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논단] 명예제도 추진에 대한 몇가지 제언
[독자논단] 명예제도 추진에 대한 몇가지 제언
  • 유진경 / 신소재 97
  • 승인 2002.06.1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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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만들어간다는 것은 쉽지만은 않다. 수많은 질타와 격려가 따르고 일반적인 무관심에 허덕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학내에서 명예제도준비위원회 내지는 자치단체라는 이름을 달고 열심히 뛰어다니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의 노력은 학교의 역사에 전환 내지는 분위기의 쇄신을 불러올 수도 있을 것이나, 그들이 갖고있는 의미도 해나가는 방법에 따라 더욱 살아날 수도 있고 불씨를 꺼뜨릴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런 시각에서 명예제도준비위원회(이하 위원회)의 활동을 바탕으로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지난 4월 각 자치단체 집행부원들로 구성된 위원회는 이후 두달에 걸쳐 인터뷰 기사 개재 및 명예제도의 당위성을 홍보하는 각종 자보 부착, 6월 4,5일 양일간 실시한 명예제도 지지서명운동까지 여러가지 행보를 보여주었고 오는 12일에 간담회를 실시한다고 한다. 보기드물게 발빠른 움직임에서 나름의 노력과 고민이 있었음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한발 물러서서 바라보면 기존 자치단체나 위원회들의 활동과 비슷한 활동방법을 보여주고 있고 이는 자치단체 활동에서 흔히 문제가 되는 방법을 답습한다는 의미도 된다.

이런 현상이 명예제도 시행을 둘러싼 문제의 본질은 아니지만 개념을 조직한다는 측면에서 방법론은 중요하기에 간과할 수 없는 문제이다. 실제로 명예제도 지지서명자들이 학부생 기준으로 과반수를 넘지 못했다는 것이 이런 우려를 뒷받침하고 있기도 하다. 위원회는 상당히 긴 시간적인 안목(어쩌면 수 년)을 가지고 자신들의 과제를 다루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이 결과가 "첫 술에 배부르랴"라는 말로 정당화될 수도 있다. 당연히 첫 술에 배부를리는 없다. 하지만 자신이 만들어내는 양이 적다면 아무리 숟가락을 움직여도 절대 배부를 수 없다. 이제 시작이지만 위원회(뿐만 아니라 자치단체들도)는 한발 물러서서 자신들의 모습을 생각해봐야 할지도 모른다.

무엇보다도 단체의 성격에 대해 더 많이 고민해봐야 한다. 학생자치단체 및 위원회가 해결해야 할 문제는 단체의 구성이나 운영보다는 자신들의 개념을 조직해야 한다는 것이다. 학우들이 "하는 일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을 던지고 "어떻게 해나갈 것이냐?"로 이어져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그걸 어떻게 생각하느냐?" 또는 "할 수 있겠느냐?"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들을 불러일으킬 준비가 되어있는지 궁금하다.

제일 먼저 위원들(또한 자치단체 집부들) 모두는 자신들의 조직체를 한 문장으로 간명하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단체(구성원)가 누구인지(이름과 성격),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어디에서 일을 하고 있는지 표현해야만 한다. 자신들조차 모호한 개념은 그들이 설득하려는 사람들에게 혼란만을 가져올 뿐이다. 가장 최근에 결성되고 활동한 위원회조차 현재 학우들에게 자신들의 활동방향과 역할범위를 인식시키는데 있어서 절반은 실패했다. 위원회는 자신들의 역할범위를 홈페이지에 명시하긴 했지만 위원회의 존재를 알고 있는 사람들 상당수도 위원회가 명예제도를 만드는 위원회인지 명예제도를 만들기 위한 초석을 닦는(이것조차도 상당히 모호한 표현이다) 위원회인지 알고 있지 못하다.

업무추진과정에서도 약간의 문제가 발견된다. 위원회와 자치단체들은 나름의 성격을 가지고 학생들의 입장을 대변하고 조직하기 때문에 대표성을 지닌다. 하지만 실제 자신들의 개념을 조직한다는 문제에선 그것이 별로 의미가 없었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위원회는 명예제도라는 것이 학생들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란 점을 고려할 때 자치단체 내부를 넘어서는 대화의 장-예를 들어, 학과나 분반 단위의 대화-를 만들어볼 여지도 있지 않았는지 궁금하다.

여론을 이끌고 조직하는 것이 자치단체와 위원회의 할 일이기도 하지만 여론을 수집하고 그 속에서 틀을 끄집어내는 것 또한 그들이 해야 할 일이다. 새로운 생각은 보통 전혀 다른 틀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순서에 있어서도 뭔가 서두르고 순서가 약간 바뀐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지지서명운동이 지지정도의 확인을 위한 것이 아니었을텐데 왜 서명운동 이후에 간담회가 실시되는지 의문이다. 더 많은 지지를 얻어내려고 했다면 더 많은 설득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것은 부착된 글만으로는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위에 열거한 문제들 외에 마지막으로 각종 위원회나 자치단체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것들이 있다. 명분이 방법론에까지 후광을 비춰주지는 않는다. 옳은 일을 한다는 것과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옳은 것을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선 첫째, 좀더 치밀하고 목적한 것에 자신을 맞추는 자세가 요구된다. 개인적인 어려움은 이해하지만 그것이 결과에 영향을 미치면 후회만이 남는다. 둘째, 성과의 유무를 떠나서 후배들에게 더 많은 솔직한 자료들을 남겨주어야 한다. 셋째, 더 많은 대화를 만들어내기를 요구한다. 게시판의 개설과 같은 것 외에 좀더 학우들 속으로 다가오는 방법을 만들어내길 바란다.

학교의 역사를 만들어가는 기회는 언제나 있지만 쉽게 오는 기회는 아니다. 스스로 그런 기회를 가졌다는 것을 자랑스러워하길 바라고 그 노력이 결실을 맺기를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