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 학대 방지를 위한 노력, 제2의 ‘정인이 사건’ 막을 수 있을까
아동 학대 방지를 위한 노력, 제2의 ‘정인이 사건’ 막을 수 있을까
  • 백다현, 손도원, 안윤겸 기자
  • 승인 2021.02.28 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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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6일, 김창룡 경찰청장이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출처: 아주경제)
▲지난달 6일, 김창룡 경찰청장이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출처: 아주경제)

지난달 2일,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을 통해 16개월 입양아 학대 사망 사건, 이른바 ‘정인이 사건’이 재조명되자 우리 사회에 큰 반향이 일었다. 정인이는 지난해 10월 13일 세 번의 심정지 끝에 응급실에서 숨을 거뒀다. 복부는 장기에서 발생한 출혈로 인해 피로 가득 차 있었고, 골절된 곳도 있었다.
사망 직전 심전도와 부검감정서를 살펴본 소아청소년과 배기수 교수는 “장이 터져서 장 밖으로 공기가 샌 것이다. 애가 말을 못 해서 그렇지 굉장히 괴로운 내상이다”라고 분석했다. CCTV 속 정인이가 별다른 반응이 없는 것과 관련해서는 “정서 박탈이 심해 무감정인 상태일 때 저런 행동을 보인다”라고 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정인이 사건에 공분이 큰 이유는 아동 학대 사망 사건이 반복해서 일어나고 있다는 점과 피해 아동을 살릴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지만, 현행 아동 학대 대응 시스템이 이를 놓쳤다는 점 때문이다. 정인이 역시 아동 학대 신고는 세 차례 있었으나 이 모든 신고에 경찰과 아동 보호 전문기관은 양부모에게 학대 혐의가 없다고 사건을 종결 처리했고, 결국 아동은 가정 내에서의 학대로 숨졌다. 
보건복지부의 아동 학대 통계에 따르면 매년 아동 학대 건수가 증가하고 있으며 학대 가해자의 75.6%가 피해 아동의 부모로 나타났다. 더불어 반복되는 아동 학대 사망 사건의 재발을 막고자 현장 조사, 응급조치 등 현행법상 아동 학대 사건 대응 절차를 개선하고 보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이에 정부와 국회는 아동 학대 신고가 접수되는 즉시 경찰이 수사하도록 하는 ‘아동 학대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 통과로 응답했다. 이 법안에 담긴 내용은 공포 후 즉시 효력을 발휘할 예정이다.

▲아동 학대 사례 건수 및 아동보호 전문기관 수(출처: 보건복지부)
▲아동 학대 사례 건수 및 아동보호 전문기관 수(출처: 보건복지부)

 

정인이법 내용과 후속 조치
정인이 사건으로 아동 학대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과 경각심이 두드러지면서, 지난해 3월 24일에 마지막으로 개정됐던 ‘아동 학대 범죄 처벌 특례법 개정안’은 지난달 26일에 다시 일부 개정을 거쳐야 했다. 기존에는 아동 학대 범죄의 처벌 수위를 높이는 방향으로 개정이 계획됐지만, 형량이 높아지면 범죄 사실을 입증해야 하는 부담이 커지기에 아동 학대 범죄 사건의 수사를 빠르고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도록 관련 수사 기관의 권한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환됐다. 그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선 기존 법안에는 경찰이나 아동 학대 전담공무원이 현장 조사를 목적으로 출입할 수 있는 장소는 신고가 접수된 현장뿐이었지만, ‘피해 아동을 보호하기 위한 장소’를 추가해 현장 조사를 보다 원활하게 하도록 했다. 이뿐만 아니라 경찰에게 아동 학대 행위의 제지와 학대 행위자의 격리를 위해 다른 사람의 △토지 △건물 △배 △차량에 출입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이는 경찰이 아동 학대 사건을 수사할 때 가해자의 주거지나 차량에 출입해 즉각 분리 등의 조치를 할 수 있게 하며, 이번 정인이 사건에서 양부모들의 강한 반발로 수사를 제대로 진행하지 않고 종결했다는 경찰 측의 보고서가 권한 부여의 원인으로 꼽힌다. 또한, 이번 개정은 아동 학대 가해자에 대한 출석, 진술 및 자료 제출 요구에 정당한 이유 없이 응하지 않거나 거짓 진술이나 자료를 제출할 경우 1,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며, 경찰관이나 담당 공무원의 업무 방해 과태료를 기존 ‘5년 이하 징역 또는 1,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서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인상했다.
아동 학대 수사 기관의 권한을 강화하는 동시에 그에 상응하는 의무도 개정안에 담겨있다. 우선 ‘아동 학대 신고 의무자의 신고 시 조사, 수사 착수 의무화’가 있다. 의사 혹은 교직원과 같은 신고 의무자가 신고할 경우, 각 시·군·구 또는 수사 기관은 즉시 조사에 착수할 의무가 생긴다. 이번 정인이 사건에서 세 차례나 아동 학대 신고가 접수됐지만, 경찰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점에서 이를 예방하기 위함으로 보인다. 게다가 아동 학대 사건을 조사할 때 피해 아동 혹은 아동 학대 신고자들과 아동 학대 가해자를 분리해 조사를 진행하는 법안을 추가해 피해 아동이나 신고자가 가해자의 회유나 거짓 진술로부터 자유로운 환경을 마련하고자 했다. 그리고 학대 신고를 받고 현장 출동할 때 경찰과 전담공무원은 현장 출동 조사 결과를 서로 통지하도록 했다. 마지막으로 피해 아동과 학대 가해자 즉각 분리 등의 응급 처치 기간은 기존 최대 3일이었지만, 기간중에 공휴일이나 토요일 등이 포함되면 필요에 따라 이를 5일로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한편, 민법에서도 부모의 징계권을 삭제하는 개정안이 통과됐다.
국회의 법률 개정뿐 아니라 경찰과 행정부에서도 아동 학대 범죄 재발 방지를 위해 후속 대책을 세웠다. 특히 김창룡 경찰청장은 지난달 6일 긴급 회견을 열어 “학대를 받은 어린아이의 생명을 보호하지 못해 깊이 사죄드리며, 초동 대응과 수사 과정이 미흡했던 것에 깊은 책임감을 느낀다”라며 정인이 사건에 애도를 표했다. 또한, “향후 경찰은 사회적 약자 관련 사건은 경찰서장에 즉시 보고해 지휘관이 직접 책임지도록 하고, 반복된 학대 신고가 모니터링되도록 대응 시스템을 전면 개선하겠다”라고 밝혔다. 이뿐만 아니라 △아동 학대 전담부서 신설 △국가수사본부·자치경찰 협력체제 구축 △학대 혐의자 정신병력 확인 등도 추진할 계획이라고 언급했다. 이번 사건의 피해 아동이 입양아였던 만큼 정부에서는 대부분 민간 기관의 주도로 이뤄지는 입양 절차를 직접 관리하는 방침을 세웠다. 아이가 입양될 때마다 입양 기관에 운영비를 지원하는 대신 입양 과정을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우선 입양 전 의사와 변호사, 사회복지사 등으로 구성된 공적 감독 위원회가 구성돼 아동이 양부모에게 입양되는 게 적절한지 검토하게 하고, 입양 후 1년간 4차례에 걸쳐 진행하던 사후 관리를 반드시 대면으로 6차례 진행하도록 지침을 바꿀 것이라 밝혔다.

