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대 김성근 총장께 묻는다
제9대 김성근 총장께 묻는다
  • 손유민 기자
  • 승인 2023.09.06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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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대 김성근 총장
▲제9대 김성근 총장

대학 이사회는 현재 우리대학이 세계 최정상급 연구중심대학으로의 도약을 위한 전환기를 맞고 있다고 평했다. 이런 전환기에 포스텍의 총장으로 선임되신 배경과 앞으로의 과업에서 최우선으로 둘 가치가 무엇인지.

많은 축하 인사 중에서, 어느 분이 이제 한국에도 하나쯤은 있어야 하는 ‘제대로 된 대학’을 만들어 보라고 말씀하셨다. 이상하게도 그 말이 꽂혔다. 여기서 말하는 제대로 된 대학이란 학문적인 태도가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환경에서 교육과 연구를 통해 우수한 학생을 배출해 국가에 환원하는 곳이다. 분명 우리나라에도 좋은 대학이 많지만,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점이 있다면 대학 전체를 통해 생동하는 학문적 분위기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많은 연구자가 연구 그 자체보다는 연구비에 대해, 논문의 질보다는 저널에 관심이 큰 것 같다. 이는 우리나라가 압축 성장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객관적인 업적을 보여주는 지표를 중시하는 분위기로부터 유래됐지만, 그것이 본질이 되면 안 된다. 학생들은 지적 성장의 실현이 최우선 목표여야 할 텐데, 대부분이 빠른 취업, 학점 관리 등의 단기적인 목표에 집중하고 있다. 제대로 된 대학에서는 ‘나’라는 인간이 가진 타고난 지적 역량과 성품을 극대화하도록 성장해, 다가오는 미래에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하는 열망이 필요하다. 교수들은 단순히 지식 전달에 그치지 않고, 학생들이 영감을 얻도록 전달하는 게 중요하다. 결론은 ‘학문이 주가 되는 대학’이다. 업적이나 지표 성장에 그치지 않고, 대학 구성원 모두가 성장하는 분위기로 가득하기를 바란다.

최근 우리나라는 △사회집단 간 갈등 △수도권 집중 △의료 열풍과 같은 특이한 분위기의 시대가 계속되고 있다. 이런 문제는 무척 해결이 힘들긴 하지만 결국은 시간이 지나면 평형을 찾아가리라 생각한다. 포스텍은 오히려 더 넓은 세상으로 눈을 돌려 세계를 무대로 삼는 것이 우리가 현실에 대응하는 방법일 것이다.

 

앞으로 다양한 대학 구성원들과 어떤 방법으로 소통해 나갈 계획인지.

다양한 대학 구성원들과 소통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당장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한 일은 학생들과 영화 ‘오펜하이머’를 보려면 갈 수 있는 영화상영관이 포항에 몇 군데가 있는지 찾아본 것이었다. 학생들과는 이런 식으로 격식을 차리지 않고 자주 만나는 것이 필요하리라 생각한다. 지금 하는 인터뷰처럼 사전 질문을 알려주지 말고 평소에 드는 생각, 주류와는 다른 의견 모두 상관없이 말이다. 연구실에 소속돼 있기 때문에 만날 기회가 자유롭지 않은 대학원생들과는 타운홀미팅을 하면 좋을 것이다. 딱히 공식적인 결론이 도출되지 않더라도, 자유롭게 질문이 오가는 토론의 현장 속에서 자연스럽게 의견이 수렴될 수 있다. 교수님들께는 총장 서신을 통해 내 생각을 알려드릴 생각이다. 공식적인 회의를 통해 논의하는 것과 별개로, 좀 더 개인적인 서신을 통해 총장으로서 사고의 흐름, 즉 대학의 정책이 형성돼 가는 과정에서 그 배경과 취지, 방향을 알려드리려고 한다. 자주는 아니지만 이런 서신을 정기적으로 보내드리면서 대학의 방향을 같이 고민하고자 하는 데 의의를 두려고 한다.

어떤 기관이든 새로운 안을 만들 때면 조금이라도 잘 구성한 안을 높은 완성도로 내놓고 싶어 한다. 다만 준비하는 과정이 길어지고 안이 성숙해질수록 그 안은 경직되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대학의 변화를 갑자기 받아들이게 되는 구성원들의 불만이 야기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쉽지는 않겠지만 안이 만들어지는 중간 과정에서 대학 구성원에게 알리면서 의견을 수렴하는 노력을 시도해 보고자 한다.

 

올해 우리대학 신입생 수 및 외부인 출입 증가로 인해 △주차 공간 △생활관 △학생 식당을 이용하는 대학 구성원들이 불편을 제기하고 있다. 총장님의 생각과 앞으로의 대응책은 무엇인지.

