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지구 이상기후의 주범, 엘니뇨
전 지구 이상기후의 주범, 엘니뇨
  • 국종성 / 환경공학부 부교수
  • 승인 2019.04.24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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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평상시와 엘니뇨 시기 열대 태평양의 해양-대기 순환. 엘니뇨 시기에 무역풍이 감소하고, 대류 활동이 중태평양으로 이동하며 동태평양의 수온약층은 얕아진다
▲그림 1. 평상시와 엘니뇨 시기 열대 태평양의 해양-대기 순환. 엘니뇨 시기에 무역풍이 감소하고, 대류 활동이 중태평양으로 이동하며 동태평양의 수온약층은 얕아진다

엘니뇨와 라니냐란? 
엘니뇨는 열대 동태평양과 중태평양의 해수면 온도가 평상시보다 따뜻한 상태로 수개월 이상 지속하는 현상을 이야기한다. 엘니뇨(El Nin~o)라는 말은 본래 ‘남자아이’를 뜻하는 스페인어로서, 남아메리카의 적도 해안가에 위치한 페루 지방의 어부들이 사용하던 말에서 유래했다. 페루 근처 바다는 전 지구적인 해양 순환 구조상 차가운 심해수의 용승이 일어나는 지역으로, 심해의 풍부한 영양염이 공급되는 덕분에 세계적인 멸치 어장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주기적으로 해양 용승이 사라지고, 해수면 온도가 크게 높아지면서 멸치 어획량이 급격히 떨어지는 현상이 일어나는데, 이런 현상은 특히 크리스마스를 전후해서 나타나기 때문에, 은유적으로 ‘아기 예수’를 의미하는 이름으로 불리게 됐다고 한다. 이후에 해양학자들이, 엘니뇨와 반대로 해수면 온도가 평상시보다 더 낮아지는 현상이 주기적으로 나타남을 발견하고는 ‘여자아이’를 뜻하는 라니냐(La Nin~a)라는 이름을 붙였다. 엘니뇨와 라니냐는 별개로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고, 진동하는 진자처럼 이쪽저쪽을 왕복하며 나타나는 진동 현상이다. 엘니뇨가 대기와 해양의 상호작용이 만들어내는 진자 운동의 한쪽 끝이라면, 라니냐는 다른 쪽 끝인 셈이다. 엘니뇨와 라니냐는 평균적으로 4년에 1번 정도 발생한다고 알려졌지만, 그 주기가 일정하지는 않고 2~7년 사이로 불규칙하게 발생한다.

멀리 퍼져나가는 파동의 노래, 엘니뇨의 원격 상관
엘니뇨는 한반도에서 수만 km 멀리 떨어져 있는 열대 태평양의 현상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홍수, 이상고온 등과 관련된 뉴스에 심심치 않게 오르내린다. 지구 반대편의 바닷물 온도가 1℃ 정도 상승하는 게 무슨 대수라서, 우리나라의 기후까지 바꾸는 것일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우선, 엘니뇨의 발달이 얼마나 거대한 에너지가 드는 일인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해양의 열용량과 부피를 이용한 간단한 계산을 통해, 열대 태평양 지역 해수면 온도를 1도 올리는 데에는, 약 3×1021J 정도의 막대한 에너지가 필요함을 알 수 있다. 이 정도면 세계 2차대전 당시 히로시마에 떨어진 핵폭탄 5천만 개가 내뿜는 열에너지에 해당한다고 하니, 자연의 무시무시한 위력에 경이감마저 느끼게 된다. 이 중의 절반 정도는 대기로 방출돼 전 지구적인 규모의 대기 순환의 변화를 이끌게 되는데, 마치 연못에 돌멩이를 던졌을 때 물결이 퍼져나가는 것과 비슷하게, 열대 지역에서 발달한 강한 대류 현상이 주변 지역 대기에 파동 운동을 유도하게 되는 것이다. 주변 대기의 파동 반응이 점차 퍼져나가 머나먼 지역의 기후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는 현상을 원격상관(Teleconnection)이라고 부른다. 물론, 이런 지구 규모의 대기 파동 현상은 연못의 잔물결과는 전혀 다른 기작을 통해 발달하게 되지만, 대규모 유체역학 이론으로 정확히 설명될 수 있다. 엘니뇨의 여러 가지 형태의 원격상관 반응에 의해 전 지구적으로 다양한 이상기후가 나타나게 된다.

