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是是非非] 무학과제도
[是是非非] 무학과제도
  • 승인 2002.05.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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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 학년도 입시부터 일반전형의 단일계열 모집에 따른 무학과제도 도입이 올해로 3년째를 맞고 있다. 도입 초기의 혼란이 지금은 어느 정도 해결되었지만 제도 자체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도 여전하다. 이에 대한 재학생과 대학 관계자의 의견을 싣는다. < 편집자 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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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학과제도 운영에 따른 단점들 해결해야

2000학년도 입시 때부터 도입된 이른바 ‘무학과 제도’가 올해로 3년째를 맞고 있다. 무학과제도가 표면적으로는 신입생들에게 자신의 적성에 대해 생각해 볼 시간을 주고, 학과 선택에 대한 폭넓은 기회를 주자는 취지로 실시되었지만 여기에 수긍하는 이가 많지 않을 것이라 생각되고 득 보다는 실이 많다는 것이 필자의 견해이다.

무학과 제도는 신입생들에게 있어서 ‘학과’가 아닌 이른바 ‘분반’이라는 소속감을 가장 먼저 안겨주었다. ‘새내기 새배움터’에서부터 바로 적용되는 분반 제도는 이후 대학 1학년 신입생들에게는 다른 어떤 것보다 더 큰 소속감을 갖도록 만들었고, 그 나름대로의 문화를 만들어 내는 유익한 면도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신입생들이 대학 2학년이 되었을 때는 또 다시 학과의 신입생으로서 두 번의 신입생 생활을 경험하는 현상을 만들어 내었다.

이렇게 무학과 제도로부터 시작된 분반 제도는 비단 신입생들 뿐만 아니라 기존의 학생들에게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무엇보다도 분반 제도의 영향으로 예전부터 있어왔던 학과 활동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고 이는 부정적인 측면으로 작용했다. 즉, 학과를 제대로 알고 적성에 맞게 학과를 선택한다는 당초의 취지와는 동떨어져 자신의 성적대로 맞춰 가는 ‘눈치 작전’에 의해 학과를 선택할 뿐만 아니라, 기존의 학과 운영 체제에서 가졌던 좋은 전통과 학문적 기반의 기초 토대로서의 학과의 역할 등의 장점이 무너지는 결과를 가져왔다.

또한 무학과 제도로 인해 동급생간의 수평적 관계의 폭이 넓어진 것은 앞으로의 학교 생활에 있어서는 도움이 될지 모르나, 요즘에 와서는 학과 차원의 행사도 제대로 진행시키기가 버거울 정도로 선·후배간의 결속력은 많이 약화되었고, 이에 따른 부정적인 결과도 많이 드러나고 있다.

현재는 이러한 무학과 제도가 시작된 지 3년밖에 되지 않아서 학과에 대한 인식이 강한 99학번 이상의 학생들이 학교에 많이 남아있는 편이라 지금까지는 어떻게든 학과 활동이 유지되어왔다고는 하나, 만약 무학과 제도가 실시되었던 이후 학번의 학생들만 학교에 남아있는 상황이 온다면 과연 예전과 같은 학과 활동이 이루어질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도 든다. 물론 분반 제도가 실시되는 상황에서 분반 활동과 학과 활동이 조화되는 새로운 문화가 자발적으로 만들어진다면 이러한 걱정은 기우에 불과한 것이겠지만, 현재의 상황에서는 이러한 문제가 그렇게 좋은 방향으로만 해결될 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올해 2002학년도 신입생 300명중에서 무학과 신입생은 90명에 지나지 않는다. 무학과 제도가 처음 실시되었던 3년 전의 150명에 비해 상당히 많이 줄어든 실정이다. 이렇게 무학과 신입생들의 수가 줄어들면서 올해의 ‘당사자’들은 ‘피해자’로 전락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든다. 왜냐하면 이제 그들은 소수의 입장으로 생각될 것이기 때문에 예전과 같은 학과 차원의 신입생 유치 활동도 줄어들 것이고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루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필자 또한 무학과 신입생으로 입학했던 당사자로서 감히 말하건데, 지금 현재의 무학과 제도는 더 이상 그 본래의 기능을 수행할 수 없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그것의 해결을 위해서는 임시방편격의 보완책이 아닌 좀 더 근본적인 차원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내년 2003학년도 입시에서도 무학과 제도는 올해와 다름없이 유지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3년 동안의 운영 결과를 냉정히 분석하고 다시 한번 신중히 판단하여 결정해 주었으면 한다. 이것은 단순히 학교의 입시 제도를 결정하는 차원의 문제를 넘어서는, 미래의 우리 대학 학풍을 좌우하는 매우 중대한 사안일 수도 있음을 알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재현 / 수학 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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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과선택, 대학생활 등 여러모로 교육적 효과 커

필자는 학생선발팀장으로서 1년 중에 상당한 기간을 일선 고교를 직접 방문하여 우리 대학을 홍보하고 입시제도를 안내하는 일에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이 때 고교 수험생들로부터 많이 받는 질문 중의 하나가 어떤 학과를 선택해야 하는가? 또는 특정 학과에서는 무엇을 공부하고, 졸업 후 진로는 어떻게 되는가? 라는 것이다. 오로지 대학 입학만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우리나라 고교 교육의 현실을 볼 때 고등학생들이 자신의 적성이 무엇인지, 내가 가야할 진로가 어디인지를 모른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현상일지도 모른다.

