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언] 명예 선언을 위해 나아갈 길
[제언] 명예 선언을 위해 나아갈 길
  • 이승엽 / 화공 00, 전 명예제도준비위원장
  • 승인 2002.10.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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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로운 대학생활 위한 제도적 도전에 동참하길

명예제도준비위원회가 발족하여 활동한 지도 7개월이 다 되어간다. 그 동안의 명예제도 준비위원회의 활동은 혼란 그 자체였다. 홍보 부족으로 인해 충분한 여론을 수렴하지 못했고, 내부적으로는 기본 철학부터 새로 세워가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기본적인 철학을 세우고 구체화 해나가는데 기틀을 잡았다는 데서 약간의 만족감을 느끼지만, 학교 구성원들에게 명예제도에 대한 관심을 제대로 불러일으키지 못했고, 그 철학을 구체화시켜 전달하지 못한 것에 대한 반성이 앞선다. 그동안 나름대로 열심히 쏟아부은 노력이 빛을 보기도 전에 군입대라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위원장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 것에 대해 송구스러울 따름이다.

지금에 와서도 느끼는 것은 공론화와 여론 수렴 없이 명예제도 철학의 기틀을 잡는 것은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현재 초안에서 제시되어 있는 철학도 1학기의 홍보활동과 서명운동으로 어느 정도 관심이 고조되었을 때에 수렴된 의견들이 바탕이 되어 만들어진 것이다. 물론 앞으로 더 많은 의견수렴이 필요하겠지만 처음부터 단지 외국대학의 사례 조사만을 가지고 초안을 만들겠다고 생각했더라면 지금의 초안에 담겨진 기본 철학은 외국대학의 그것을 벗어나진 못했을 것이다.

두 차례의 간담회를 통해서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나는 우리 학교의 명예선언이 외국의 Honor Code와 차별되는 점은 ‘철학’으로서 명예선언에 담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Honor Code의 개념 자체는 외국 대학에서 먼저 시작되었고 우리 역시 그것에 많은 영향을 받았지만, 우리가 만든 선언과 그것을 제도화하는 방향은 우리의 상황과 정서에 맞게 바꿔가야 한다. 그 점이 바로 우리가 추구하는 명예선언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기도 하다. 고발과 처벌에 중점을 두고 있는 외국의 Honor Code에 비해 우리의 명예 선언은 부정행위의 예방과 나아가 제도적인 합리성을 추구하고 있다. 허락되지 않은 도움을 주고 받지 않겠다는 학생들의 다짐이 교직원들로부터 신뢰를 받고 교직원들은 그에 합당한 여건을 마련해 준다는 것이 명예 선언의 주된 내용이다. 이것은 교수평의회와 명예제도 위원회와의 정기 모임, 불합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각종 건의, 요구를 공식적인 통로를 통해 할 수 있도록 제도화된다.

무엇보다 아쉬운 것은 학생들의 지나치게 부족한 참여율이다. 한편으로는 우리 학교에서 명예선언을 제정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실감했다. 대다수 외국 대학의 예를 보면 Honor Code가 제정되기까지는 짧은 경우 7년, 긴 경우 수백 년이 걸리기도 하였다. 우리학교에서 명예제도가 처음 거론된 지는 4년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준비위원회가 구성되고 공식적인 홍보를 통해 공론화가 된지는 이제 1학기가 지났을 뿐이다. 아직도 대다수의 학생들은 명예선언의 필요성에 대해서 깊이 느끼지 못하고 있으며, 여전히 명예제도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다. 이는 무엇보다 준비위원회의 홍보활동이 부족했던 탓이지만, 나름대로의 노력도 학생들의 무관심 앞에서 쉽게 의미를 잃어버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학생들에게 바란다. 명예 선언은 단지 스스로 잘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함께 명예로운 대학 생활을 하기 위한 제도적인 도전이란 것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제도란 것은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것이다. 학교 구성원 모두에게 적용되는 만큼 명예 선언의 내용이 옳은지, 철학은 자신의 생각과 부합되는지, 선언이 올바르게 제도화되고 있는지 판단해 주길 바란다. 명예 선언은 단지 위원회의 선언으로만 그치지 않고 모두에게 피부로 와 닿게 되는 변화라는 것을 알아주기를 바란다.

앞으로 명예제도준비위원회에게 맡겨진 책임 또한 무겁다. 초안에 제시되어 있기는 하지만 간담회에서 지적되었듯이 그동안 교직원들의 동의를 이끌어 내기 위한 활동은 거의 전무했다. 현재까지 교수님들 혹은 직원들이 명예 선언에 보인 관심은 그 내용보다도, 시행 여부나 외부 홍보에 관한 것들이었다. 명예 선언 초안에는 교직원들에게 요구하는 내용들도 들어있다는 것을 분명히 밝히고 구성원 전체가 공감할 수 있는 명예제도 정착을 위해 애써야 할 것이다.

필자가 명예제도준비위원장을 맡아서 지금까지 노력해 온 것은 무엇보다도 명예 선언이 학교가 좀 더 발전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급히 제정하고 시행하여 무의미한 선언이 된다면 오히려 학교 발전의 한 기회를 날려버린 셈이 될 것이다. 아무도 동의하지 않는 명예제도를 뒤늦게 수정한다고 동의를 이끌어 낼 수는 없다고 본다. 처음부터 충분한 준비를 통해 제정되어야 한다. 아무리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최대한 많은 의견이 모이고, 그래서 대다수가 동의하고 지킬 수 있는 명예 선언이 되길 바란다.

“아무도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 깨끗한 거리에는 누구도 쉽게 쓰레기를 버리기 어렵다.” 물론 현재는 아무도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 깨끗한 거리를 만들어 나아가는 과정이다. 나는 아직 우리 학교가 충분히 ‘쓰레기 없는 거리’를 만들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있는 건강한 사회라고 생각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충분한 과정을 거쳐 깨끗한 거리를 만들자. 그리고 후배들은 자연스럽게 그 깨끗한 거리를 지킬 수 있는 분위기에 동참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