전 지구적 동네북 엘니뇨
이상기후와 관련된 뉴스를 보다 보면, 지구촌 곳곳에서 나타나는 온갖 종류의 이상기후 현상의 원인으로 엘니뇨가 지목되는 것을 보게 된다. 만만하게 갖다 붙이는 동네북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실제로 엘니뇨가 가져오는 이상기후의 다양한 양상은 매우 극적이다. 예를 들면, 엘니뇨 시기에 적도 지역 중태평양의 강수는 증가하지만, 인도네시아와 필리핀, 북부 오스트레일리아에는 심각한 가뭄이 나타난다. 이 지역의 가뭄은 산불 피해를 유발하기도 하는데, 1997년 최악의 인도네시아 산불은 1997~98년 금세기 최고 엘니뇨의 발생으로 인해 그 지역의 강수가 현저히 감소하면서 피해가 극심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남동 아프리카와 북부 남아메리카 지역에서도 강수량이 줄어들어 가뭄이 생기는데, 이에 따라 엘니뇨 해에 이 지역에서 내전이 증가한다는 연구가 Nature 지에 실리기도 했다. 반면에, 미국 남동해안과 아르헨티나 해안, 중앙아프리카 동부와 페루 동쪽 해안 지역에는 증가한 강수량으로 인해, 홍수 피해가 커지는 경향을 보인다. 또 멀리, 극동아시아와 알래스카만을 비롯한 캐나다 동서 해안과 호주 남동부, 남아메리카 동안의 기온이 상승하는 데 반해 미국 남동부의 기온은 하강한다. 엘니뇨 시기의 해수면 온도와 대기 순환 장의 변화는 태풍의 생성과 경로에도 영향을 미쳐 해일, 홍수와 같은 피해를 가져오기도 한다. 이런 기후 환경의 변화는 생태계에 영향이 가는데, 가장 대표적인 예가 세계 5대 어장 중의 하나인 페루 앞바다의 멸치 어장이 파괴되는 일이다. 북동 태평양의 연어가 회귀하는 경로도 엘니뇨 시기에는 북상하는 경향을 나타낸다. 이런 변화는 생물 한 종의 생활상의 변화에 그치지 않고, 주변의 생태계를 파괴한다. 다윈이 진화론 자료를 수집했다는 갈라파고스 군도에서는 핀치새의 부리가 엘니뇨 시기에 작아진다는 흥미로운 연구도 있다.

엘니뇨와 한반도
본격적인 엘니뇨 연구가 시작된 지도 벌써 수십 년이지만, 매번 새롭게 꺼내 보이는 엘니뇨의 다양한 얼굴은 연구자들에게 지루해질 틈을 주지 않는다. 엘니뇨의 다양성은 최근 엘니뇨 연구 커뮤니티의 가장 큰 이슈로, 사람들의 얼굴과 성격이 모두 다르듯 각각의 엘니뇨와 라니냐가 서로 다른 고유의 특징을 가지고 있음이 밝혀지고 있다. 특히, 최근 들어 기존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형태의 엘니뇨들이 자주 관측되고 있어 연구자들의 연구 의욕을 새롭게 부추기고 있다. 엘니뇨 다양성이 중요한 이유는, 해수면 온도의 상승 패턴이 달라지면 전 지구 순환에 미치는 영향도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는, 엘니뇨 시기에 한반도가 따뜻할 것이라는 과거의 단순히 예측은 이제 빗나가기 훨씬 더 쉬워졌다는 뜻이다. 엘니뇨가 가진 여러 가지 고유한 얼굴을 이해하고, 어떻게 대기와 해양 순환을 바꾸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가 필요한 이유이다.

올해 엘니뇨는?
엘니뇨 연구의 역사는 오래됐지만, 그 예측은 여전히 도전적 주제이다. 작년에 열대 태평양에는 약한 엘니뇨가 발생했다. 대부분의 전 세계 엘니뇨 예측 모형은 올해 엘니뇨가 서서히 소멸할 것으로 예측한다. 필자는 지난 2월에 기상청 장기예보 자문회의에 참여해 올해 한반도 기후와 엘니뇨 전망에 대해 논의했다. 이 회의에서 필자는 올해의 해수면 온도 패턴의 특이성을 지적하며, 다른 모형의 예측을 지지하지 않고, 올해 겨울에 강한 엘니뇨가 발달할 수 있음을 주장했다. 현재까지 태평양의 바다와 대기의 상황은 필자의 기대대로 진행되고 있는 것 같지만, 여전히 속단하기는 이르다. 기후학자가 가지는 매력 중의 하나는 자신이 세운 가설을 웅장한 자연을 통해 직접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걱정과 기대, 흥미를 느끼고 수만 km 떨어진 태평양의 상황을 모니터링하면서, 올해 겨울의 짜릿한 결과를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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