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 노동자 처우 개선, 모두의 노력이 필요할 때
택배 노동자 처우 개선, 모두의 노력이 필요할 때
  • 손주현 기자
  • 승인 2020.11.27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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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 분류 작업을 진행 중인 택배 노동자들(출처: 연합뉴스)
▲택배 분류 작업을 진행 중인 택배 노동자들(출처: 연합뉴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지난 13일, 전태일 열사의 50주기 추도식이 거행됐다. 노동자들의 열악한 환경과 현실을 고발한 전태일 열사의 죽음은 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택배 노동자에게 있어서 열악한 노동 환경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에 따르면, 지난달 27일까지 올해에만 총 15명의 택배 노동자가 과로로 사망했다. 연이은 택배 노동자 과로 사건으로 이들의 처우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많은 목소리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당일 배송, 새벽 배송에 숨겨진 사실
1991년 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을 통해 택배업은 제도화됐고 이는 민간 택배 산업의 시작을 알렸다. 이후 수많은 택배업체가 등장하며 택배 산업은 꾸준한 성장을 이뤘고 온라인 쇼핑몰의 발전으로 성장 속도는 급증했다. 지금 우리는 당일 배송, 새벽 배송, 총알 배송 시대에 살고 있다. 휴대폰을 꺼내 식료품을 주문하면 신선한 재료들이 새벽에 집 앞에 도착해 있고 물건을 주문하면 당일에 해당 상품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집 앞에서 택배 상자를 받고 있을 때 택배 노동자는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 ‘택배 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달 8일 과로로 사망한 40대 택배 노동자는 매일 오전 6시 30분에 출근하고 오후 9~10시에 퇴근하며 하루 평균 약 400건의 택배 물량을 배송한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배송 전 물류를 물류 센터에서 세부 구역과 택배 노동자별로 분류하는 이른바 ‘까대기’도 과로사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이 작업을 위해서 택배 노동자는 일찍 출근해 아침부터 분류 작업에 체력을 소모하고 이후에는 분류가 완료된 물량을 배달하기 시작한다. 아침부터 오랜 시간 동안 체력을 소모하고 바쁘게 물량을 배달하면 육체적 피로도가 매우 높아지기 때문에, 일부 택배 노동자들은 사비를 들여 까대기 작업 아르바이트를 직접 고용하기도 한다. 또한, 정부 조사에 따르면 택배 노동자들의 하루 평균 작업 시간은 12.1시간, 하루 작업량은 250건에 달한다.

처우 개선을 위한 장치
잇따른 택배 노동자 사망 사고로 정부는 서둘러 대책을 마련했다. 정부가 제시한 택배 노동자과로 방지 대책은 △과로 예방 제도 개선 △사회 안전망 확대 △불공정 관행 및 갑질 개선 △일자리 질 개선 기반 마련의 4가지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 과로 예방 제도 개선에는 택배 노동자들의 토요일 휴무제를 도입하는 주5일 작업이 포함돼 있으며 1일 최대 작업 시간의 기준을 마련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또한, 정부는 주간 택배 노동자에 대해서는 오후 10시 이후 심야 배송을 제한하도록 권고할 방침이다. 특히 현행법상 택배 노동자는 산재 보험 적용 대상에 속하지만 본인이 신청하면 적용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보험료 부담을 피하려는 대리점주 등의 압력으로 신청하지 않는 택배 노동자가 많이 있다. 고용노동부는 산재 보험 적용 제외 신청을 한 택배 노동자에 대한 전수 조사를 통해 법 위반이 적발되면 적용 제외 취소 등의 조치를 할 계획이다. 추가로 산재 보험 적용 제외 신청서는 본인이 직접 제출하도록 하고 적용 제외 취소에 강요 행위가 있다면 처벌하는 조항을 신설하도록 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대부분 대책이 업계에 대한 권고 수준에 불과하다며 실효성에 대한 비판을 제기했으며, 당장 시행하기 어려운 장기적인 정책 방향에 그쳤다고 지적한다. 또한, 인력 충원과 배송 수수료 인상과 같은 난제를 해결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있다.

처우 개선에 대한 여론
택배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에 대한 여론의 반응은 다양하다. 택배 노동자들의 노동 환경에 대해 공감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월 소득이 300만 원 이상 보장되는 업무이고 노동자 본인이 그 업무를 선택했기에 민간 부분에서 자연스레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여론도 존재한다. 택배 노동자들에게 작업량과 작업 시간은 수입과 직결된다. 지난해를 기준으로 택배 노동자의 배송 수수료는 1건당 800원 정도이다. 배송 수수료가 낮아질수록 택배 노동자들은 소득을 유지하기 위해 배송을 많이 해야 하며 다른 택배 노동자와 치열한 경쟁을 하게 된다. 또한, 조를 이뤄 업무를 진행하는 특성상 한 택배 노동자가 휴식 시간을 갖게 되면 전체 택배 업무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다. 택배 노동자 중에는 자신이 힘들더라도 최대한 일을 해서 많은 소득을 받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으므로 택배 노동자와 택배 업체 모두를 만족할 만한 효과적인 대책을 마련하기는 쉽지 않다.

국민권익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10명 중 7명 이상이 택배 종사자의 처우 개선을 위해 배송 지연이나 택배비 인상에 동의한다고 한다. 택배 노동자를 위해 국가적 대책이 마련되고 많은 사람이 이들의 처우 개선에 동감하는 모습은 매우 긍정적으로 보이지만, 상품을 주문하는 우리들의 의식도 전환될 필요성이 있다. 바쁜 삶 속에서 택배라는 존재는 우리에게 삶의 즐거움이나 위안이 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더 빠르고 신속하게 물품을 받고자 하는 마음은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우리가 조그만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이유는 수많은 택배 노동자의 땀방울이 있기 때문이다. 새벽에 택배로 싱싱한 식료품을 받는 것도 좋지만, 그 전날 마트에 가서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미리 장을 보는 것이 그리 불편한 일은 아닐 것이다. 개개인이 조금만 불편을 감수한다면 우리 사회 전체가 더 건강하고 행복해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