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미술시장, 변화의 소용돌이에 놓이다
한국 미술시장, 변화의 소용돌이에 놓이다
  • 소예린 기자
  • 승인 2022.02.26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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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 호황을 맞은 국내 미술 시장 규모와 미술품 경매(출처: 조선일보)
▲최대 호황을 맞은 국내 미술 시장 규모와 미술품 경매(출처: 조선일보)

 

대전환 맞이한 한국 미술시장
지난해 한국 미술시장은 전례 없는 호황을 맞이하며 미술품 경매 낙찰액 또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와 아트프라이스가 발표한 2021년 경매시장 결산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미술품 경매 낙찰액은 약 3천 294억 원이다. 이는 기존 연간 최대 낙찰 총액인 2018년 2천억 원을 훨씬 웃돌았으며, 직전 해인 2020년 낙찰 총액 1천 139억 원과 비교하면 세 배에 달한다.
이와 함께 2020년 취소됐던 여러 행사가 재개되며 한국 미술계는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연기된 제17회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이 지난해 5월 막을 올렸다.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How We Will Live Together)’를 주제로 다양한 국가관에서 전시를 선보였으며, 한국관 또한 ‘미래학교’라는 주제로 디지털 환경의 가상 캠퍼스인 ‘미래학교 온라인’을 신설하기도 했다. 지난해 10월에는 서울 코엑스에서 20주년을 맞은 한국국제아트페어(KIAF, 이하 키아프)가 열렸다. 키아프는 국내 최대 미술품 장터로, 개막 6시간 만에 350억 원 규모의 미술품을 판매하며 20년 역사상 최고 실적을 세웠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2020년 키아프가 온라인으로만 개최된 것에 이어 해외 아트페어에도 나가지 못해 억눌렸던 컬렉터들의 구매 욕구가 분출된 것이다. 이번 미술시장의 팽창은 특정 작가에게만 의존하는 것이 아닌 모든 영역에서 나타난다는 점에서 이전과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분위기 전환의 주요인
그렇다면 한국 미술시장이 대전환을 맞이할 수 있던 요인은 무엇일까. 우선 MZ세대로 불리는 젊은 층이 주식과 부동산을 대체할 새로운 투자 대상으로 미술품을 선택한 점이다. MZ세대가 새로운 구매자로 떠오르며 컬렉터 층이 크게 늘어 미술시장의 유동성이 풍부해졌다. 또한, 코로나19 사태로 실내에 머무는 시간이 늘고 해외여행이 어려워지면서, 미술품이 보복 소비의 대상이 됐다. 이는 NFT 열풍과 맞물리며 미술품에 대한 국민적 관심으로 이어졌다.
이른바 ‘이건희 컬렉션’ 기증과 리움, 호암 미술관의 재개관으로 미술에 대한 전반적인 관심이 커지기도 했다. 지난해 4월,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문화재·미술품 컬렉션 2만 3천여 점이 국립현대미술관과 국립중앙박물관 등에 기증되면서 한국 미술시장에 불이 붙었다. 이중섭의 ‘황소’와 같은 한국 근현대미술 걸작과 모네, 샤갈을 비롯한 서양 유명 화가들의 명작이 기증돼 이건희 컬렉션 전시는 예약난이 일어난 바 있다.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풍부한 유동성 유입에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를 넘어서며 젊은 층 주도로 미술품 구매 열기가 뜨거웠다”라며 그 원인을 분석했다.

한국 미술시장, 세계로 뻗을까
해외 아트페어와 유명 갤러리들이 국내에 진출하려는 움직임 또한 나타나고 있다. 한국화랑협회는 지난해 5월 영국의 세계적 아트페어인 프리즈(FRIEZE)의 아시아권 행사가 서울에 유치된다고 발표했다. 프리즈 페어와 키아프는 오는 9월 2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전관에서 함께 개최되는 것을 시작으로 매년 공동 개최할 예정이다. 이에 그치지 않고 △하우저앤워스 △스프루스마거스 △페레스 프로젝트 △글래드스톤 △투팜스 등 세계적인 갤러리들이 서울 지점 개관을 추진 중이다. 
프리즈의 국내 진출로 국내 미술시장 규모는 기존 연간 총매출액 5,000억 원대에서 1~2조 원대로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자본 규모나 유통 구조 등에서 세계적 경쟁력이 있는 프리즈의 진출로 해외에서 비교적 저평가받던 국내 작품이 본격적으로 주목받게 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유명 갤러리와 아트페어가 아시아 시장의 새 거점으로 한국을 선택한 만큼 앞으로 성장할 국내 미술시장을 기대해볼 만하다.

새로운 투자로서의 미술품,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
미술시장의 팽창으로 미술은 단순히 보고 즐기는 것일 뿐 아니라 부동산이나 주식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투자의 대상으로까지 인식되고 있다. 다큐멘터리 ‘더 울프 오브 아트 스트리트’의 작가 마릴린 민터는 작가가 자신의 작품이 100만 달러(한화 약 15억 원)에 팔리는 것을 살아서 보는 ‘화이트 히트’에 대해 설명하며, 화이트 히트는 작가의 판단력을 흐리기에 부정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신인 작가가 작품의 가격만을 좇다가 커리어가 무너지는 상황을 경계한 것이다.
하지만 과열된 시장은 그동안 저평가된 작가를 재발견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2020년 ‘주목해야 할 예술가 35인’에 꼽힌 이건용 작가, 구겐하임에서 전시가 예정된 김구림 작가 등이 키아프에서 주목을 받은 것이 일례이다. 이와 같은 선순환을 위해서는 갤러리의 세심한 노력이 필요하다. 타데우스 로팍의 황규진 디렉터는 “특히 젊은 작가가 초석을 다지기 위해서는 대표가 되는 작품이 미술관에 소장되도록 노력해야 한다”라며 시장이 작가를 버리더라도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작가’와 같은 이력으로 작가가 보호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미술시장의 입지는 점점 커지고 있으며 미술품에 대한 투자는 피할 수 없는 흐름이 돼가고 있다. 하지만 미술시장은 돈의 세계인 동시에 가치의 세계기도 하다. 과열된 투자로 인해 미술품의 가치가 잊히지 않도록 경각심을 가져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