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이 곧 시작이다
졸업이 곧 시작이다
  • 박수문 / 화학 교수
  • 승인 2005.02.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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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약 800여 명에 육박하는 본교 졸업생들이 본교 창설 이후 15번째로 탄생한다. 이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각기 4년, 6년 또는 그 이상의 공부 끝에 학사, 석사 또는 박사 학위를 취득하여 사회에 첫발을 내딛거나 다음 단계의 공부를 준비한다. 이처럼 긴 시간 동안 졸업생들이 이룬 성취를 진심으로 축하하며, 그들의 앞길이 순탄하기만을 빈다. 그러나 졸업하고 떠나는 학생들의 교육을 얼마간이라도 담당했던 선생으로서 떠나 보내는 아쉬움과 함께 당부하고 싶은 말들을 몇 마디 쓰고자 한다. 진부하고 식상할 수 있는 얘기지만 졸업은 곧 인생의 시작점이다. 이는 졸업식이라는 말이 영어의 시작이라는 뜻의 commencement라는 단어로 표현된다는 점으로부터도 쉽게 알 수 있다. 모든 사회생활은 졸업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중·고등학교 때 영어를 공부하면서 늘 보와 왔던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라고 우리말로 통역되는 영어의 속담을, 필자는 “준비가 된 자에게는 반드시 기회가 온다”라는 순 우리의 개념으로 번안하기를 제안한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을 돕는 이는 무슨 일에건 자기 자신에 관한 한 늘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세상을 살다 보면 기회는 끊임없이 오고 또 가게 마련이나 때로는 그것이 기회인줄 모르고 지나치기도 하고, 때로는 뻔히 알면서도 준비가 안되어 잡지 못하는 경우를 흔히 본다. 우리 대학의 졸업생들은 모두 과학도나 공학도이니 과학자들이 놓치지 않아야 하는 기회라고 여겨지는 serendipity라는 단어에 관하여 생각해보자. 사전에 따라 다르지만 이 단어는 “뜻 밖의 발견” 또는 “운 좋은 발견”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적합할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 운 좋은 발견이란 것이 과연 있는 것일까? 미국 텍사스대학교 화학과 교수였다가 지금은 은퇴한 Royston M. Roberts 교수의 “Serendipity - Accidental Discoveries in Science”(Wiley, New York, 1989)라는 책에서는 많은 과학적인 발견 또는 발명, 이를테면 Christopher Columbus의 미대륙 발견, Alexander Graham Bell의 전화 발명, Joseph Priestly의 산소의 발견, Alexander Fleming의 페니실린의 발견, 심지어는 James Watson과 Francis Crick의 DNA 구조의 발견까지도 serendipity로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이들은 “운 좋은 발견”일가? 그렇다면 이 유명한 탐험가나 과학자들은 억세게 좋은 운만으로 이와 같은 발견을 해서 역사책이나 과학책에 그들의 이름을 남기거나 노벨상을 수상했을까?
실험실에서 연구를 위한 새로운 실험을 해본 사람은 누구 막론하고 serendipity를 한번쯤은 경험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실험을 하다 보면 많은 경우에 문제가 원하는 방향으로 풀리지 않고 엉뚱한 방향으로 가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그 원인을 추적하다 보면 예상치 않던 문제에 접하거나 엉뚱한 방향으로 연구가 진행됨을 발견할 때가 많다. 어떤 실험실에서든 이런 과정 끝에 문제를 풀거나 연구가 계획되지 않았던 방향으로 시작된 경우가 많다는 점을 인정할 것이다. 2000년도에 노벨상 수상으로 이어진 전도성고분자의 발견은 이와 같은 경우의 좋은 예이다. 그러나 이런 문제에 대하여 늘 생각하고 있고 그 결과를 과학적으로 해석할 준비가 되어 있는 한 이들은 작지만 새로운 발견으로 이어지고 이것은 곧 또 하나의 serendipity로 기록될 것이다.
오늘 졸업하는 졸업생들에게도 바로 이점을 상기시키고 부탁하고 싶은 것이다. 늘 준비하고 있고 생각하고 있는 이에게 기회는 끊임없이 오고 간다. 기회가 올 때 준비된 이는 그 기회를 잡을 수 있지만 준비되지 않는 사람은 기회를 알아보지도 못할 뿐 아니라 혹 잡는다 해도 자기 자신에게 도움이 되도록 만들지 못한다. 그래서 졸업생 여러분들에게 부탁하는 것은 이 학교를 떠난 뒤에도 끊임없이 노력하고 준비하여 오는 기회를 놓치지 말고 성공하기를 기원한다. 그리하여 하늘에 자기 자신을 돕는 이로 보여지길 바란다. 우리는 흔히 기회를 잘 잡는 이를 운이 좋은 사람이라 한다. 그러나 이는 성공한 사람에 대한 모욕이다. 진정한 기회는 노력하고 준비하는 이에게만 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