▲아동 학대 방지 ‘정인이법’ 주요 내용(출처: 연합뉴스)
▲아동 학대 방지 ‘정인이법’ 주요 내용(출처: 연합뉴스)

 

정인이법 실효성과 보완점
정인이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아동 학대 신고와 조사, 처벌 등에 개정안이 보일 효과가 주목받고 있다. 경찰관과 아동 학대 전담공무원의 권한이 확대되고 전담공무원이나 경찰의 업무를 막거나 자료 제출을 거부할 경우 적용되는 업무 수행 방해죄의 법정형이 상향됐다. 이로 인해 아동 학대 범죄 신고에 대한 현장 대응의 실효성이 증가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법 개정만으로는 아동 학대를 막는 데 한계가 분명하다. 전문성을 갖춘 인력 증원과 아동 보호 시설 확충 그리고 이를 위한 예산 투입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법 개정은 상황을 개선하기 어렵다. 지난해 10월부터 지방자치단체에 아동 학대 전담공무원이 배치됐지만, 인원이 부족하고 전문성이 떨어져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부는 이런 현장 인력의 전문성 증가를 위해 전담공무원에 대한 심화 교육을 강화하고 학대 예방경찰관의 사회복지학 학위 취득을 지원하는 해결책을 내놓았다. 또한, 아동 보호 전문기관과 경찰 사이의 책임 전가와 불협화음 때문에 정인이 사건을 막지 못한 점을 고려해 기존에는 학대 여부를 판단할 때 공무원들끼리만 진행하던 사례 회의를 의료인과 아동보호 전문기관 등의 외부 인사도 참여하도록 했다. 이를 통해 아동 학대 판단의 전문성을 높이고 더 유기적으로 논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3월부터 학대 신고가 2회 이상 접수되면 피해 아동을 보호자로부터 분리·보호하는 ‘즉각 분리 제도’가 시행되지만, 아동 학대 전문가가 참여하지 않으면 그 실효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단순히 신고 횟수를 따지는 것을 넘어 전문가가 피해 아동의 상태를 정확히 파악해 적절한 판단을 내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피해 아동이 머물러야 할 ‘학대 피해 아동 쉼터’도 지난해 75곳에서 올해 91곳으로 늘리기로 했지만, 지속해서 증가하는 아동 학대 건수를 고려하면 보호시설 확충에 더 속도를 내야 한다.

정인이 사건 이후 아동 학대에 많은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최근 10년간 아동 학대 사건이 벌어진 뒤, 아동복지법을 네 차례 개정하고 처벌 강화 대책을 마련해도 아동 학대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이제는 법 개정에만 초점을 두는 것에서 한 발 나아가 각 기관과 인사들이 체계와 인력 및 예산 지원에 대한 구체적인 대책 논의가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학대에 대한 인식 전환 역시 필요하다. 국회 본회의에서는 친권자의 자녀 체벌을 허용하는 ‘징계권’ 조항을 삭제하는 민법 개정안을 통해 그동안 법이 ‘보호 또는 교양을 위한 징계권’이라는 명분으로 아동 학대를 ‘훈육’으로 정당화해온 것을 바로잡았다. 이를 통해 체벌은 그 자체로 학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명확히 인식하고 아동 학대가 더는 일어나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