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세금 도입, 피할 수 없는 흐름인가?
디지털 세금 도입, 피할 수 없는 흐름인가?
  • 최수영 기자
  • 승인 2021.01.02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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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EU ‘디지털세’ 대치… 한국도 남 일 아니다
▲글로벌 IT 대기업 로고(출처: 연합뉴스)
▲글로벌 IT 대기업 로고(출처: 연합뉴스)

 

“이 세상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확실한 것은 죽음과 세금뿐이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인 벤저민 프랭클린의 말로, 세금을 피하고 싶은 인간의 욕망이 생존 욕구와도 같이 크다는 것을 뜻한다. 이처럼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기 마련이고, 대부분의 기업과 개인은 납세의 의무를 진다. 그러나 이른바 GAFA로 불리는 △Google △Amazon △Facebook △Apple 등 글로벌 IT 대기업들은 법인세가 낮은 지역에 사업부 본사를 세우고 실제 이익을 얻는 국가에는 업무 지원 부서만 두는 방식으로 납세를 회피해 비판을 받았다. 이에 서비스 매출이 발생한 지역에 부과하는 세금인 ‘디지털 세금(이하 디지털세)’이 새롭게 논의됐다.
디지털세에 대한 법안을 가장 먼저 구체화한 국가는 프랑스다. 프랑스는 대형 IT 기업들이 엄청난 이익을 거둬가면서도 세금을 내지 않는 것은 부당하다며 2019년 7월 디지털세를 유럽 연합(이하 EU) 회원국 중 가장 먼저 제도화했다. 이 법안은 전 세계 매출이 7억 5,000만 유로(한화 약 1조 원), 프랑스 내 매출이 2,500만 유로(한화 약 340억 원)를 초과한 기업을 대상으로 △온라인 광고 △중개 수수료 △데이터 판매 수익 등에서 과세를 명시한다. 이에 따라 연간 5억 유로(한화 6,790억 원)의 조세 수입을 올릴 것으로 예상하면서 하원과 상원에서 초당적 지지를 받았다. 이에 자극받은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 △오스트리아 등 다른 EU 국가도 소셜 미디어와 검색 엔진, 인터넷 쇼핑 사업 등을 대상으로 과세하는 디지털세 법안을 수립해 올해부터 도입되도록 추진했다. 이들 국가는 “EU가 아닌 세계적 차원에서 디지털세에 대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반대 주장도 만만치 않다. GAFA가 모두 있는 미국은 자국 기업에 대한 보호 조치로 프랑스와 무역 분쟁을 일으켰다. 미국무역대표부는 “프랑스의 디지털세는 미국 기업에 대한 불공정 무역 관행에 해당할 수 있다”라고 지적하며, 프랑스산 와인에 대한 보복 관세와 수입 제한 조치 등을 고려했다. 결국, 작년 1월 양국이 합의해 프랑스는 디지털세 부과를 연말까지 연기하고, 미국은 보복 관세를 유예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본래 작년 4월부터 시행됐어야 할 프랑스의 디지털세 부과 법안이 실행되지 못해 다른 국가들의 법안 시행 또한 불투명해졌다. 
이처럼 국가별로 디지털 경제의 비중과 산업구조가 달라 디지털세에 대한 국제적 합의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경제협력개발기구가 디지털세 도입을 위해 주요 20개국(G20)을 중심으로 ‘다자간 협의체(Inclusive Framework, 이하 IF)’를 설립해 국제적인 합의를 추진했다. IF는 지난 2015년부터 BEPS(Base Erosion Profit Shifting) 프로젝트를 통해 경제의 디지털화에 따른 과세 방안을 논의하고 애초 작년 말까지 최종 합의를 하고자 했다. 그러나 작년 10월 12일 IF는 디지털세 최종안 합의 시점을 올해 중반으로 공식 연장했다. 이런 결정에는 코로나19 사태 및 미국 대선 등의 영향이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결국, IF는 이달 중 공청회를 열어 대기업 등 민간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수렴하고 미해결 쟁점을 중심으로 추가 논의를 해 최종안 합의를 추진할 예정이다. 기획재정부는 올해 디지털세 최종 합의안이 나오더라도 실제 도입까지는 수년이 더 필요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런데 IF는 디지털세 과세 대상을 기존의 ‘디지털 서비스 사업’뿐 아니라 재화와 서비스를 소비자에게 공급하는 ‘소비자 대상 사업’까지 포함하기로 해 귀추가 주목된다. 이에 따르면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자동차 등 디지털 산업을 토대로 한 한국의 제조업체도 디지털세 적용 대상에 오른다. 다만 디지털 서비스 기업은 최소매출 기준만 충족해도 과세권 배분 대상이 되지만, 소비자 대상 기업은 이보다 상향된 최소매출 기준과 규모 기준까지 충족해야 하는 등 과세 기준을 엄격히 제시했다. 이에 기획재정부는 “여러 기관의 분석 결과 세수 측면에서 한국에 반드시 불리하지는 않으리라 전망된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기업 처지에선 전체적인 세수 부담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법인세 및 수출 의존도가 높아 디지털세 도입 시 재정적 타격이 심각할 수 있다. 이에 정부는 소비재 기업과 정보 통신 기업 간 세율에 차등을 두는 등 구체적인 기준을 명확히 해야 우리나라가 불리하지 않다는 견해다.
디지털세는 거스르기 어려운 대세가 돼가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G7 재무장관들이 디지털세의 필요성에 합의함에 따라 국제적 차원의 디지털세 부과 논의에 더욱 속도가 붙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IT 서비스를 소비하는 나라가 과세할 수 있어야 하고, 다국적 기업의 조세 회피를 막아야 한다는 점에는 미국을 제외한 전 세계 대부분 국가가 원칙적으로 동의하고 있다는 것이다. 관세청도 조세의 형평성 고려 및 새로운 세원 확보 필요성에 따라 디지털세를 검토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미국과의 마찰 또한 고려해야 하는 등 고민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코로나19 사태를 비롯한 경제 위기 속에서 새로운 리스크와 직면하고 있다. 정부와 기업은 국제적 논의 동향을 파악하고 국내 제도 정비 등 대응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