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자 신상 공개, 어디까지 가능한가
범죄자 신상 공개, 어디까지 가능한가
  • 김영현 기자
  • 승인 2019.06.13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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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서를 빠져나오는 고유정(출처: 연합뉴스)

지난 5일, 제주지방경찰청 신상 공개심의위원회가 전 남편 살해 및 시신 훼손·유기 혐의를 받고 있는 고유정 씨의 신상 공개를 결정했다. 하지만 신상 공개를 결정한 이틀 뒤에도 이름과 나이만 공개됐을 뿐 얼굴이 공개되지 않아 국민들의 공분을 샀다. 결국 고 씨의 얼굴은 공개됐지만, 일각에서는 앞선 경찰의 대응이 2011년 이후 이뤄진 범죄자 신상 공개 관련법의 개정 취지에 어긋난다며 불만을 표했다. 

2009년 강호순 연쇄살인 사건 이후 강력범죄자에 대해 신상을 보호하는 것이 과도하다는 여론에 의해 2011년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이 개정됐다. 이 법이 개정되기 전까지는 범죄자의 신상 공개에 대한 합법적인 절차를 밟기 어려워 수사 과정에서는 엄청난 중대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라도 신상 공개를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 법의 개정으로 수사 과정에서의 범죄자 신상 공개가 제한적으로 가능해졌다.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 제8조의 2에는 강력범죄자의 신상 공개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하며 이에 대한 4가지 요건을 언급하고 있다. 4가지 요건은 ▲범행수단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 특정강력범죄 사건일 것 ▲피의자가 그 죄를 범했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을 것 ▲국민의 알 권리 보장, 피의자의 재범방지 및 범죄예방 등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할 것 ▲피의자가 「청소년 보호법」 제2조 제1호의 청소년에 해당하지 아니할 것으로, 법령에서는 범죄자의 신상 공개 시 이를 바탕으로 피의자의 인권을 고려해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성범죄자 알림e 홈페이지 캡처화면
▲성범죄자 알림e 홈페이지 캡처화면

이 법의 개정을 통해 국민들이 흉악 범죄자에 대해서 이전보다 더 많은 정보를 알 수 있게 됐지만, 한편에서는 개정된 법안 내용의 허점을 짚으며 우려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먼저, 이 법에서 언급한 4가지 요건에서 범행수단의 잔인성, 피해의 규모 등의 판단 기준이 모호하다. 객관적인 판단을 위한 기준이 명확하지 않고 신상 공개를 해당 지역의 신상 공개심의위원회가 결정하기 때문에 결정 과정에서 상황에 따른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원칙적으로 법원 판결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무죄 추정원칙에 의해 범죄자라는 확실한 증거가 있어도 신상정보를 공개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다. 이뿐만 아니라 범죄자의 최소한의 인권도 보호해야 한다며 범죄자 신상 공개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반면, 범죄자의 신상 공개를 찬성하는 입장에서는 피의자의 인권보다 범죄로 인해 고통받는 피해자의 인권을 먼저 생각해야 하고, 국민의 알 권리 차원에서 반드시 범죄자 신상 공개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 범죄자의 신상 공개와 관련한 법 문제뿐 아니라 현재 여성가족부와 법무부에서 시행하고 있는 성범죄자의 신상정보를 제공하는 ‘성범죄자 알림e’ 서비스 또한 무용지물이라며 많은 사람에게 비판을 받고 있다. MBC 방송 프로그램 ‘실화탐사대’는 방송을 통해 성범죄자 알림e 실태조사를 한 결과 명시돼 있는 범죄자의 주소 실거주지가 아닌 경우도 있었고, 2020년 출소 예정인 조두순의 가족들이 피해자 가족과 가까운 곳에 거주하는 것으로 드러나 큰 논란이 됐다. 더구나 조두순이 출소해 피해자 옆집에 살아도 마땅히 제재할 규정이 없는 것으로 드러나 사람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또한, 성범죄자 알림e 서비스는 누구나 이용할 수 있지만 게시돼 있는 신상정보를 퍼뜨릴 경우 개인정보 보호법 위반 혐의로 처벌될 수 있기 때문에 직접 사이트에 접속해 찾아보지 않는 한 알 길이 없어 국민들은 불만을 호소하고 있다.

2011년 이후로 법이 개정돼 흉악범죄자의 신상 공개가 이뤄지기 시작했지만, 아직 우리나라는 범죄자 인권 보호라는 명목하에 제대로 된 신상 공개가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또한 개정 이전 범행을 저지른 범죄자에 대한 신상 공개가 불가능하며 성범죄자 알림e 같은 플랫폼의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국민들의 불안이 커져가고 있다. 따라서 정부는 현행법의 적용을 받는 범죄자들은 물론 과거 범죄를 저질러 수감돼 있는 범죄자들도 고려해 피해자가 또 한 번의 심적 고통을 겪지 않도록, 국민들이 올바른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현행 제도를 보완할 법과 수단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