우리대학 구성원들만 있던 대학에 외부인이 들어오면서 유동 인구가 많아지고 따라서 불편함이 생기는 것 같다. 다른 것도 그렇지만 혼잡이라는 것도 양면성이 있다고 본다. 혼잡이 아예 없다면 과연 어떨까. 넓은 부지에 학생과 교직원만 있고 아무 사람도 들어오지 않는다면 이상하지 않은가. 대학에 중요한 생동감이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혼잡하다는 것 자체는 그만큼 포스텍이 번성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구성원뿐 아니라 대학과 협력하기를 원하는 외부인이 들어와 함께 일하는 분위기로 받아들이는 것이 옳다고 본다.

지금의 불편은 한꺼번에 대학으로 들어오는 외부인이 갑자기 많아지면서 생긴 현상으로 보인다. 많은 인원을 원활하게 수용하기 위해서는 건물 신축을 포함한 더욱 체계적인 캠퍼스 관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구성원들은 이런 현상에 어느 정도 익숙해져 수용하는 자세도 필요하다. 너무 배타적인 자세를 취하지 말고, 우리대학과 협업하려는 움직임을 포용적인 자세로 받아들이면 좋겠다. 물론 학생들의 불편이 상당하다니 장단기 해결방안을 강구할 것이다.

 

매년 인상되는 대학원 등록금에 대해 어떤 생각인지.

대학원생에게 학비 부담이 크고, 대학에서 받는 조교수당(생활비)만으로 생활하기에는 빠듯하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한다. 대학원생 조교수당은 지도교수의 연구비로부터 지급되기 때문에, 대학원 등록금을 인상하면 결국 대학원생과 지도교수 모두에게 부담이 될 것이다. 따라서 물가 인상 등으로 인해 대학원 등록금 인상은 필연적이나 그 적정한 수준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의 전환기 상태에서는 당장 대학원생의 부담을 덜 수 있는 해결책이 부재했던 것이 사실이며, △대학 △교수 △대학원생 모두가 조금씩 짐을 나눠서 지는 구도였다. 

향후 우리대학이 글로컬 사업 지원 대학으로 선정된다면 외부 재정 지원이 들어오므로 교수님들의 재정 부담이 줄어들 것으로 기대한다. 장기적으로는 대학원생 기금이 필요하다. 외국의 경우를 보더라도 여기에는 동문의 참여가 중요한데 우리대학 졸업생 연령대를 보면 아직 좀 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기금을 모으는 동기로는 사회에 대한 기여 의식과 함께 애교심도 크게 작동한다. 포스텍은 애교심과 자부심이 강한 대학이기 때문에 앞으로 이런 부분에서 상당한 진전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꾸준히 강조해 온 퍼시픽 밸리를 달성하기 위해 어떤 지원을 계획하고 있는지.

여태까지 포스텍은 창업 센터, 체인지업그라운드 개소 등 모두가 경탄하고 기대할 만한 변화를 이뤄왔다. 국내 다른 대학과 비교해 포스텍은 창업 생태계 조성뿐 아니라 학생들의 활발한 창업이 실제 이뤄지는 등 다른 어느 곳보다 앞서 나가고 있다. 충분히 자부심을 가져도 되며 부족함이 없는 상태다. 단, 외국과 비교할 때 한 가지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한국에서는 스타트업 기업이 단계별로 규모를 키우며 지속적인 성장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국내의 경우 단기·이익 지향적 투자가 대부분인 반면 해외의 자본 투자 시장은 장기적이고 양질의 자본이 활발하게 순환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기술개발과 창업에 중요한 것은 자본의 성격이다. 양질의 자본이 들어와 연구자들로 하여금 동기부여가 되도록 하고, 장기간 기다려 주면서 이익을 구현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다행히 포스텍 기술지주회사가 여기에 대해 충분한 인식을 가지고 활발히 운용되고 있으니 기대를 걸어 본다.

최근 오프캠퍼스 제도가 시행되고 있으나 학과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보이지 않는다. 온·오프라인 학사 제도에 변화가 있을지.

오프캠퍼스 제도의 취지는 매우 좋다. 학생들이 여러 이유로 대학 밖에서도 강의를 들으며 학사 계획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상적으로는 학생이 개별적으로 오프캠퍼스로 보낼 학기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하겠지만 실제로는 학과마다 프로그램을 운영할 학기를 지정한다. 매 학기 달라지는 학생들의 수요에 맞춰 온·오프라인 병행 강의 및 커리큘럼을 준비하는 데 부담이 들기 때문일 것이다. 교수의 강의 부담을 늘리지 않으면서 오프캠퍼스 제도를 활성화할 방안을 고민 중이다. 일례로 해외 대학들과 맺은 혹은 추진할 MOOC 강의 등 학생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온라인 강의를 활용하여 강의를 듣게 하고 시험만 포스텍 기준으로 치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포스텍은 해외에 양방향으로 있는 대학이 돼야 한다. 그러나 해외연수 등으로 인해 졸업이 늦어지는 것은 피하고자 현실적인 방안을 강구할 것이다.

