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날 나의 아들에게
다시 만날 나의 아들에게
  • 이재필 / 수학 대우조교수
  • 승인 2024.03.22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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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영화 ‘아바타2’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벌써 일 년도 넘게 지난 일인데, 첫째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난 다음에 아내와 같이 극장에서 아바타2를 관람했다. 팬데믹 그리고 육아 때문에 아내와 단둘이 극장에 간 것도 상당히 오랜만이었다. 영화는 내가 예상한 만큼 우리를 즐겁게 해줄 수 있는 영화였다. 그런데 영화가 끝나갈 무렵 문제가 발생했다. 바로 주인공의 아들이 죽은 것이다. 이때부터 나는 가슴이 두근거리고 정신을 차릴 수 없게 됐다. 그 와중에도 영화표 가격이 생각나서 ‘엔딩은 보고 나가야지’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잘못된 선택이었다. 주인공 아들의 장례식 장면에서, 주인공은 판도라 행성의 초지성체 ‘에이와’에 자신을 연결한다. 그리고 이제는 죽어버린 자신의 어린 아들이 즐겁게 물고기를 잡으며 노는 모습을 지켜보는데, 순간 그 아들이 다 큰 모습으로 주인공 앞에 나타나서 “아빠는 왜 울고 있어요?”라고 질문한다. 그리고 주인공은 “너를 다시 볼 수 있어서 기뻐서”라고 대답한다. 이 장면 이후로는 더 이상 영화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리고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갈 때까지 극장에서 정신없이 울었다. 오전 시간이라 극장에 사람이 많지 않아 다행이었지만, 지금도 그때 나와 같은 시간에 극장에 있었던 사람들에게 미안하다.

물론 우리 지구에는 에이와는커녕 그것과 비슷한 것조차 없다. 하지만 나도, 단 한 번이라도, 환상이나 꿈속일지라도 둘째 아들을 만나고 싶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나에게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고 해도 꿈속에서 같이 공유할 수 있는 그 어떤 기억도 없다. 내 둘째 아들은 태어났을 때부터 죽을 때까지 단 한 번도 병원의 NICU를 벗어나 본 적이 없다. 그리고 코로나 기간이라는 이유로 얼마 허락되지 않은 면회가 더더욱 제한돼 버렸다. 내 기억 속의 둘째 아들은 언제나 처참한 모습이었다. 3kg도 안 되는 몸에 주렁주렁 줄을 달고 나를 쳐다만 보고 있었다. 입으라고 넣어준 아기 옷에는 굳어서 검게 된 피가 언제나 묻어 있었다. 만일 꿈속에서도 이런 모습이라면 너무 괴로울 것 같다.

이럴 때마다, 죽음 이후의 삶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지 생각한다. 아브라함 계열 종교가 주장하는 그런 모습의 사후 세계는 아니더라도, 어떤 형태든지 둘째 아들을 만날 수 있다면, 그래서 단 한마디라도 나의 감정이나 느낌을 전할 수만 있다면, 하면서 공상을 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이런 사후세계에 관한 개념은 너무나 매력적인 만큼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나의 심장이 멈추고 두뇌에 더 이상 피가 흐르지 않게 되면, 마지막으로 몇 번의 전기 신호가 발생한 후에는 예전에 ‘나’라고 불렸던 그 존재는 더 이상 남지 않을 것이다.

내 둘째 아들을 구성하고 있었던 입자들은 이제는 공기 중으로 뿔뿔이 흩어져 버렸다. 하지만 예전 어디선가 읽은 글에서는 물 한 컵의 분자에 모두 표시를 한 다음 그 물을 바다에 부어버리면, 일 년 후에 그 분자 중에 몇 개는 내 몸에 들어와 있다고 했다. 이렇게 생각하면 내 둘째 아들도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방 안에, 그리고 내 안에도 함께 하는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나도 같은 길을 걷게 될 것이고 나 역시 어디론가 흩어진 후에, 우리는 다시 어디에선가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바람이 되어, 바위가 되어, 혹은 한여름 냄새나는 음식물 쓰레기통 구석 어딘가에서라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기를 진심으로 희망한다.

찬용아, 너를 너무 힘들게 해서 미안해. 의사 선생님이 면회하지 않겠느냐고 물었을 때, 림프액에 퉁퉁 부은 너를 보는 게 너무 무서워서 안 간다고 했는데 그게 지금은 가장 후회되는구나. 그때 한 번이라도 너 얼굴을 봐 둘걸. 지금도 아빠는 네가 너무 보고 싶다. 작은 손으로 아빠 손을 잡아줘서 고마워. 꼭 다시 만나자. 사랑해.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