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가 항상 제 일과의 일부분이면 좋겠어요”, 이안나 교수 인터뷰
“연구가 항상 제 일과의 일부분이면 좋겠어요”, 이안나 교수 인터뷰
  • 유민재 기자
  • 승인 2019.11.08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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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treme Mechanics 연구실의 이안나(기계) 교수
▲Extreme Mechanics 연구실의 이안나(기계) 교수

 

연구 분야와 그 분야를 선택한 계기는?
기계공학 중 고체역학 분야를 연구하고 있다. 특히 평판이나 곡면 껍질 같은 얇은 구조물의 기계적 안정성을 살펴보고 있다. 큰 스케일에서는 기술이 많이 발전한 현대에서도 여전히 다리가 무너지거나 비행기의 기체결함이 발생하고 있다. 이런 구조물의 불안정성 문제를 해결해 인명과 재산 피해를 막는 것이 고체역학의 기본적인 목표다. 작은 스케일에서는 탄소나노튜브나 그래핀도 얇은 고체 구조물로 생각할 수 있는데, 이때는 거꾸로 불안정성을 이용해 물질을 구부리거나 찌그러뜨려서 새로운 기능을 하는 구조물을 만든다. 굉장히 오래되고 고전적인 분야지만 새롭게 활용할 방법을 계속 탐색하고 있다.
석사 때는 유체역학을 연구했는데, 이왕 박사 유학 간다면 새로운 분야를 연구하고 싶어 고체역학을 선택했다. 유체역학 연구실로 지원했다면 석사 때의 연구성과를 어필할 수 있어 더 쉬웠겠지만, 경험해보지 못했던 분야 중 가장 재밌어 보이는 연구실을 선택했다. 

어떻게 교수가 됐나?
석사 생활을 하면서 교수의 꿈이 생겼다. 학부 때는 졸업하고 무엇을 할지에 대해 깊은 고민 없이 대학원에 진학했다. 대학원 생활을 해보니 연구가 나에게 잘 맞는 것 같았다. 그리고 학부생 때는 잘 보이지 않던 교수님 생활을 보면서 교수라는 직업이 괜찮아 보였다. 그래서 교수가 되기로, 유학 가기로 결심했다. 석사 마치고는 1년 반 동안 지도교수님의 배려로 석사후연구원으로 있으면서 유학을 준비할 수 있었다. 지도교수님 입장에서는 인력이 유출된다고 느끼셨을 수도 있었을 텐데, 정말 감사하게도 제자의 미래를 더 중요하게 생각해주셨다.

교수가 된 후의 일과는 많이 바쁜가?
지난 1월에 교수로 부임했는데, 첫 학기 때는 정말 정신이 없었다. 처음이다 보니 수업을 준비하는 데만 전날 저녁 시간을 모두 써야 했다. 요즘도 일에 치여 불규칙한 일과를 보내고 있다. 대학원생 때와 비교하면 할 일이 조금 더 많고, 다양하고, 책임감이 더 커진 것 같다. 대학원생 때는 내 연구만 하면 되지만, 교수는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연구를 해야 한다는 점이 다르다.

▲Extreme Mechanics 연구실 모습
▲Extreme Mechanics 연구실 모습

 

MIT 대학원에 입학한 비결이 있다면?
MIT에 진학한 다른 학생들에 비해서 성적이 좋은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석사 연구실에서 논문을 두 편 쓴 것이 크게 작용했던 것 같다. 공부를 잘하기보다는 연구가 잘 맞는지를 중점적으로 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운도 중요하게 작용한 것 같다. 여러 학교에 지원했는데 상대적으로 진학하기 쉬운 학교에서는 거절당했고, 높아만 보였던 학교에서는 반대로 합격 통지를 받아서 정말 기분이 좋았다.

