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논단] 정치적 포스테키안, 그리고 대선
[독자논단] 정치적 포스테키안, 그리고 대선
  • 윤기준 / 생명 3
  • 승인 2002.02.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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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한해 가장 큰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킬 사안은 아마도 연말에 있을 대통령 선거일 것이다. 우리들은 예전처럼 대선 주자들의 토론을 보기 위해서 가족들과 TV 앞에 모여 앉을 것이며, 대선 후보들에 대한 지하철에서의 친구와의 대화에 낯선 사람이 끼어 들어 함께 목소리를 높이기도 할 것이다. 이러한 몇년 전 일들에 대한 회상은, 각각의 후보들의 정치적 노선과 정책에 대해서는 무지한 채, 앞으로의 대학 입시에 있어서 나와 나의 소속 집단에게 이익을 가져다 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바램만으로 한 후보를 지지하였던 고등학교 시절의 부끄러운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대학에 입학하여 몇년 동안, 여러 사람들과 만나고 이야기하며, 또한 posb 게시판의 글들을 읽으면서 들었던 몇가지 생각들 중 하나는, 정치적인 화제들이 일상의 대화에 올라오는 것을 사람들이 매우 꺼린다는 것이었다. 이른바 우리 학교 학생들이 ‘비정치적’이라는 이야기는 예전부터 여러 번 들어 왔으나, 이러한 ‘비정치성’에는 몇가지 특이한 사항들이 있는 듯하다.

우리가 일상으로부터 겪는 외부로부터의 강제, 중ㆍ고등학교 시절의 강압적인 학교 문화, 정치인ㆍ제도권의 비리 등에 대해서는 상당한 분노와 증오심을 표출하면서도, 이러한 분노와 증오심이 정치적 행동으로 표출되지 못하고 결과적으로 무관심과 냉소로 변하는 과정들을 보아왔다. 포스테키안 보드에서의 논쟁은 흔히 ‘조크보드에나 올려라’라는 말로 비웃어지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현실적인 힘은 모아지지 않는다. 우리의 ‘비정치성’은 종종 우리 주변의, 혹은 우리 사회의 정치적인 문제들이 시끄럽게 논의되는 것에 대한 불편함과 불쾌감으로, 또는 소시민성과 일상적 보수주의로 나타나는 것이다.

어떤 문제에 대한 토론과 공론화의 과정은 대개 매우 혼탁하고 정리되지 않은 형태로 이루어지지만, 당사자들이 자신의 입장에 대해 점검하여 이를 분명히 하고, 또한 이것을 논리적으로 세련되게 다듬는 중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이렇게 하여 다듬어진 입장들은 한시적인 글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들의 사고 속에서 일종의 가치로서 계속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나는 이번 대선이 우리 사회가 어떠한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여야 하는지, 역사적인 관점에서 어떠한 문제들을 해결해가야 하는지 모두가 함께 생각해 보고, 이것들에 대해 열정적으로 토론하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

당신은 뚜렷한 정치적 노선을 가지고 있는가? 또한 당신이 그 노선을 합리화할 정당한 논리를 지니고 있는가? 당신의 입장이 불분명하다면 그러한 불분명함은 수많은 고민과 사유의 혼란 속에서 나온 것인가 아니면 무지와 무관심에서 온 것인가? 선거란 몇몇의 제한된 후보들에게 투표권을 행사하여야 하는 한계를 지니고 있어서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고 고민하여 정립한 가치와 일치하지 아니하는 선택을 하여야 할지도 모른다. 따라서 선거의 진정한 의미는 ‘선택’ 그 자체보다는 정치적 인간으로서 나 자신의 입장 확립이 되어야 할 것이며, ‘후보들의 선거’보다는 ‘유권자’의 선거가 되어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나는 이러한 몇 가지 질문들에 대해 부끄럽지 않게 대답할 수 있도록 나의 사유를 다듬어 가는 것을 올 한해의 목표로 하고자 한다. 누구나 술자리에서 각각의 후보들과 그들의 정책에 대해 논쟁하기를, 특정 후보의 열성 지지모임이 생겨 학생식당 앞에서 집회를 열리기를, 비록 서로의 감정 싸움들과 논점 일탈이 토론 중에 빈번히 나타나더라도 무관심과 냉소보다는, 진지하고 열린 마음들을 통해 자신이 지지하는 가치를 세우고 이를 보다 세련되게 다듬을 수 있기를, 이러한 것들이 올 한 해 우리의 모습이기를 진정으로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