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싸서 삽니다’, MZ세대의 명품 소비
‘비싸서 삽니다’, MZ세대의 명품 소비
  • 백다현 기자
  • 승인 2021.06.27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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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3일, 서울 롯데백화점 본점 명품관 앞에 줄을 선 고객들(출처: 연합뉴스)
▲지난달 13일, 서울 롯데백화점 본점 명품관 앞에 줄을 선 고객들(출처: 연합뉴스)

 

지난달 13일, 서울 롯데백화점에는 ‘샤넬’ 등의 명품 가방을 사기 위해 매장 문이 열리자마자 쇼핑하러 달려가는 오픈런(Open Run)에 뛰어든 사람들로 가득했다. 어떤 사람은 결혼하는 자녀에게 ‘롤렉스’ 예물 시계를 마련해 주기 위해 네 번째 새벽 줄서기에 나섰다. 줄서기 대행 아르바이트에 나선 부부는 전날 오후 8시부터 삼각 김밥으로 끼니를 해결하며 기다린 끝에 1번 번호표를 받았다. 하루 줄서기 평균 일당은 10만 원, 고객이 원하는 물건을 사면 성공 보수를 포함해 30만 원을 받는다고 한다.

명품기업, 사상 최대의 영업 이익
코로나19 사태로 경기 전반이 침체한 와중에도 홀로 호황을 이어나가고 있는 업계가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 공시에 따르면 지난해 샤넬, 디올 등 주요 10개 해외 명품의 영업 이익은 전년보다 52.0%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명품 중에서도 가격대가 높은 이 브랜드들은 가격을 인상해도 수요가 줄지 않았다. 오히려 값이 더 오르기 전에 해당 브랜드 제품을 사려는 소비자들이 오픈런에 나서거나 인기 제품에 예약을 걸어 몇 달씩 기다릴 정도다.

MZ세대의 명품 소비
경쟁이 치열하고 과시욕과 물질 선호 현상이 강한 한국 사회에서 명품 소비는 꾸준히 증가해왔다. 최근에는 MZ세대까지 명품 소비에 가세하면서 명품에 대한 ‘이상 과열 현상’이 나타났다. 신세계백화점은 지난해 명품 매출에서 20대와 30대 구매 비중이 각각 10.9%, 39.8%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두 세대의 비중을 합하면 50.7%로 절반을 넘어선 수치다. 갤러리아백화점은 지난해 MZ세대의 명품 구매가 전년 대비 33% 증가하며 개장 이래 처음으로 전체 명품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0%를 넘어섰다. 
MZ세대의 명품 소비가 증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MZ세대는 이전 세대보다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릴 수 있는 사회 분위기 속에 있다. 기성세대가 경제적으로 활약한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 기간 중 한국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약 6%를 상회했다. 그러나 1995년 출생한 Z세대의 경우, 40년 이상 직장생활을 해도 2025년에서 2065년 사이에는 약 1.5% 내외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을 맞이할 것으로 추정된다. 즉, 차곡차곡 돈을 모으면 집을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잃어가는 젊은 층이 집 구매를 포기하고 고가의 자동차나 명품 가방, 프리미엄 체험 소비에 열광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볼 수 있다. 
MZ세대는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로 불리는 초연결 세대다. 사회관계망서비스(이하 SNS)인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을 통해 전 세계 친구·지인들과 실시간으로 연결돼 있다. SNS의 확산은 MZ세대 특유의 ‘플렉스(Flex) 문화’를 만들었다. 플렉스는 ‘부나 귀중품을 과시한다’라는 힙합 문화의 용어로, 명품을 어렵게 마련했으니 티를 내며 남에게 인정받기 위해 자랑하는 문화다. 플렉스 문화에는 타인의 삶을 존중하는 태도와 공유, 양성평등, 환경 등의 이슈들도 포함돼 있다. 


명품 소비 우려
MZ세대가 명품 소비의 중심 고객으로 자리 잡으면서 10대도 명품 업계의 주요 고객이 됐다. 하지만 경제력이 부족한 명품 소비 욕구는 금품 절도 범죄로 이어지기도 한다. 지난 2019년 3월, 찜질방에서 훔친 스마트폰으로 은행 계좌에서 4천만 원을 빼돌린 고등학생이 훔친 돈을 명품 구매에 사용하며 경찰에 검거됐다. 지난해 9월 경기 의정부에서는 중학교 3학년 학생이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차량 내 수천만 원 상당의 명품 시계와 가방을 훔친 사건이 있었다. 이외에도 명품을 향한 10대들의 관심을 악용해 사기 행각을 벌이는 등 문제가 계속되고 있다.
한편, 명품 소비와 플렉스 문화가 합쳐지며 자기 과시로 잘못 이어질 수 있다. 연세대 이동귀(심리학과) 교수는 “비싼 명품에 대한 인식과 조망이 생기고 이를 SNS로 다시 과시하려는 욕구가 반영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청소년기에는 또래 문화 영향을 많이 받아,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크다”라며 청소년기의 특징 중 하나인 또래 관계, 또래 문화의 영향력을 설명했다.
유행을 따르며 또래 문화 속에서 인정받고 싶은 자기 과시 욕구가 존재하는 만큼 명품 소유는 또래들 간의 비교를 부추기기도 한다. 명품 소유 여부와 소유하고 있는 명품의 급에 따라 비교가 이뤄질 수 있는 것이다. SNS와 커뮤니티에서는 가격대별로 명품의 급을 나눈 게시물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런 추세는 2010년대 유행했던 노스페이스 패딩 점퍼 유행을 떠올리게 한다. 이제는 10대들의 명품 소비가 제2의 ‘등골 브레이커’로 자리 잡는 모양새다.

명품 소비로 느끼는 자존감 하락 역시 문제가 되고 있다. 올바른 자존감은 자신에 대한 존엄성을 외부의 칭찬이나 타인의 평가로부터 찾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성숙한 사고와 가치에 의해 얻어질 수 있다. 타인의 시선이 아닌 자기 스스로 만족을 느끼는 소비를 지향하기 위해 노력하며 올바른 소비 습관을 바탕으로 제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애써야 할 것이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유행한 명품 계급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유행한 명품 계급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