 

의과학대학원 신설 이후 연구 중심 의대 유치를 위한 대학 차원에서의 노력을 지속해 왔다. 이에 관한 총장님의 비전은 무엇인지.

여러 층위에서 신중하게 생각해 보자. 혹자는 포스텍의 정체성이 자연과학과 공학인데 왜 의학을 지향하느냐고 질문할 수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이는 충분히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며 실제로 세계 유수의 대학들은 이런 과정을 밟아 왔다. 생명과학과 의학은 이미 상당히 성숙한 학문인 물리학이나 화학에 비해서 아직도 모르는 것이 많은 분야다. 또한 인간의 삶의 질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도 중요하다. 따라서 포스텍이 이미 강한 분야인 자연과학과 공학을 중심으로 의·생명 분야와 협업하기 위한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고 생각한다. 의·생명 연구가 주목받는 현시점에 지나치게 방관자적인 입장을 취한다면 대학이 낙오할 가능성 또한 크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가능성을 타진하고 그 전망을 냉정하게 분석해 봐야 할 것이다.

다만 반드시 의대를 설립해야 하느냐는 별개의 문제다. 포스텍이 추진해 오던 연구 중심 의대를 설립할 경우 이점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생명과학을 비롯해 자연과학과 공학의 다양한 연구를 통해 개발 중인 기술은 결국에는 사람에게 이롭게 쓰여야 하고, 그러려면 임상병원을 가진 의대 설립에 일정 부분 정당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때 우리가 설립하고자 하는 의대 또는 의과학대학원에 대해 △포스텍의 강점인 분야들이 어떻게 구체적으로 연결되고 기여할지 △다른 대학들과의 차별성은 어떻게 가질지 △과연 임상의가 아닌 의과학자를 제대로 배출할 수 있을지 등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검토할 필요가 있다. 또한 과거의 다른 사례를 볼 때 지역 주민의 요구와 대학의 요구는 다를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도 합의점을 찾을 필요가 있다. 대학 연구진들은 최첨단 의과학 분야를 추구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지만, 지역 주민들에게는 당장 찾아가 치료받을 수 있는 병원이 더 필요할 것이다. 따라서 의대설립 문제는 학문적 전망과 시대적 소명, 그리고 지역발전과 재정계획 등 다차원적인 측면에서 전향적이되 신중하고 냉정하게 분석해 접근하려고 한다.

 

대학평가가 과거의 명성에 미치지 못한다는 대학 구성원들의 우려가 있다. 총장님의 견해와 앞으로의 방안은 무엇인지.

어려운 문제다. 대학평가에 연연하지 않는 수준의 대학이 빨리 되면 좋겠는데 국내는 물론 해외의 경우도 세계 최고의 몇몇 대학들 외에는 실질적으로 이를 도외시할 수는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에 대응할 양면 방안이 필요하다고 본다. 교수와 학생 개개인은 교육과 연구에서 열심히 자신의 역량을 키우는 데 집중하고, 총장을 비롯한 대학 직원들은 평가 기관에 우리대학의 장점을 홍보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방안이 없다고 생각한다. 대학평가에 대한 걱정과 대응은 총장과 보직자들에게 맡기고 모두가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초기의 포스텍은 엄청난 성장세를 보이는 대학이었고, 구성원들에게서는 개척자적인 정신을 엿볼 수 있었다. 일종의 다른 DNA, 즉 대세거부형 혁파적 학풍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감히 외부에서 봤던 느낌을 얘기한다면 최근 다소 이런 정신이 희석된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포스텍은 독특한 학풍을 가진 대학으로서 세계적인 수준에 와 있으며, 대학평가 순위에 연연해하기보다는 우리의 길을 추구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임기 동안 이루고 싶은 목표는 무엇인지.

포스텍을 남들이 좀 더 부러워하는 대학으로 만들고 싶다. 즉, 남들에게 ‘내적 갈등’을 일으키게 하고 싶다 (웃음). 예전에는 역사가 짧고 수도권으로부터 먼 지방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포스텍을 선택하는 학생들이 상당히 있었는데, 최근 극심한 수도권 집중 현상으로 인해 그 수가 줄어들고 있다. 이를 거스르는 새로운 평형을 만들고 싶다. △학부생 △대학원생 △교수 모두 대학을 선택할 때 포스텍을 쉽게 배제하지 못하게 하고 싶다. 인위적으로 다른 대학을 끌어내리는 분위기가 아니라 포스텍만의 길을 제시하고 외부에서도 부러워할 만한 요소를 자꾸 만듦으로써 우리대학을 선택하고 싶게끔 만들고 싶다. 포스텍은 다른 대학들과 달라야 하고 과거의 포스텍과도 달라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