외국의 연구실 문화는 어떻게 다른가?
우리나라와 외국을 구분하기보다는 연구실의 차이인 것 같다. 대학원과 박사후과정을 거치며 우리나라, 미국, 스위스에서 연구를 경험했는데, 연구실마다 문화가 굉장히 달랐다. 미국 연구실에서는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해서 같은 연구실이어도 잘 모르고 지내기도 했다. 하지만 같은 주제를 연구하는 사람들과는 활발한 토론을 했다. 스위스 연구실은 미국보다는 우리나라와 비슷한 분위기였던 것 같다. 연구실 구성원끼리 의견을 나누는 문화가 잘 자리 잡혀 있었다. 특히 우리나라 연구실에서는 선배가 오히려 후배가 할 법한 자질구레한 일을 도맡아서 하는 등 위계질서가 없었다. 또, 사수, 부사수 개념 없이 각자 맡은 주제가 달랐기 때문에 서로의 연구를 알기 위해 토론이 더 활발했던 것 같다.

슬럼프에 빠졌을 때는 어떻게 극복했는가?
대학원에서 처음 진행했던 연구에서 기대했던 것과 너무 다른 결과가 나왔다. 정말 맞는 결과인지 우선 나 자신에게 확신을 주기 위해 검증하는 과정이 필요했고, 다음으로는 교수님도 설득해야 했다. 아주 힘든 과정이었고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결국 설득에 성공했고, 잘 마무리돼 논문이 나왔다. 쉽고 재밌기만 한 연구는 없는 것 같다. 아무도 모르는 문제를 잘 풀어내서 논문으로 나왔을 때의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또, MIT는 박사 학위를 따기 위한 논문 자격시험(Qualifying Exam)이 굉장히 어렵다. 총 두 번 기회를 주는데 모두 통과하지 못해 학교를 떠나는 학생이 매년 있다. 그런데 내가 첫 번째 기회 때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다. ‘이대로 대학원 생활을 그만두고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나?’ 하는 생각에 정말 힘들었다. 그런데 지도교수님이 학생들의 스트레스 관리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분이었다. ‘일주일 동안 너만의 시간을 가져라’라며 연구실에 나가지 않고 회복할 시간을 주셨다. 덕분에 친구들과 맛있는 것을 먹으러 다니면서 정서적인 회복을 한 다음 더 열심히 공부했다. 슬럼프를 이겨내는 방법은 잠시 회복 기간을 가진 후, 더 열심히 하는 것밖에 없는 것 같다.

▲곡면 껍질의 구조적 특성을 실험하고 있다
▲곡면 껍질의 구조적 특성을 실험하고 있다

교수가 된 후 고민이 있다면?
처음에는 학생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이 가장 고민이었다. 학생들의 성격과 연구 스타일이 굉장히 다양해서 어떤 식으로 말을 전달해야 효과적일지 많이 고민했던 것 같다. 특히 학생들은 교수에게 솔직하게 의견을 이야기하는 게 어려운 것 같은데,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상대가 되고 싶다. 사실 나 역시 학생들에게 그렇게 하기 어려울 때가 많지만 다그치기보다는 현명하게 의견을 전달하기 위해 많이 고민하고, 먼저 다가가려고 노력한다. 요즘의 고민이라면, 연구실에 들어오려는 학생이 많은데 학생을 많이 뽑기 위해서는 그만큼 과제를 따와야 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행복한 고민이다.  

우리대학 기계공학과의 유일한 여성 교수인데, 여성이 적은 학과에서 겪는 어려움은?
큰 어려움은 없었던 것 같다. 다만 주목을 많이 받는 것이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하지만 요즘은 그것을 장점으로 활용하고자 한다. 아무래도 앞으로 출산과 육아가 닥쳐오면 어려움이 많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아직은 동료 교수님들이 많이 배려해주셔서 불편함 없이 지내고 있다. 

앞으로 어떤 교수가 되고 싶나?
우선 우리 연구실 학생들이 스스로 적극적으로 연구할 수 있도록 돕되, 너무 무리한 탓에 지나친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학계, 산업계, 어느 길로 가든 행복한 사람이 됐으면 한다. 그리고 교수로서 해야 할 일이 여러 가지로 많다. 다른 일도 중요하지만, 연구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조금씩이라도 틈을 내서 꾸준히 해나가고 싶다. 연구가 앞으로도 계속 내 일과의 일부분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