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성형 인공지능 기술과 삶의 태도
생성형 인공지능 기술과 삶의 태도
  • 옥정슬 / 컴공 조교수
  • 승인 2023.06.15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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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계학습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아이디어를 구할 때나 재밌는 논문이 발표될 때마다 가끔 알고리즘에 의해 학습되는 인공지능에 나 자신을 투영해 보면서 이런저런 상상에 잠기곤 한다. 이런 상상 중에 내 삶을 되돌아보는 자아 성찰을 하기도 하고, 더 나은 나 자신을 위해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생각해보기도 한다. 이번 기회를 통해 최근에 생각해 보았던 것 한 가지를 공유해 보려고 한다.

적대적 생성 모델(GAN, Generative Adversarial Networks)은 생성자(Generator)와 판별자(Discriminator) 사이의 경쟁 과정을 통해 있을 법한 데이터를 생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생성자는 그럴듯한 가짜 데이터를 만들어 판별자를 속이려 한다. 반대로, 판별자는 진짜 데이터와 생성자의 가짜 데이터를 구분해 내려고 한다. 학습 초기의 생성자는 엉터리 데이터를 만들고, 판별자는 단순하게 가짜와 진짜 데이터를 구분한다. 생성자와 판별자 사이의 게임과 같은 적대적 학습 과정에서, 각각의 역량은 조금씩 개선되며 공진화(Coevolution)를 이룬다.

이런 적대적인 학습이 성공적인 공진화로 이어지려면, 생성자와 판별자 사이의 균형적인 발전이 중요하다. 이 균형이 깨지는 순간, 생성자와 판별자는 서로 발전하지 못하는 교착 상태에 빠지게 된다. 보통 판별자의 학습이 훨씬 쉽고 빠르다. 그러나 거의 완벽에 가까운 판별자의 피드백은, 도리어 생성자의 학습 기울기(Gradient)를 소실시킨다. 어떻게 해도 가짜라고 판별하니 생성자의 학습이 진행되지 않는 꼴이다. 이를 해결하고자 단순히 비평의 강도를 낮추거나 거짓되게 한다면, 이 역시 공진화를 방해할 수 있다.

이러한 생성자와 판별자 사이의 균형과 공진화는 내 삶 곳곳에 대입돼 나의 태도를 되돌아보게 한다. 교수로서 학생들이 지식 생산자로 성장하는 데 필요한 만큼의 피드백을 주고 있는지, 논문 비평가로서 학계 커뮤니티 발전에 도움이 되는 비평을 하는지, 또 나 자신에게 스스로 너무 엄격하지는 않은지 성찰하게 한다. 반대로, 강의나 연구를 만들어내는 생산자로서도 타인의 비평에 지나치게 민감해 나의 ‘학습 기울기’가 소실되진 않았는지 되돌아본다.

다른 한편으로, 생성자와 판별자 사이의 균형과 공진화는 인공지능 기술과 함께하는 미래에서 가져야 할 삶의 태도에 대해 고찰하게 한다. ChatGPT나 Stable Diffusion과 같은 생성형 인공지능의 발전은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데에 필요한 노력을 상당히 줄여준다. 몇 마디 명령어(Prompt)로 그럴듯한 소설을 쓰기도 하고, 미술전을 우승할 만큼 신비한 그림을 그려 내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명령어를 늘 정확하게 알아듣고 놀라운 결과물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거짓 정보나 엉망인 그림을 확신에 차서 출력하는 환각 효과(AI Hallucination)와 같은 문제도 빈번히 발생한다. 그러니 과제를 할 때도 ChatGPT의 답변을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될 것이다.

인공지능 기술을 백분 활용해 제대로 된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서는, 생성된 결과물을 유심히 살피고 잠재력을 최대화하는 코멘트(Comment)를 통해 인공지능과 상호작용하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는 상황에 맞추어 명령어를 최적화하는 것으로, 프롬프트 엔지니어링(Prompt Engineering)으로 볼 수도 있겠다. 인공지능과 함께할 미래 사회에서는 아마도 인공지능이 만들어내는 정보를 정확히 평가하고 어떤 것이 가치 있는지 구분해 내는 판별자의 역량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인터넷의 보급과 함께 이미 우리가 경험한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생성자와 판별자 사이의 공진화 및 조화를 통한 삶의 태도에 대한 고찰은, 인공지능 연구뿐만 아니라 내 삶에 중요한 질문을 남긴다. 아마도 이런 주제의 글을 쓰게 된 것은 학기 말에 기말고사 출제와 채점을 어떻게 해야 학생들이 더 건강하게 성장할지에 대해 교수로서 나 자신이 고민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창작과 비평, 그리고 성장과 평가 사이의 공진화를 위해 필요한 이들의 적절한 조화를 찾는 것은 나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고민해야 할 과제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