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호길 박사 11주기에 부쳐] 그날
[고 김호길 박사 11주기에 부쳐] 그날
  • 박혜경 / 교수부인회회장
  • 승인 2005.05.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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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 창 밖을 보니 여린 순을 겨우 내놓은 가로수 뒤로 눈에 덮인 듯이 보이는 하이얀 나무들이 줄지어 늘어선 것이 눈에 들어왔다. ‘밤새 덜컹이는 창문 소리가 심상치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설마 눈까지?’하며 다가 가 보니 포항을 비운 며칠 사이에 만개해 버린 벚꽃이었다. 지곡동산의 잔인한 ‘그 날’의 4월이 또 온 것이다. 화창한 봄 햇살의 따사로움에 한껏 취해있던 4월의 마지막 날 정오 무렵 웬만해서는 큰 소리를 내지 않는 남편이 현관문을 거칠게 열며 호곡呼哭에 가까운 소리로 내던진 일갈一喝은, 비슷한 햇살만 마주해도 지금껏 가슴이 서늘해오는 비보悲報였다. 학교발전을 위해 밤낮으로 노심초사하시던 김호길 초대 총장님께서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나신 지 올해로 벌써 11년째이다. 그리고 그동안 학교는 하루가 다르게 위상을 바꾸며 발전해 왔다.

지난 가을 삼성이 운영하는 호암재단에서 남편을 공학부문 추천위원으로 위촉한다는 의뢰가 왔다. 6명의 엄선된 추천위원들이 각 분야의 쟁쟁한 후보들을 내세웠고, 수상은 남편이 추천한 기계공학부문의 김경석(미 브라운대) 교수가 차지했다. ‘한 편의 논문이라도 그것이 필적할 만한 것이라면’ 하는 재단의 취지대로 학연이나 지연이 철저히 배제된 엄격하고도 공정한 심사를 잘 해준 덕인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기준이 앞으로도 계속 지켜지는 한 한국의 노벨상을 지향하는 그 상의 대다수는 포항공대출신의 몫이리라는 것은 비단 나만의 확신은 아닐 것이다. 개교 초부터 무은재 기념관 앞에 빈 좌대를 마련하고 ‘그 날’이 오도록 독려하고 애쓰신 박 총장님 이하 역대 총장님들과 오늘이 있기까지 오로지 연구에만 매진해 오신 교수님들과 학문을 향한 학생들의 뜨거운 열정과 뒤에서 수고해 주시는 많은 직원 분들의 바램이 이어지는 한, 포항공대가족의 야무진 꿈이 이루어질 ‘그 날’은 그리 멀지만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