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패권 시대의 전환점에서
기술 패권 시대의 전환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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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11.07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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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을 넘어 지구촌 전반의 국가·진영 간 갈등의 확산 속 우리나라와 세계는 경제·기술 안보와 글로벌 공급망 등 기존 과학기술 협력 체제와 국제 질서에 대해 새롭고 다양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미국과학진흥협회(AAAS)에 따르면 “오늘날 세상에서 어떤 나라도 과학기술 없이 혼자 존립하거나 번영할 수는 없다.” 사실 글로벌 무대에서 펼쳐지는 세상의 엄청난 미래 변혁의 기저에 과학기술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특히 △기후변화 △에너지 △우주 △해양 등 분야에서는 글로벌 무대에서 활발한 협력과 치열한 경쟁이 교차하는 가운데 과학기술과 외교·안보 측면이 자연스럽게 융합되면서 최근 과학기술 외교와 경제 안보가 부각되고 있다.

기술 패권 경쟁의 심화는 중국의 부상에 따른 미국의 견제 강화와 이에 대한 중국의 대응에 기인한다. 하지만 최근 기존 무역 제재 범위를 넘어 기술 및 첨단산업생태계의 제재로 진화함에 따라 반도체, 배터리 등 첨단 산업의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더불어 첨단·신흥 기술과 국제 정치가 결합하는 기정학이 떠오르고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주요 선진국들은 과학기술과 △경제 △외교 △안보의 융합에 주목하고, 통상정책뿐 아니라 공급망 재편과 산업정책 강화 등 새로운 형태의 과학기술 외교와 경제 안보 전략을 수립 및 추진하고 있다. 이전과 달리 과학기술과 경제가 외교와 안보에 강하게 연계되며, 국익과 국가안보의 궁극적인 목적을 위해 과학기술적 측면과 경제적 수단이 긴밀하게 연계해 사용되는 것이다. 특히 △우주기술의 이중 용도 △이차 전지 등 자원의 무기화 △기후변화 분야의 탄소국경세 △기술 통제 범위의 확대 등 의제에서는 과학기술의 영역과 외교 및 안보 이슈가 중첩되기도 한다.

사실 글로벌 무대에서의 과학기술자들의 모든 활동은 외교적 맥락과 함의를 가진다. △국제공동연구 △과학기술 인력교류 △과학기술 협정에 기초한 협력 등 과학기술적 진보와 목표 달성을 위한 국제협력을 촉진하기 위해, 모든 가용수단을 활용하는 것은 과학기술자들이 가장 익숙한 활동이다. 또한 인류 역사 속에서 과학기술이 외교와 평화 구축의 도구로 사용되는 등 과학기술과 외교 간 연결고리의 역사는 길다. 예를 들어 1959년 남극조약은 냉전 시대의 첫 군축 합의였고, 1975년 아폴로-소유즈 우주 도킹은 데탕트 시대의 상징적 사건이 됐다. 이를 바탕으로 오존층 보호에 대한 비엔나 컨벤션, 유엔의 기후변화협약 등에서도 과학기술 관련 단체들의 활약이 이어졌다. 사실 국익을 넘어 국제협력을 통한 외교와의 과학기술 결합은 매력 자산으로, △적대국과의 관계 개선 △동맹국과의 파트너십 △개도국 대상의 선진국 지위 향상 등 다양하게 활용될 수 있다.

이처럼 21세기의 외교는 국가나 사회 간 더 넓은 유대관계의 형성과 지속에 도움 되는 모든 활동을 포괄하고 있다. 특히 과학기술의 경우 매우 복잡하고 글로벌한 성격을 띠는 난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과학·통합적인 접근과 글로벌 협업이 필수적이다. 따라서 과학기술인들뿐 아니라 △대학 △기업 △과학기술 관련 비정부기구/단체 등 다양한 민간 외교관들의 역할이 증대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전쟁의 참화를 딛고 지난 70년간 비약적 경제성장을 통해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 냈고, 1964년 유엔무역개발회의 설립 이후 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 격상된 최초의 국가가 됐다. 한편 우리대학도 1986년 창립 이후 지방의 소규모 후발 신생 대학으로 시작해 세계적 수준의 연구 중심대학을 꿈꾸는 담대한 여정을 달려왔다.

이제 우리나라는 진정한 선진강국, 우리대학은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적 대학을 향해 지금까지 가보지 못했던 길을 다시 떠나야 한다. 이 여정에서 우리나라와 대학 내 더욱 많은 과학기술인과 미래 세대들이 새로운 길을 여는 개척자이자 민간 외교관으로서 국경을 넘나드는 협력과 연대에 동참하고, 우리 모두의 미래를 위협하는 글로벌 도전에 대한 혁신적인 해법을 찾기를 기원한다. 최근 지구촌 변혁 속 주변의 소용돌이 흐름은 더욱 빨라졌지만, 우리는 더 먼 미래, 더 넓은 세상을 마주하기 위해 더욱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이러한 중차대한 변곡점에서 최근 갑작스럽게 제기된 연구개발(R&D) 예산 삭감 논란은 다소 유감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