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안 사태와 핵폐기장
부안 사태와 핵폐기장
  • 정현석 기자
  • 승인 2003.10.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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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폐기장, 우리에게 돌파구는 있는가
지난 10월 24일, 여론의 초미의 관심사이자 뜨거운 쟁점이 되었던 부안 핵폐기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와 부안 대책위 사이의 공식적인 첫 대화가 열렸다. 세 달 여 넘는 기간 동안 부안의 밤을 밝혔던 촛불 집회와 촛불 시위, 폭력까지 동원된 극한적인 공권력과의 충돌, 사상 초유의 전국체전 보이콧 사태, 서울 원정 운동회와 반핵 집회, 장기간의 등교 거부 사태. ‘다시 우리 얼굴에 웃음 꽃이 피게 해달라’며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낸 부안의 한 초등학생. ‘핵없는 세상’ 이란 노란 머리띠를 두르고 반핵 시위를 펼쳤던 부안 어린이들. 이 일련의 사태와 파장을 감안할 때 최근에 결성된 ‘부안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협의회’는 만시지탄이지만, 사태의 탈출구가 보이지 않던 상황에서 의미있는 진전이었다고 할 만하다.

핵폐기물은 주로 원자력발전소에서 나오는 부산물로 사용후 연료를 일컫는 고준위 폐기물과 이온교환수지, 필터 등의 방사능 처리 설비, 작업복 등의 중저준위 폐기물을 포괄한다. 또한 핵폐기물은 그 자체의 방사능의 위험성이 줄어드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고 방사능의 누출시 인체 및 생태계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에 더욱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고준위 폐기물인 사용후 연료를 재활용할 것인지 영구 처분할 것인지에 대한 국가 정책이 결정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정확한 시기에 대한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2009년 울진 원자력 발전소를 시작으로 원전 내 핵폐기물 저장 공간의 포화로 인해 핵폐기장 건설은 정부의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되었다.

예전에 1989년 영덕, 울진 지역이 핵폐기장 후보지로 지정되었다가 핵폐기장 반대 운동으로 추진 계획이 백지화된 것을 시작으로 90년대 초 안면도, 90년대 중반 굴업도에서도 핵폐기장 반대운동과 백지화가 반복된 선례에서 보듯이 17여년간을 끌어온 핵폐기장 건설은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 결국 정부는 98년 ‘방사성 폐기물 관리대책’을 세운 뒤 수 천억원의 지역 개발 지원금의 조건으로 핵폐기장 부지를 유치공모하였고, 이는 지자체들의 핵폐기장 반대 입장 표명 및 반핵시위를 촉발시켰다. 결국 지난 7월 15일, 부안군이 단독으로 핵 폐기장 유치를 신청한 뒤 핵 폐기장은 많은 논란과 혼란을 겪으며 국가적인 이슈로 급부상하였다.

그 와중에서 ‘현실적’인 위험에서 핵폐기장은 안전하며 필수불가결하다고 강조하는 정부와 ‘잠재적’인 핵폐기물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는 없으며 핵폐기장의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환경 단체와 지역주민 사이에서 핵폐기물과 핵폐기장의 위험성에 대한 논란은 진실게임을 방불케 하였으며 정부와 주민의 쌍방의 불신감의 벽은 높아졌다. ‘원전수거물센터’라는 명칭으로 변경된 ‘핵폐기장’과 정부의 위도 주민의 현금 보상 철회를 둘러싼 논란은 지역 혐오시설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한 핵폐기장 건설 정책의 현주소가 어디인지 명백히 보여주고 있다.

부안 핵폐기장 건설 논란의 이면에는 원자력 발전 중심의 정부의 에너지 확보 정책이 논란의 핵심을 차지하고 있다. 정부는 대안 에너지 개발의 실효성 미비와 어려움을 이유로 원자력 발전을 ‘선택’의 문제로 보기는 힘들다는 입장이다. 더욱이 급격히 늘어나는 에너지 소비를 충당하기 위해 2030년까지 원자력 발전 규모를 현재의 2배로 확대할 예정이다. 또한 전문가들은 우여곡절 끝에 핵폐기장이 건설되더라도 임시 방편인 중간저장시설에 지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용량도 부족해 조만간 포화상태에 달할 것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정부의 핵폐기장 건설 추진 과정에 있어 관련 주민의 참여와 동의를 구하지 않은 일방주의적 행정과 핵폐기장의 부정적인 면을 최소화하기에 급급한 밀실주의 행정은 정책에 대한 지역 주민들의 불신만을 초래하였다. 정부의 핵폐기장 추진 과정의 투명성 결여와 원자력 지향형 에너지 정책이 계속되는 한 앞으로 핵폐기장 문제는 우리 사회의 잠재적인 갈등의 요소로 남을 수 밖에 없다.

한편 우리나라와 유사한 에너지 수급 구조로 우리보다 앞서 핵폐기장 건설을 추진했던 프랑스가 주민 참여와 협조가 없는 상태에서 전적으로 기술적 판단에 의존하여 결국 지역주민들이 정부와의 대화 자체를 거부, 핵폐기물 부지 선정 과정이 중단된 사례와 스웨덴이 핵폐기물 처분 사업자와 지역 공동체 간의 파트너십과 지역 주민에 대한 권한의 일부 이양, 협력이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단계적인 접근을 시도하여 공청회와 세미나, 청문회 등을 통해 지역 주민들을 의사 결정과정에 폭넓게 참여시켜 핵폐기장 건설이 지속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사례는 핵폐기장 문제에 있어 좋은 참고가 될 만하다.

비록 이제 정부와 부안 지역 주민의 대화를 위한 공동협의회가 창설되었다고는 하나, 아직은 첫 걸음마 단계인 만큼, 문제가 산적해 있는 부안 핵폐기장 사태를 점진적인 접근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 또한 독립적인 핵폐기장 검토 기구의 활성화로 핵폐기장 관련 정보를 모두 공개함과 동시에 의사 결정 과정을 투명하게 하고 선정 단계에 지역 주민들의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 또한 정부는 지역 주민들의 신뢰 회복을 위해 건설적인 노력을 기울임과 동시에 핵폐기장이 ‘최종’ 대안이 아닌 ‘임시’ 대안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장기적인 안목에서 에너지 수급 정책을 재점검하고, 대안 에너지에 관심을 기울여 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