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랑말랑 리보솜
말랑말랑 리보솜
  • 이준구 / 화공 조교수
  • 승인 2024.02.29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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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리보솜의 구조, 큰 덩어리(Large Subunit, 50S)와 작은 덩어리(Small Subunit, 30S)로 구성돼 있다
▲그림 1. 리보솜의 구조, 큰 덩어리(Large Subunit, 50S)와 작은 덩어리(Small Subunit, 30S)로 구성돼 있다

 

 

세포는 리보솜이라는 거대한 공장에서 단백질을 생산한다. 원핵세포든 진핵세포든 살아있는 세포라면 모두 이 공장에서 DNA로부터 전사된 mRNA의 유전 정보를 읽어 해당 아미노산을 하나씩 연결하는 공정을 거쳐 단백질을 생산한다. 리보솜은 평균적으로 1초에 약 20개의 아미노산을 빠르게 연결할 뿐만 아니라 10만 번의 반복적인 연결 공정 중 한 번 정도의 실수만 일으키는 거의 완벽한 소기관이다. 그렇다면 생명현상의 가장 중요한 단백질 생산을 빠르고 정확하게 수행하는 완벽주의 리보솜은 우주에 생명체가 탄생한 이래로 현재까지 진화를 완료했을까? 이 글에서는 이토록 완벽한 리보솜이 사실은 오븐에서 갓 나온 구름빵처럼 아직 말랑말랑해서 이를 수정하고 다듬어 새로운 기능을 부여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해볼 것이다.

리보솜의 구조와 기능
단백질의 기능은 그 구조에서 유래하고, 구조는 다시 기능을 나타낸다. 예를 들어 우리의 다섯 손가락이 세 개의 마디로 이뤄진 이유는 구부러지는 기능을 하기 위해서고, 달리 말하자면 구부러지는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여러 개의 마디로 이뤄진 구조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리보솜이 어떤 형태로 생겼길래 단백질 공장의 역할을 하고 있는지, 혹은 단백질 공장의 역할을 하는 분자는 어떻게 생겨야 하는지 살펴보자. 수많은 세포 중 실험실에서 손쉽게 다룰 수 있는 대장균 세포의 리보솜은 세 개의 RNA 가닥(그림 1, △파랑 △주황 △그림에 보이지 않지만, 파란색 RNA 가닥 근처의 짧은 한 가닥)과 55개의 단백질(회색)로 구성돼 있다. 리보솜은 바로 이런 단백질들이 기다란 세 개의 RNA 가닥에 마구 엉켜있는 동그란 모양의 거대 생화학 분자다. 우리 어머니는 내가 어릴 때 손수 내 장갑이며 목도리, 조끼 등을 떠 주셨다. 어머니는 뜨개질이 끝나면 뭉친 털실에 바늘을 꽂아 털실이 흩어지지 않게 하셨는데, 리보솜의 구조를 이렇게 서로 다른 길이의 기다란 세 가닥의 실이 55개의 굵고 짧은 구조체에 엉켜 흐물거리지 않고 구형의 구조를 유지하는 것으로 비유할 수 있다. 이 구조 내부에는 mRNA 가닥이 결합할 수 있는 공간이 존재해 리보솜이 mRNA에 결합한 후 이동하며 단백질을 합성하게 되는데, 이런 모습은 마치 군대 유격훈련 시에 밧줄을 가슴과 발목에 걸고 빠르게 강을 건너는 훈련병의 모습과 유사하다. 리보솜에는 아미노산과 결합한 tRNA가 진입할 수 있는 통로도 존재한다. 리보솜이 mRNA를 따라 달리다 특정 tRNA가 결합할 수 있는 암호 위에 위치하게 되면, 비로소 tRNA가 리보솜 내부 통로(A-자리)로 진입(Accept)할 수 있다. 새로운 tRNA가 다시 A-자리에 도달하면 원래 있던 tRNA는 P-자리로 이동하고, 이때 기존의 아미노산과 새로이 들어온 아미노산이 ‘엔트로피 트랩’ 효과에 의해 펩타이드로 중합(Polymerization)된다. 아미노산을 잃은 tRNA는 리보솜의 뒤쪽 통로(E-자리)를 이용해 빠져나간다(Exit). 연결된 펩타이드는 긴 탈출 터널을 통과한 후 착착 접혀 독특한 구조를 형성하며, 형성된 구조에 따른 기능을 수행한다. 리보솜이 mRNA 외줄의 끝에 도달하게 되면 두 덩어리(50S·30S)로 분리되며 단백질 합성이 종료되고, 다시 외줄의 처음으로 돌아가 지금의 과정을 반복한다.

