과 상통하는 말이고, 지식인은 기능인과 반대되는 것이기도 하다. 기능은 쓰이고 나면 잊혀지는 반면, 지식은 그렇지가 않다. 효율적인 측면만을 강조하는 기능과는 달리, 지식은 근본적으로 그러한 기능이 필요한지를 따져 본다. 개발만을 최우선으로 삼고 환경파괴적인 개발을 일삼던 지난날과는 달리, 오늘날 강조되는 지속 가능한 개발은 이러한 지식의 역할을 잘 보여 주고 있는 예로 보인다. 이렇게 공자가 강조하고 있는 인재상은 어느 한쪽에 얽매임이 없는, 오늘날 새롭게 강조되는 통합교과적 사고능력을 가진 인재이다.

예전에 ‘P모 공대생의 사랑’이라는 제목의 짧은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다른 학교의 대학생과는 달리 캠퍼스 안에서 24시간 동안 과제와 시험에 치여 정신없이 지나가는 하루를 보내며 ‘우리는 남들과 다른 사랑을 하고 있다’는 내용의 조금은 감상적인 글이었다. 동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그것이 지독한 자기 연민을 위한 것이라 생각한다. ‘공대생이라서 어떻다’는 공대생으로서 웃기만은 힘든 만화나 개그 같은 것을 보면, 오히려 우리는 자신의 가능성을 더욱 제약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포스테키안들은 공대생이라는 꼬리표에 자신을 옭아매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 모두는 단순한 기능인이 아닌 지식인이 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만약 당신이 진정으로 과학과 국가와 미래를 생각한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