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가는 삶
흘러가는 삶
  • 문병필 기자
  • 승인 2020.09.03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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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4호 78내림돌 기사인 ‘창조적인 삶’을 읽고, 기사를 쓴 전 기자였던 이민우 학우와 대화하며 느낀 내용을 써보려 한다. 이민우 학우는 공부하는 이유에 대해 많이 고민했다. 특히, 우리대학 학생들이 성적을 위해 기출문제를 보고 유형을 암기하는 것이 과연 진정한 공부인지, 더 나아가 사회의 부품이 돼가는 과정이 아닌지에 대해 진지하고 치열하게 고민했다. 이렇게 자신의 가치관을 가지고 그대로 인생을 살아가려는 이 학우의 모습에서 많은 것들을 생각해볼 수 있었다,
반면 나는 이런 부분에 대해서 가치관이 없다. 주로 “가치관이 없다”, “줏대가 없다”와 같은 말은 부정적으로 들리곤 한다. 하지만 가치관이 없는 것이 나의 가치관이다. 수학에서는 답이 자명하지만, 세상에는 답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너무나 다양한 관점과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가다 보면, “어쩔 수 없지”라는 말로 타협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가치관이 뚜렷하면 ‘반대되는 가치관’이라는 장애물이 생긴다. 그리고 장애물에 걸려 넘어질 위험과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이런 장애물들을 피하려고 “그럴 수 있지”, “어쩔 수 없지”라는 말을 한다. 
나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타협점을 찾는 과정에 있지만, 현실에 가까운 쪽에서 살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상적인 삶을 살기 점점 어려워지는 것 같다. 자신의 가치관을 정하고, 그것을 위해 도전하는 이상적인 모습은 내게서 점점 멀어져간다. 초등학생 시절엔 발명가가 꿈이었는데, 이제는 공무원같은 안정적이거나 노후가 보장되는 직업들에 관심이 간다. 많은 사람이 이렇게 인생의 흐름을 타고 흘러간다. 내가 흐름을 막는 제방을 만들지 않는 이상 운명에 따라 흘러가게 된다. 그런데 굳이 이 흐름을 막아야 할 필요를 못 느끼는 내가 잘못된 걸까? 이런 생각들을 이어가다 보면, 이상과 현실 사이의 타협하는 과정에서 인생이 만들어지는 것 같기도 하다.
어쩌다 내 삶이 순응과 타협으로 점철돼버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역설적으로 나는 모든 곳에서 배울 수 있는 사람임과 동시에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데에 최적화된 사람이 된 것이다. 이처럼 어떤 것도 이루지 못할 것만 같은 “어쩔 수 없지”와 ‘타협’도 내 삶의 가치관이 돼 나를 잘 살아가게 해준다. 요즘 코로나19로 인해 사람들에게 사색할 시간이 많아진 것인지, 많은 커뮤니티에서 부정적인 자아 성찰 글들이 많이 올라온다. 만족할 수 없는 인생과 자신의 모습에 한탄하는 사람들의 한숨을 내가 모두 이해할 수는 없지만, 지금을 바랐던 그때와 그때를 바라는 지금을 비교해보면 좋겠다. 우리대학 학생들이 지금 자신의 모습에 만족해야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