리보솜 바꾸기
그렇다면 왜 이렇게 놀라운 기능을 하는 리보솜을 굳이 가공하려 할까? 비록 세포에 존재하는 현재의 리보솜이 진화를 이미 완료했는지 아니면 더 진화할지는 알 길이 없지만, 현재의 리보솜이 자연계에 존재하는 20개의 L-α-아미노산만을 인식하고 이를 효율적으로 합성하도록 진화한 생화학 분자임은 틀림없다. 따라서 실제로 거울상을 갖는 D-α-아미노산이나, 탄소가 하나 더 추가된 형태의 β-아미노산이 리보솜에 의해 인식되는지 확인해보면 그 효율이 매우 낮다. 

탄탄하지만 여전히 말랑말랑한 털 실타래를 이리저리 눌러 다른 구조로 변형할 수 있는 것처럼, 합성 생물학자들은 리보솜을 구성하는 RNA 가닥과 단백질의 특정 염기서열 혹은 아미노산 서열을 바꿔 새로운 형태의 리보솜을 탄생시킨다. 이렇게 바뀐 리보솜은 위에서 언급한 △거울상 D-아미노산 △Dipeptide(아미노산 두 개가 연결된 형태) △β-아미노산 △γ-아미노산 또는 원형 구조의 비천연 단량체를 인식하고 이를 연결하는 능력을 가진다. 수십 억 년의 시간을 거쳐 진화한 리보솜을 실험실에서 원하는 기능을 가진 형태로 단 몇 달 만에 새롭게 진화시켜 독특한 기능을 하도록 재탄생 시킨다니 놀라운 일이다.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보자. 새롭게 가공된 리보솜은 일반적으로 세포 내 혹은 시험관 내에서 탄생시키는데, 이 방법에는 약간의 문제가 있다. 세포 내에서 탄생한 리보솜은 세포의 생존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만큼 기존의 단백질 생산 효율을 유지하기 위해서, 큰 변화를 만들기 어려워 비천연 단량체를 연속적으로 중합하는 효율이 낮은 경우가 많다. 이와 반대로, 시험관 내에서 탄생한 리보솜은 비천연 단량체를 중합하는 효율은 높으나 세포 성장과 관련 없이 탄생시킨 터라 세포에 도입할 경우 세포의 생명현상을 담당하지 못해 세포가 증식에 어려움을 겪고 대량생산을 할 수 없다. 따라서 자연계의 리보솜과 변형된 리보솜이 하나의 세포 내에 공존하며 각자 잘하는 것을 서로가 방해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작동하는 시스템이 이상적인 해결 방안일 것이다. 이러한 시스템을 Orthogonal System이라 한다(orthogonal은 ‘직교’보다는 ‘독립적인’ 또는 ‘분업의’ 라는 뜻으로 번역할 때 그 의미가 보다 선명해진다).

이를 위해 가공된 리보솜이 세포 내에 존재하는 mRNA 가닥은 인식하지 않고, 별도로 세포에 넣어주는 특별한 mRNA만 인식하도록 설계하거나, 리보솜을 구성하는 세 가닥의 RNA를 한 가닥으로 묶어줘 단백질 합성이 끝난 후 두 덩어리로 분리되지 못하도록 한다. 즉, 자연계 리보솜 덩어리는 자연계끼리, 가공된 리보솜은 가공된 리보솜끼리만 결합하게 해 서로 섞여 결합하지 않도록 고안된 장치다(그림2).

지금까지 우리는 리보솜이 어떤 구조를 가지고 어떤 역할을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변형돼 사용될 수 있는지 살펴봤다. 리보솜은 앞서 언급했듯 다양한 변화를 줄 수 있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진 신개념 합성 공장이다. 우리 주위의 모든 고분자를 화학 중합이 아닌 리보솜으로 만들어내는 그날까지 합성 생물학자들의 리보솜 가공 연구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림 2. 가공된 리보솜을 통한 물질 생산의 분업화. 가공된 리보솜(파랑)은 자연계 리보솜의 역할을 방해하지 않고, 자연계 리보솜(연두)도 가공된 리보솜의 물질 생산에 전혀 관여하지 않는다
▲그림 2. 가공된 리보솜을 통한 물질 생산의 분업화. 가공된 리보솜(파랑)은 자연계 리보솜의 역할을 방해하지 않고, 자연계 리보솜(연두)도 가공된 리보솜의 물질 생산에 전혀 관여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