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장 없이, 모든 영혼을 이 작품에 쏟아 넣었다
과장 없이, 모든 영혼을 이 작품에 쏟아 넣었다
  • 홍채린 / 기계 17
  • 승인 2019.12.05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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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을 사랑하는 포항인이라면 대구 콘서트하우스를 자주 방문했을 것이다. 대구 콘서트하우스에서는 2학기가 되면 9월부터 12월까지 월드 오케스트라 시리즈를 진행한다. 지방에서 문화생활을 즐기는 사람에겐 매우 좋은 기회가 아닐 수 없다. 나는 이번 월드 오케스트라 시리즈에서 두 개의 공연을 예매했고, 그중 하나인 지난달 16일 트론헤임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공연은 정말 최고였다. 특히 이 공연을 보고 싶은 주된 이유였던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비창’은 실황을 들으며 이렇게까지 감정이입을 한 적이 없었다. 공연 내내 눈물이 줄줄 나게 했던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비창’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차이콥스키는 누구든 한 번쯤 들어봤을 ‘호두까기 인형 모음곡’을 작곡한 러시아 출신 작곡가이다. ‘비창’을 작곡하기 전, 발레 음악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작곡한 뒤 후원을 받으며 탄탄대로를 걷던 차이콥스키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밝혀지게 된다. 당시에는 동성애자에 대한 인식이 굉장히 좋지 않아 이 사실이 알려지자 후원이 끊기고 차이콥스키의 지인들은 그에게 러시아 법에 따라 사형 혹은 시베리아 유형을 당하기보다는 명예로운 자살을 권유한다. 절망감에 빠져있던 차이콥스키는 1년간 마음을 다잡은 뒤 자신의 연인에게 마지막 교향곡을 작곡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며 작곡에 전념한다. 교향곡이 완성된 이후, 그는 자신의 동생 모데스트와 곡의 제목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다. 모데스트가 처음 제안한 ‘비극적(Tragique)’을 차이콥스키가 마음에 들어 하지 않자 모데스트는 ‘비창(Pathetique)’을 제안했고, 이를 받아들인 차이콥스키는 자신의 마지막 교향곡 6번의 표제를 ‘비창’으로 붙인다.
곡을 들어보면 전반적으로 굉장히 음울하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1악장의 서주부는 현의 저음 반주에 어둡고 무거운 바순의 솔로로 시작한다. 곡의 클라이맥스로 다다를 때, 현의 흐느끼는 저음에서 시작돼 점차 고음으로 올라가 마지막에는 처절한 감정을 폭발시킨다. 현의 처절함을 받아주는 트롬본의 선율이 이 처절함을 극대화해 눈물이 나지 않을 수 없는 감정을 느끼게 된다. 울부짖는 듯한 1악장은 그 감정의 표현과는 다르게 평온하게 끝이 난다. 이어서 2악장은 첼로의 아름다운 선율로 시작하지만 그래도 어딘가 쓸쓸해 보인다. 3악장은 아마 4개 악장 중 가장 밝고 신나는 부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튀어오르는 선율을 밝게 연주하면서 마지막에는 다른 교향곡들의 4악장에서 그러하듯 경쾌하게 마무리를 짓는다. 하지만 비창의 끝을 장식하는 4악장은 절대 신나지 않는다. 지시어도 ‘탄식조로 느리게(Adagio Lamentoso)’다. 말 그대로 탄식하는 바이올린의 선율로 시작하며, 종결부에선 사라지는 듯한 첼로와 지속해서 같은 리듬의 음을 연주하는 콘트라베이스의 우울하고 어두운 연주로 끝이 난다.
이렇게 한없이 어둡고 우울하고 처절한 곡을 작곡한 이후, 얼마 되지 않아 차이콥스키는 콜레라에 걸려 사망한다. 그러나 콜레라로 죽었다고 하기엔 의문점이 많이 있던 것이라 사람들은 이에 대해 ‘비소 자살설’을 제기한다. 콜레라와 비소 복용의 증상이 비슷한데, 사망까지 이르는 시간은 비소가 훨씬 짧아 차이콥스키의 죽음 경황과 맞아떨어지고, 부검 결과 비소 중독 판결이 났기 때문이다. 자살인지 콜레라로 인한 사망인지 아무도 모르지만, 그의 전 교향곡 5번에서 절망을 이기고 승리로 나아가는 화려한 피날레에 비하면 6번의 끝은 의미심장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