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동산]순간을 소중히, 인생은 극진한 마음으로
[노벨동산]순간을 소중히, 인생은 극진한 마음으로
  • 김경태 수학 교수
  • 승인 2006.02.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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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사이 경제, 문화, 교육 등등 여러 면에서 전보다 매우 나아졌다고 자부하는 우리다. 2002년 월드컵 축구대회 4위를 기록한 후 자신감이 부쩍 커진 덕분인지 15년 내에 노벨상 또는 필즈상 수상자를 한 명 배출해보자는 당찬 포부를 감히 입에 담고 있다.

좋은 일이다. 하지만 우리네 형편은 어떤가? 십대 후반에는 대학 입학을 위한 경쟁을 위해 고교과정 교과서와 참고서를 보고 또 보고 본 문제 또 보며 다섯 개 중 한 개의 답을 고르는 훈련을 눈 빠지게 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공부란 아주 지겨운 것이지만 어쩔 수 없이 삼켜야 하는 쓴 약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각인된다. 학문에 대한 정열과 흥미에 대해서는 입도 뻥긋할 수 없는 살벌하고 황량한 마음 상태에 들게 된다. 맹렬한 경쟁을 뚫고 포항공과대학교에 입학한 신입생이 지친 표정을 짓는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입학 후 조금씩 달라져서 이ㆍ공학에 대한 정열을 키우고 공부에 맛을 들이는 포항공과대학교 학생들을 보며 이들을 가르치는 교수의 입장에서 얼마나 대견스럽다는 마음이 드는지 학생들은 모를 것이다. 한참동안 학문의 길에서 진보하는 제자들을 보며 뭔가 “조금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무렵이면 휴학원을 들고 찾아오는 제자들을 만난다. 군에 입대한단다. 젊은 시절 무려 4년 가까운 세월을 군에서 보내야 했던 필자이건만, 이럴 때면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다. 국방의 중요성을 어찌 모르며 군 생활을 통해서 배우는 인생의 지식이 적지 않음도 어찌 모르랴마는 “이 학생들도 꼭 그런 길을 거쳐야만 나라에 기여하는 것일까?” 스스로 물으며 안타까움을 삭이곤 한다.

프로축구 선수들이 한 번 부상을 당해 15일 정도 치료를 받고 나오면 바로 경기장에 복귀해서 경기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보통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체력을 요구하는 경기에서 뛸 능력이 벌써 퇴색하였기 때문에 한동안 피나는 재활 훈련을 거쳐 경기력을 끌어 올려야만 경기장에 복귀할 수 있는 것이다. 이ㆍ공학을 전공하는 재능 있는 학생들이, 학문의 길에서 대성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되지 않고 단지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경쟁을 위한 대입수능시험 때문에 여러 해를 엉뚱한 길로 돈 것만 해도 안타까운데, 이제야 뜻을 세우고 지친 심신을 채찍질하여 진정한 이ㆍ공학 연구의 세계로 입문하려는 단계에서 또 군에 가야 하다니! 마치 유망한 축구선수를 아무 이유 없이 일부러 부상을 당하게 하고서는 새삼스레 또 “재활 훈련”을 새로 받도록 두 세 차례 굴리는 것과 비슷하니 시쳇말로 이게 무슨 “삽질”이란 말인가.

하지만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나라의 법이요 제도요 문화이니 어쩔 수 없다. 손꼽아 세어 보면 개인의 이ㆍ공학도로서의 능력 개발-결국은 국력이라는 거대한 집의 기둥과 대들보와 주춧돌 등으로 거듭나기 위한 노력-에 투자할 시간이 너무도 적지만, 지금으로서는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할 밖에 무슨 다른 수가 없지 않은가.

수년 전에 장래가 촉망되는 어느 학생이 성적이 무참하게 떨어진 적이 있어서 면담을 했더니 잠시 컴퓨터 게임에 빠져서 공부를 등한히 했다는 것이었다. 평소에 제자들에게 화를 잘 내지 않는 필자도 불같이 화를 내고 큰 소리를 내어 야단을 쳤다. “이것저것 다 떼어 내고 조금밖에 남지 않은 인생의 소중한 시간을 어찌 그렇게 보낼 수 있단 말인가!” 학생도 눈물을 흘렸다.

뉘우침은 값진 것이다. 결국 이 학생은 돌아서서 다시 우등생의 반열에 복귀했지만 잃어버린 세월은 물론 다시 돌이킬 수 없었다.

소정의 과정을 마치고 오늘 졸업식을 맞이한 여러분은 참으로 어렵고 수준 높고 “빡빡한” 포항공과대학교의 교육과정을 한 단계 마쳤다.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대단한 성취이다. 하지만 졸업식은 인생의 새 마당으로 들어가는 관문이니 끝이라기보다는 새로운 시작이다. 이를 앞두고 마음을 다시 한 번 가다듬어야 하지 않겠는가?

인생이 유한한 까닭에, 우리가 보낸 하루는 우리의 남은 인생이 하루 줄었다는 증거이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이 순간, 그리고 우리 각자에게 다가왔다가 지나가면 돌아오지 않을 순간이 될 우리의 남은 날들, 참으로 소중히 여기며 성실하고 진중한 마음으로 살아야 할 것이다.

여러분이 졸업 후 들어서는 새 마당에서 멋진 미래를 맞이하며 성실하고도 극진한 마음으로 정진하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