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으로 금지해야 할까, 근로 아닌 근로
법으로 금지해야 할까, 근로 아닌 근로
  • 강민영, 강호연 기자
  • 승인 2023.06.15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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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 외 시간에도 상사의 연락에 시달리는 직장인(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업무 외 시간에도 상사의 연락에 시달리는 직장인(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주말에 걸려오는 업무 전화, 새벽에 오는 부서 단체 문자 또는 톡으로 골머리를 앓았던 적이 있지 않은가? 노트북과 스마트폰으로 시공간을 초월한 근무 환경이 갖춰진 요즘, 업무 시간 이외에도 업무 지시를 받고 즉시 그 업무를 처리하게 되는 경우가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일과 휴식이 완전히 분리되지 않고 24시간 업무 연락에 시달려야 하는 현실은 직장인에게 큰 피로감으로 다가온다. 이렇듯 항시적인 업무 환경이 조성됨에 따라, 최근 직장인들 사이에서 근로자의 여가 시간과 사생활을 보장하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연결차단권의 제도화 논쟁, 그 배경은

5,000명의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리얼서치코리아의 설문 결과, 국내 직장인의 44.9%가 퇴근 이후 상사로부터 전화가 걸려 오면 어떻게 대처하냐는 질문에 ‘상황이 되면 받는다’라고 답했다. 또한 퇴근 후 상사로부터 문자를 받을 때 47.7%가 읽고 답한다고 답했다. 이렇듯 국내에서는 아직 주말에도 상사로부터 온 연락에 답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난 2021년 경기연구원이 시행한 설문에 따르면, 국내 직장인 87.8%가 ‘근무 시간 외 업무 지시를 받은 경험이 있다’라고 답했다. 이어 근로 시간 외의 시간에 상사가 연락하는 이유로는 ‘상사의 갑작스러운 업무 처리 요청’이 70%로 1위에 달하는 등 평소 업무 환경과 태도가 원인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 크게 주목받고 있다.

이에 따라 최근 MZ세대를 중심으로 업무 시간 외 업무 지시를 차단하거나, 아예 근무 시간으로 인정해 임금을 늘려달라는 여론이 커졌다. ‘연결차단권’은 연결되지 않을 권리라고도 불리며, 근무시간 외 시간에 회사 측의 연락을 받지 않을 권리를 보장할 권리를 의미한다. 고용노동부는 근로자 보호를 명목으로 해당 내용을 법에 담는 방안을 강구 중인 것이 알려지면서, 이른바 ‘연결차단권’의 제도화에 대한 논쟁이 불거지고 있다. 

 

연결 차단권 제도화 찬성 입장은

국회예산정책처의 경제 동향에 따르면 2021년 기준 한국의 연평균 노동 시간은 1,915시간으로, OECD 36개국 가운데 4번째로 높다. 그런데도 퇴근 후 직장으로부터 연락을 받는 일이 다반사다. 고용노동부와 한국노동연구원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직장인 74%는 퇴근 후에도 업무 지시와 자료 요청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중 60%가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응답했으며, 근무와 퇴근 경계가 없는 상황을 제도적으로 개선해달라고 호소했다. 근로자들은 퇴근 후까지 이어지는 직장 근로의 연장으로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불만을 삭이고 참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현실적으로 회사를 상대로 대항하거나 업무 지시를 거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연결차단권을 제도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휴식 없는 노동은 근로자의 사생활을 침해하지만, 개인은 회사를 상대로 퇴근 후 업무 지시에 대한 저항권이나 발언권을 보장받기 어렵다는 것이 연결차단권 제도화 찬성 입장의 핵심이다. 영국의 신경심리학자 데이비드 루이스(David Lewis)의 연구에 따르면 근무 시간 외 업무 연락은 번지점프, 교통체증보다 더 스트레스를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쉼 없는 노동은 근로자의 균형 있는 삶과 건강을 해치고 업무 효율을 떨어뜨린다. 정부가 나서서 국가 차원의 단계적 제도화를 통해 근로자를 보호함으로써 정해진 근무 시간 이후의 업무 연락에 대응하지 않아도 직업적 의무 위반이 아님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연결차단권은 퇴근 후 쉼이 있는 삶을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법적 장치다.

 

해외에서는 어떻게 하고 있을까

실제로 연결차단권은 해외에서 속속 도입돼 시행 중이다. 프랑스는 2016년 세계 최초로 연결차단권을 법제화해 시행해 오고 있다. 50인 이상 기업에 대해서는 연결차단권에 관한 노사 협의 내용을 매년 의무 연례 협상(Mandatory Annual Negotiation, MAN)에 포함하도록 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벌금을 부과한다. ‘호출 대기’라는 개념도 도입했다. 호출 대기 시간은 원칙적으로 휴식 시간이지만, 회사로부터 연락받고 업무를 하게 되면 근로 시간으로 간주해 보상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도 근로자에게 불이익은 없다. 슬로바키아는 코로나19로 증가한 재택근무자들을 위해 연결 차단권을 노동법에 명시했으며, 포르투갈도 2021년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근무 시간을 벗어나 업무 연락을 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유럽뿐만 아니라, 필리핀 역시 근무 시간 이후 업무와 관련해 회사로부터 오는 연락을 무시해도 징계나 처벌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일본에서도 2017년부터 근무 시간의 적정한 파악을 위한 기준을 제도화해 시행하고 있다.

 

연결차단권 제도화를 반대하는 목소리

한편, 회사로부터의 업무 시간 외 연락을 금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사회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적절한 규율 수준을 정하는 것이 관건이라는 입장이다. 연결차단권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지자, 국회에서는 ‘퇴근 후 연락 금지’를 법제화하는 방안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고용노동부도 지난 3월부터 ‘연결되지 않을 권리 TF’를 출범해 본격적인 대책 마련에 돌입했다. 

 

직장인들이 퇴근한 이후에도 업무에 시달리지 않고 여유로운 일상을 보장받을 수 있는 실효적인 방안이 도출될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