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자
대화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자
  • 황정은 기자
  • 승인 2004.03.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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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 사이에 ‘생명윤리’라는 말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생명이라는 신성한 것을 다루는 과학 기술이 짧은 시간 안에 새로운 윤리 지침을 마련할 틈도 없이 빠르게 발전해버렸기 때문에 기술의 발전을 황급히 뒤따라가며 여러 가지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우리 나라도 인간 복제와 유전자조작 벼 기술 등으로 세계를 선도하고 있고 지난 해 말에는 생명윤리법이 제정되기도 했다. 후대의 인류가 흥미진진하게 읽을 과학사, 아니 그것을 넘어서는 인류 역사의 중요한 페이지들이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현장이 바로 지금, 여기다.

생명윤리에는 안락사, 낙태, 인간 배아 복제, 유전자조작 농산물 등 몇 개의 핵심 쟁점들이 있는데 우리 학교의 구성원으로서 반드시 생각해보아야 할 두 쟁점이 바로 인간 배아 복제와 유전자조작 농산물이다. 안락사와 낙태 문제가 의료 윤리라면 뒤의 두 가지는 생명공학 윤리라고 이름붙일 수 있을 것이다. 생명공학 윤리는 이 두 분야에 몸담고 있지 않은 사람이라도 자기 일처럼 관심을 가져야 할 쟁점이다. 생명공학 연구윤리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느냐에 따라 과학 기술이 윤리를 앞질러 발전하는 경우 과학 기술자가 맡는 역할 모델이 다른 모습으로 정립될 것이기 때문이다. 물리학자인 장회익 교수가 온생명 사상을 주창하며 생명윤리 논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이런 면에서 볼 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회가 받아들이지 않거나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기술이라면 과학자가 스스로의 신념에 비추어 옳다고 생각해도 강행해선 안 된다. 그러나 우리의 생명 공학계는 인간 배아 복제나 유전자조작 농산물 기술이 국가와 인류의 복지 향상에 기여할 많은 약속들을 안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지만 사회를 설득시키려는 노력을 아직 충분히 하지 않았다. 이제는 시민단체의 우려를 귀 기울여 듣고 스스로 반성하는 소극적인 노력은 물론, 대중의 오해를 풀어주고 진실을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여 마침내 시민 사회의 윤리적 신망을 얻는 단계까지 나아가려는 생명 공학자들의 적극적인 노력이 추가로 필요하다.

발행 부수와 시청률을 높이고 싶어하는 일부 언론과 자기 단체의 지지자를 많이 얻고 싶어하는 일부 시민 단체들의 센세이셔널리즘 때문에 진실이 가려지거나 왜곡되어 소모적인 비판과 반대를 위한 반대가 쏟아지는가 하면 이런 비난의 목소리에 묻혀 지금 당장 시급히 사회적 합의를 거쳐야 할 중요한 문제들이 간과되어 버리기도 한다. 또, 많은 사람들이 ‘기술 남용을 자제해야 하는 이유’를 ‘기술 개발이나 사용 자체를 금지해야 하는 이유’와 혼동하고 있다. 이런 문제들은 ‘논의해 볼 필요조차 없는 당연한 것’이라는 태도에서 벗어나 서로 진지하게 입과 귀를 열어야 해결해나갈 수 있지만 지금까지는 이러한 대화가 부재해 온 것이 사실이다.

본 기획이 과학 기술자들이 부재해 온 대화에 갈증을 느끼고 입과 귀를 여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