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에세이] 제대로 된 ‘술자리 예의’ 갖고 연말연시 보내자
[독자에세이] 제대로 된 ‘술자리 예의’ 갖고 연말연시 보내자
  • 송광종 / 산공 97
  • 승인 2004.12.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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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공대 학생들은 술을 못 마신다. 소위 통나무집이라 일컫는 국내 유일의 학내주점이 있는 학교라지만 실상 학생들은 그다지 술을 즐기지 않는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자신의 주량조차 모르고 있으며, 잦은 술자리를 갖는 학생들이라 할지라도 주도에 관해서는 배울 기회가 거의 없으니 혼잡한 술자리가 형성되기 일쑤다. 이를 두고 자유롭고 격식 없는 문화라 생각하고 넘어 가는 것은 너무도 안일한 사고방식이 아닐 수 없다.

실제 포항공대 학생들의 졸업 후 진로 현황을 살펴 보면 진학률보다는 취업률이 높은 것이 현실이다. 물론 실제 산업 현장에서 본교생들의 실무능력이 최고로 인정 받고 있다는 졸업생들의 말을 들을 때면 항상 뿌듯해지곤 한다. 허나 기업 내 인사고과 시스템에서의 평가기준에서 실무능력 못지않게 중요한 기본적 소양은 대인관계 유지 능력이다. 그리고 이 부분에 있어 대한민국 기업이라면 빼놓고 말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술자리에서의 올바른 처신이라 하겠다. 실제 대기업의 입사 면접을 보다 보면 “술은 잘 먹나?”라는 질문을 자주 받곤 하며, 심지어 술자리에서의 태도를 면접시험 전형에 넣는 회사도 있다.

우리학교 학생들은 주도에 대해 관심이 없다. 그렇다고 주도가 없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대학에 들어온 후 어느 정도 보고 배운 것이 있으며 그에 따라 통용되는 것들에는 약간의 줄기마저 있다고 느껴진다. 문제는 그러한 주도들이 과연 올바른 것인지를 생각해 보지 않고 대부분이 그저 따라 하는 수준에 그친다는 것이다. 또한 자신이 알고 있던 술자리 예의가 만약 잘못된 것이었을 때 학교 밖의 어떤 모임에서 오해라도 사게 된다면 이는 큰 망신이 아닐 수 없다. 우리학교 학우들이 잘 모르고 있는 주도에 대해 살펴보자.

대부분의 학우들은 윗사람에게 술을 따를 때 왼손을 오른쪽 팔 밑으로 하고 오른손으로 병을 잡고 따르는 것을 예의로 한다. 그러나 이는 사실 한복을 입은 경우의 예의이고 그렇지 않은 경우 술을 바르게 따르는 방법은 왼손으로 병의 목 근처를 받치고 오른손으로 따르는 것이 맞다. 또한 아무리 친한 상대라 할지라도 한 손으로 술을 따르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결례이다. 이 경우 왼손을 편하게 오른 팔 밑으로 내리고 술을 따르는 것이 적당한 모습이다. 술을 받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단, 윗사람에게 술을 받을 경우 두 손으로 술잔을 감싸쥐듯이 들고서 받는 것이 좋다. 마지막으로 윗사람에게 술을 받은 후에는 상체를 돌려 잔에 입을 축이는 시늉을 하고 내려 놓는 것이 예의이다. 이를 두고 입수라 하며 우리학교 학생들이 거의 모르는 대표적 주도로 손꼽을 수 있다.

이제 술을 마시고 안주를 먹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자. 아랫사람이 건배를 제의하는 것은 결례이며 잔을 부딪칠 때는 윗사람의 잔보다 밑에서 다가가는 것이 예의이다. 건배 후에는 윗사람이 술을 마시는 것을 본 후 상체를 돌려 술을 마셔야 한다. 또한 술을 마신 후에 표정을 잔뜩 찡그리거나 “캬아!”하며 큰 소리를 내는 것은 결례이며, 눈치 없이 바로 안주를 먹는 것 또한 좋지 않은 모습이다. 그 외에 만약 부득이하게 술병에 술이 조금 남았을 때에는 끝까지 따르고 새로운 병을 들어 첨잔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 남은 술병을 내리고 새로운 병을 들어 따라 주는 등의 예의가 있다.

허나 주도에 있어 중요한 것은 자세만이 아니다. 사실 좀 더 까다로울 수는 있으나, 알아 두고 실천할 수만 있다면 매우 유용한 주도들이 있어 소개한다.

첫째, 남을 비방하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칭찬하는 것은 오히려 자신에게 득이 될 수도 있으나 비방하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의 신용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하기 마련이다. 둘째, 술 마시는 속도는 윗사람에게 맞춘다. 서로의 주량을 적당히 가늠하여 윗사람과 같이 취해 가거나 좀 더 늦게 취할 수 있도록 속도를 조절하라는 것이다. 주량이 매우 약한 사람의 경우에는 처음 1~2잔의 성의를 보인 후 건강과 같은 이유를 들어 공손히 사양하는 것이 좋다. 셋째, 아랫사람들과 술을 마실 때 오히려 더욱 긴장을 풀어서는 안 된다. 안이한 태도로 마음 놓고 마시다가는 신망을 잃기 십상이며 결과적으로 자신의 이미지 관리에도 치명적인 타격을 입기 쉽다. 넷째, 대화가 끊기지 않게 적당히 말하되 자신의 신세나 처지를 말하는 것은 좋지 않다. 오히려 상대방의 이야기에 대해 관심을 갖고 들어 주며 성의 있게 대꾸를 해 준다면 좋은 인상을 남길 수 있다. 다섯째, 기분이 좋지 않을 때 술을 찾는다면 술이 깨고 난 후 더욱 더 망쳐진 기분을 맛보기 쉬울 것이다. 기분 나쁜 일들이 있을 때 ‘술을 마시면 잠시나마 잊혀지겠지…’ 하는 사고방식은 매우 잘못된 것이다. 오히려 술은 사람을 극단적으로 바꾸어 비극적인 결과를 만들어 내기 일쑤이다. 마지막으로 술자리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할 때는 그 다음 날 하는 것을 권한다. 술을 마시고 흩어지는 와중에 하는 인사는 무의미하게 되기 마련이다.

술을 좋아하고 잘 마시는 후배들에게 마지막으로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처음에는 술의 맛을 알아서가 아니라 사람들이 좋고 분위기가 좋아 술자리를 즐긴다. 그러나 술을 잘 마신다 하여 몸 관리를 하지 않고 습관적인 폭주를 즐기다 보면 남는 것은 세 가지이다. 한 가지는 술의 맛을 남보다 조금이나마 빨리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또 한 가지는 비로소 자신의 주량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그만큼 좋은 건강을 망쳤다는 말의 반증도 될 수 있다. 나머지 한 가지는 좋지 않은 주벽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는 사람마다 다양하게 나타나겠지만 좋은 주벽을 기대하기란 무척이나 어려운 것이다. 술을 잘 마신다는 것은 좋은 능력이 될 수도 있으나 만용으로 이어지면 몸과 정신의 피폐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자신의 주량을 항상 정확히 알고 올바른 주도를 갖추어 건강한 술자리를 가질 것을 조심스럽게 권고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