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곡골목소리] 월드컵에 가려진 사회적 관심사
[지곡골목소리] 월드컵에 가려진 사회적 관심사
  • 이민영 / 화공 99
  • 승인 2002.06.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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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이 시작되면서 포스코는 이미지 광고 문구를 바꿨다. "작은 공 하나가 세상 모두를 만나게 합니다."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말이다. 대표팀 경기가 있는 날이면 삼성역, 강남역, 광화문 등지에 수만 명의 사람들이 모이고, 온 가족이 TV 앞에 앉아, 혹은 이웃과 함께 야외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에 모여 응원한다. 지난 6월 4일, 폴란드와의 첫 경기에서 우리나라 대표팀이 월드컵 본선 진출 48년 만에 첫 승을 일궈내자 처음 보는 사람과도 얼싸안고, 함께 술을 마시며 축하했다. 이 정도로 온 국민이 화합하고 일치된 의견을 갖는 문제는 드물 것이다.

TV에서는 하루종일 각국 경기를 중계하고 9시 뉴스도 시작부터 삼분의 일 이상을 월드컵 경기 결과와 각국 선수단 소식에 할애한다. 어느 신문이나 1면은 월드컵 소식으로 시작된다. 이러다 보니, 우리나라엔 월드컵이 아니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지만, 사실 우리에겐 16강 진출만큼(혹은 그 이상) 중요한 일이 많이 있다.

월드컵의 열기에 가려 그 존재감이 미미한 6.13 지방선거가 바로 그 대표적인 예이다. 선거가 코 앞이지만 정말 선거를 하는지 의심이 들 정도로 아무도 이에 관해 말하지 않는다. 선거 뿐만이 아니다. 지난달 31일까지 있었던 '노동자ㆍ아동 노동 착취 월드컵 후원 초국적 기업 반대 캠페인'부터 지난 5일까지 있었던 '제 6회 인권 영화제', 지난 11일까지 있었던 '퀴어 문화 축제 무지개 2002', 지난 9일과 10일의 '6월 항쟁 15주년 기념 마라톤', 또 12일에 있는 '최저임금 현실화 촉구를 위한 최저임금 위원회 앞 피케팅', 이번 29일까지 있을 '광주 비엔날레' 등등 그냥 지나치기엔 아쉬운 일이 너무나 많다.

우리 모두는 나름대로의 기대를 품고 16강 진출을 응원하고 있다. 누군가는 솔트레이크에서 구겨진 국가적 자존심을 회복하기를 바라고, 누군가는 경제 성장과 국가 이미지 향상 같은 것을 기대한다. 모두 우리나라가 월드컵을 계기로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관심을 갖고 응원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한국인임이 자랑스러운 이유가 쇼트트랙에서 금메달을 휩쓸기 때문이 아니듯이 16강 진출도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기는 힘들 것이다.

한 달간의 축제가 끝나고 나면 우리의 삶은 제자리로 돌아올 것이다. 월드컵 당시의 활기차고 화합된 분위기는 사라지고 치열한 현실만 남는 것이다. 월드컵 이외에도 선거나 노동문제, 소수를 위한 각종 행사에 관심을 갖고 참여해서 좀 더 밝고 따뜻한 사회를 만드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