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논단] 사회성 부족한 포항공대생(?)
[독자논단] 사회성 부족한 포항공대생(?)
  • 정주영 / 컴공 00
  • 승인 2002.05.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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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간의 포항생활에 지루해하던 나는 지난 겨울방학 때 우연히 기회를 얻어 서울에 있는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 회사에 들어간지 며칠 지나 사원 전체 회식이 있었는데 술이 한 차례 돈 후 이사님이 문득 자신은 포항공대출신, 카이스트출신과 자주 일을 해보았다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둘다 일하는 능력은 비슷한데 카이스트 학생이 활발하고 사회생활도 잘해서 선호하는 편이다.” 사실 그 전에도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었기 때문에 별다른 생각없이 그냥 넘어갔었다. 조금 충격이었던 건 며칠 뒤에 이 회사와 협력관계에 있는 또다른 회사와 팀회식을 가졌는데 그 회사의 대표이사님도 “업무에서는 개개인의 실력보다는 동료들끼리 팀웍이 중요한데”라며 비슷한 말씀을 하시는 것이다. 이후 나는 왜 이런 소리를 듣게 되는지 혼자서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우선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학교 학생들의 단조로운 동선이다. 4년 동안 평일에는 매일 기숙사에서 78계단을 지나 강의실에 간 다음 다시 기숙사에 가는 생활의 반복은 일상에 활력을 주지 못하고 무미건조하게 느껴진다. 주말이 되어도 특별히 갈 곳이 없어서 방에서 컴퓨터 게임을 하는 학생이 대부분이다.

어느새 2002학년도 신입생들이 들어온 지 한달이 지났는데 매년 후배들이 들어올 때마다 이맘쯤엔 술자리에서 그들이 하는 얘기가 있다. 학교가 너무 답답하고 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교과서만 외우는 게 대학생활이 아닌데 4년 동안 학교 생활을 어떻게 해 나갈지 모르겠다는 걱정도 토로한다. 2002학년도 전체수석졸업을 한 선배도 포항은 지역적, 문화적으로 떨어진 곳에 있기 때문에 공부하다 지쳤을 때 스트레스를 풀 곳이 없어서 슬럼프에 빠졌었다는 이야기를 자주 하셨다.

이런 현상의 단적인 예도 많다. 개교 이후 계속 떨어지고 있는 자대생의 대학원 진학률에 대해 생각해 보자. 70~80%의 학생들이 진학하던 개교 초와 달리 요즘은 과에 따라 20~30%만 진학하는 곳도 있다. 학부 4학년이 되었을 때 또는 석사 2학년이 되었을 때 진학여부를 심각하게 고민하는 가장 큰 이유중의 하나가 포항 생활이 너무 단조로워서 혹은 자신이 우물안 개구리가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가장 클 것이다.

작년 유럽의 명문대학들을 방문해 그들과 잠시 생활할 기회가 있었다. 놀랍게도 그들의 생활은 비슷한 유형이었다. 평일엔 18시간 이상을 공부에 투자하고 주말은 그 분풀이라도 하 듯이 쾌활히 즐기고 있었다. 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우리학교 학생들의 생활과는 전혀 다른 묘한 이질감을 느낄 수 있었다.

여기에서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할 점이 있다. 과연 포항공대에는 어떤 문화가 있을까? 아쉽게도 우리대학은 카이스트나 서울대만큼의 학문적 성과는 이뤘지만 때로는 학문의 원동력이 될 수도 있는 문화적인 요소는 부족하다. 타대학에는 존재하는 노천극장이나 광장 같은 졸업 후에도 추억에 잠길만한 장소가 없다. 그 방안으로 도서관 옆에 스페인계단만큼 아름다운 분수와 광장을 만들고 답답할 때 마음껏 소리지를 수 있는 노천극장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서울 대학로처럼 소규모 공연장을 여러개 만들어 포항공대만의 활기찬 캠퍼스 문화를 만들어 보자.

비단 학교의 문제만 아니라 학생들의 책임도 중요하다. 대도시처럼 학교에 원하는게 없을 때 지하철을 타고 밖으로 나갈 수는 없지만, 찾아보면 다양한 과외활동을 할 수 있다. 한정된 공간에 자신을 고립시켜 보다 좁은 시야로 세상을 바라보지 말고 여행을 떠난다거나 학교에서 마련해준 ‘넓은세상바라보기’ 같은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포항공대의 건학이념인 사회를 이끌어 가는 과학자 양성에 있어서 리더십을 가져야 한다. ‘21세기의 리더십‘이란 주제로 얼마전 강연하셨던 김경섭 박사는 세계적으로 성공한 사람의 두 가지 공통점 중 하나가 뛰어난 사회성이라고 말씀하셨다. 사회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 가운데 결코 리더십은 나오지 않는다. 지금 짓고 있는 학술정보관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이런 게 아닐까 생각해 보며 학생들의 보다 진취적인 생활과 학교측의 노력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