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빛, 문학의 색
과학의 빛, 문학의 색
  • 이상빈 / 인문 대우교수
  • 승인 2019.11.08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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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대학의 밤은 칠흑같이 어둡다. 하지만 난 이 어두운 교정을 즐겨 산책한다. 밤을 잊은 연구실들의 불빛, 도서관의 장관, 통나무집에서 울려 퍼지는 웃음소리, 그리고 무엇보다도 거대한 숲 사이로 고개를 내밀고 있는 달과 수많은 별 등은 서울 쪽에서 오래 공부한 인문학 전공자에게는 여전히 낯선 풍경이다. 이곳으로 내려온 지 여러 해가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자발적 유배’로 부르는 포항 생활은 여전히 호기심과 경이로 가득 채워져 있다. 아마 죽을 때까지 적응되지 않을 정도로 학생들의 모습은 매 순간 나의 예상을 여지없이 뒤엎어버린다. 
공대생들은 사물을 지각하는 방식, 문화예술을 이해하는 시각, 감수성의 확보 차원에서 인문계 학생들과 판이한 느낌이다. 수업 시간 역시 재미와 놀라움의 연속이다. 서정주의 시 하나를 언급했던 작년 생각이 난다. 옷이 문지방에 걸리자 그것을 신부의 욕정 탓으로 착각하며 줄행랑쳤던 꼬마 신랑 얘기다. 수년이 흐른 후 신부 집을 지나칠 때 여전히 다소곳이 앉아있던 신부의 몸에 손을 댔더니 먼지로 화하더라는 얘기. 앞으로부터 정확하게 5번째 줄에 앉아있는 남학생 두 명이 소곤거리는 대화가 내 귀에 들린다. “에이, 저건 말이 안 돼” 그 아이들은 10년 만에 인간의 뼈가 온전히 삭아 먼지로 화할 수 있는지에 대해 자문했을 것이다. 한 가지 사례만 들었지만, 내게는 이런 모습들이 충격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상관없다. 문학과 공학은 세상을 바라보는 두 개의 대극점이기도 하니. 
인문학자 방식으로 접근해보면 공대생들이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에 대해 아쉬움이 많다. 도도한 물줄기를 이뤄온 역사에 관한 공부 없이 온전한 세상 파악이 가능할까? 인간의 정념을 담아낸 문학예술의 뿌리를 모르고 과학기술을 일방적인 경배 대상으로 삼는 것이 타당한가? 프로이트가 ‘쾌락원칙’이라 명명한 인간의 면면 탐구를 게을리하면서 세상에 울림을 제공하는 위대한 과학의 탄생을 기대할 수 있을까? 그 옛날 소련이 존재하던 시절, 핵물리학자 사하로프는 세상의 존경을 받던 지식인이기도 했다. 내가 전공한 프랑스 문화는 이런 차원에서 여러 시사점을 제공한다. 프랑스 지식인들은 실사구시 정신을 바탕으로 철학의 근거를 사회 속에서 찾는다. 그들은 사변의 영역을 기피하는 대신 양자역학, 수학과 의학, 생물학 등 과학적인 일차 연구에서 해답을 먼저 구하며, 사회 속으로 뛰어들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때의 ‘참여’는 인류를 이롭게 하겠다는 유토피아적 관점과 일치하며, 인문학과 과학 사이의 괴리는 들어설 자리가 없다.
결국, 세상사를 읽어내는 혜안이 관건일 것이다. 우리대학의 세계화는 포스테키안의 세계적인 시각 확보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1798년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은 젊은이들의 열정을 학술로 연결한 새로운 시도였다. 흔히 우리대학과 비교되는 프랑스의 ‘에콜 폴리테크니크’가 대혁명의 이념을 구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학교였지만, 학교 구성원 대부분이 이집트 원정에 동참하면서 세계사를 이끄는 동력을 확보하게 된다. 과학기술뿐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 상상력, 타 문화의 수용과 이해 등을 바탕으로 한 경쟁력이다. 유럽에서는 ‘그랜드 투어(Grand Tour)’란 제도도 존재했다.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전반 무렵까지 영국의 상류층 젊은이들이 교육적, 문화적 목적으로 유럽 전역을 여행하던 패턴이었다. 당시 영국 귀족들이 자신들의 자녀를 세계적인 인물로 만들기 위해 개인 교사와 함께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이탈리아 등지를 돌아보게 하는 방식이었다. 학교에서 얻는 진실이 있다면 거리에서 얻는 진실도 있는 까닭이다.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 거리에서 나올지도 모르며, 거리에 나서보면 실험실에서 결코 얻을 수 없는 진리가 널려 있는 탓이다. 그러기에 교환학생 형태로 세상을 적극적으로 체험하고 있는 포스테키안들 모습은 상당히 바람직해 보인다. 다만 방문하는 국가의 문화예술과 역사에도 훨씬 더 많은 관심을 가져보길 바랄 뿐이다.
나는 지난달 26일과 27일 이틀 동안 포스코 국제관에서 열린 한국동서비교문학학회 국제학술대회를 주관하며 스태프로 일한 우리대학 학생들의 경쟁력에 크게 감동했다. 포스테키안들이 보여준 능력은 상상을 넘어설 정도로 대단했으며, 학술대회를 방문한 모두가 우리대학의 힘을 제대로 확인하고 돌아갔다. 난 이 천재들의 재능에 충만한 상상력과 세상에 대한 분노, 더불어 삶에 대한 고민이 덧씌워지기를 소망한다. 우리대학에 깔린 어둠이 짙을수록 세상을 비출 빛을 난 더욱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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