우리 대학은 모두가 알다시피 수시모집은 학과별로 선발하고, 정시모집은 전체 단일계열로 선발하고 있다. 필자가 이해하기로 2000학년도부터 이런 형태의 모집 방식을 도입한 취지는 자신이 희망하는 학과가 명확하거나 자신의 진로에 대한 뚜렷한 소신이 있는 학생은 수시모집으로, 아직 가고싶은 학과를 결정하지 못했거나 대학의 여러 학문들에 관해 잘 모르겠다는 학생들은 정시모집으로 지원을 유도하자는 것이었다. 물론 수시와 정시모집 입시제도의 차이로 수험생이 원하는 전형으로 진학하기 힘든 경우도 있겠지만, 대체로 면접과 서류평가의 비중이 큰 수시모집보다는 여러 분야를 잘해야 하는 수능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정시모집으로 입학한 학생들에게 무학과제도가 더 필요할 것이라는 판단이었고,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에서도 그런 경향이 보여졌다.

다음으로 입학 후의 문제를 생각해 보자. 당초 이 제도를 도입할 당시 우리 팀에서는 단일계열로 입학한 학생들이 특정 학과로 편중된 지원 경향을 보일 수도 있다는 점에 대해서 상당히 우려를 하고 있었고, 실제 무학과 신입생들의 첫 번째 설문에서는 그런 경향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각 학과에서 열심히 학과 소개를 하고, 신입생들도 선배들을 통해 여러 학과에 관한 정보를 얻고, 직접 그 학과의 일부 과목들을 접해보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희망 학과의 분포가 골고루 퍼지는 현상을 보여주었다. 물론 2학년에 올라갈 때 1지망 학과로 진학하지 못한 학생도 소수이지만 있었고, 자신의 평점을 고려하여 아예 최초 희망 학과를 포기한 학생도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전체 무학과 신입생의 대부분이 본인 희망대로 학과가 결정되었다는 것은 무학과제도가 매우 성공적으로 정착되어 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더구나 2002학년도 신입생의 경우 무학과 신입생이 95명으로 전년에 비해 숫자가 적어 학과별 전체 정원의 10% 범위 내에서 탄력적으로 정원을 운용하는 현재의 학과 배정 정책을 적용한다면 거의 전부가 희망 학과로 진학할 수 있을 것이다.

단일계열 모집에 있어 또 하나의 문제로 제기될 수 있는 부분이 무학과 신입생들의 대학 생활이다. 일례로 주변의 몇몇 학생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선배들은 신입생들이 학과보다는 분반 모임에 치중한다는 얘기를 하고, 무학과 신입생들은 학과 선배가 없어 불만이라는 얘기도 한다. 이 문제는 우리 모두가 좀더 서로를 챙겨주고 노력해 나가야 할 부분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한 학년 정원이 300명밖에 안 되는 우리 대학의 특성을 이해한다면 학과라는 소규모의 단위로 인간관계의 틀을 좁혀나가는 것보다는 1학년 때는 학과를 넘어서서 동기, 선배들과 폭넓은 교우관계를 만들어 가는데 적극적인 노력을 하고, 그런 바탕 위에서 2학년부터 학과라는 소속감을 갖추어 가는 것도 바람직한 면이 있지 않나 생각된다.

근래 우리나라의 교육제도는 실수요자인 학생의 선택권을 최대한 존중하는 방향으로 바뀌어 가고 있고, 그 중의 하나가 무학과 제도이다. 또한 이미 세계적으로 수많은 명문대학에서는 이 제도가 정착화 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에서 이를 그대로 도입하는 것은 많은 부작용이 따른다는 것이 국내 타 대학의 예에서 입증되었다. 또한 포항공대를 지원하는 학생 중에는 입학 시 과를 정하기를 희망하는 학생과 입학 후 많은 정보를 가지고 정하기를 원하는 두 부류가 있다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우리의 제도는 두 그룹의 상이한 요구와 교육 정책적인 고려, 그리고 학문의 균형발전의 필요성을 조화롭게 수용하고자 도입된 것이다. 이에 대해 지적된 문제점도 대부분 수긍이 가지만 어느 한쪽만을 택했을 때의 문제점은 이보다 더 클 수도 있다. 참고로 많은 타 대학에서는 우리의 제도가 잘 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학문의 통합화와 학제간 연구가 강조되는 현대 과학기술의 추세를 본다면 자기 학과 뿐만 아니라 여러 다양한 전공을 가진 동기, 선후배들과 깊은 인간적, 학문적 교류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우리 대학만이 가진 좋은 장점이라 생각한다. 따라서 대학 차원에서도 이런 장점을 살리기 위해 여러 가지 지원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고, 우리 학생들도 무학과 제도에 대한 적극적인 이해와 더불어 포항공대의 좋은 여건들을 자신이 잘 활용할 수 있도록 항상 능동적인 대학생활을 해주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권수길 / 학생선발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