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3국의 역사인식과 극복
동아시아 3국의 역사인식과 극복
  • 박중현 / 중경고 교사·한일 역사교육교류회장
  • 승인 2005.05.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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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호 이해가 모든 문제 해결의 출발점
2001년 일본 후소사판 역사교과서의 출현은 동아시아를 역사전쟁으로 몰아넣었다. 일본의 정세에 관심을 갖고 있던 사람들은 이미 예고되었던 일이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일반 시민·학생들은 일본의 무모함과 파렴치함에 혀를 내둘렀다. 이러한 충격은 제대로 된 역사를 쓰고, 가르쳐야 한다는 반성으로 나타났다.

3국이 상호 관계 속에서 살아 온 수 천년의 역사는 각각의 나라가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른 양상을 보이며 전개되었다. 21세기는 글로벌화의 상황 속에서 무한경쟁을 추구하게 하고 있다. 과거의 역사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왜 이렇게 무겁게 다가오는 것일까? 역사는 과거의 일이 아니라 오늘의 일이며 내일을 비추는 지향점이기 때문이다.

동아시아 역사문제는 민족주의 충돌이며, 정치적 문제라 할 수 있다. 근대 민족주의는 국가의 형성과 관련이 있으며, 제국주의 팽창과정에서 자국의 이익을 확대하는 수단이기도 하였다. 기본적으로 민족주의는 자민족 중심으로 이해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일본이 어떤 역사의식을 갖고 어떤 역사책을 쓰고 가르치든지 그건 그 나라의 일’이 아니냐고 하면 사실 할 말이 없을 수도 있다.


역사전쟁 일으킨 일본 역사교과서

일본은 어찌보면 민족이라는 개념이 우리보다 더 늦게 등장하였다. 일본의 민족주의는 메이지 유신 이후 천황을 중심으로 한 국민통합의 개념으로 사용되었다. 침략전쟁의 과정에서 천황은 신격화되었고, 신도는 국가신도가 되었다. 패전 이후 그들은 천황의 전쟁 책임을 면하기 위해 맥아더에게 읍소하였고, 맥아더는 동경재판에서 전범 1호인 히로히토 천황을 피고석에 앉히지 않았다. 자민당 중심의 정치체제가 무너진 이후 일본의 극우세력(이들은 재벌·정치인과 연결됨)은 다시 천황을 앞세워 국가의 이름으로 발악하는 것이다.

일본뿐만 아니라 민족주의가 더욱 강고한 나라는 중국이다. 그들은 중화민족주의로 무장을 하고, 최근에는 이를 ‘애국주의’로 포장을 하였다. 다민족 국가인 중국은 애국주의를 통하여 국가 통합을 이룩하는 이데올로기로 삼는 것이다. 일제의 침략에 맞서 민족의 독립을 추구하였던 저항적 민족주의는 해방 이후에도 형태를 달리하여 존재하였다. 이승만 정권은 반공·방일에서, 박정희 정권은 경제발전과 사회통합의 도구로 한국적 민주주의를 외치면서 민족주의를 활용하였다. 전두환 정권은 벽돌 한 장도 내 손으로 쌓자는 국민운동을 전개하면서 독립기념관을 건립하였다.

이처럼 동아시아 3국의 민족주의는 각각이 처한 상황에 따라 강력하게 힘을 발휘하여 왔으며, 이데올로기화하였다. 이데올로기로서의 민족주의는 ‘민족’의 이름 아래 모든 것을 평가한다. 민족의 이익에 위배되는 것은 용인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다. 그들은 민족을 국가라 교묘하게 치환한다. 그러면 그 ‘민족’은 누굴 위한 것인가? 해당 구성원 모두를 위한다고 말하지만 실제 소수의 권력층, 재벌,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함이다. ‘독도 문제’도 그러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것이 어째 그들만의 것이냐고. 그러나 한 번 생각해보자.

대통령이 나서서 ‘외교 전쟁’까지도 불사한다고 했다 해서, 일본의 고이즈미 총리나 책임있는 관리가 ‘그래 한국 땅이 맞다’라 할 수 있을까? 그래서 ‘국내용’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물론 말도 안되는 우익의 행동에 대한 항의의 표시라 하지만 실제적으로 국내용이고 정치적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정치가들은 현실에 뿌리를 두고 있다. 미래까지 생각할 여유가 없다.

두 차례 세계대전을 겪었던 유럽의 가해와 피해자들은 과거 역사의 아픔을 치유하려는 노력을 공동의 역사교과서나 물질적 배상 등을 통하여 꾸준히 전개하고 있다. 그러한 토대가 결국은 유럽연합의 단결과 발전을 가져온 기반이라 할 수도 있다. 한국·중국·일본이 세계화의 경쟁에서 치열한 맞상대이긴 하지만 긴 호흡으로 보자면 함께 살아야 할 이웃이다. 블록화·세계화의 경향 속에 동아시아 3국이 대립각을 세우는 것은 절대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사건은 동아시아 각 국의 역사 인식의 공유와 상호 이해를 강화하기 위한 노력을 촉구하였다. 동아시아 지역이 갖는 중요함을 인식하고 공동의 발전을 추구하기 위해 바른 역사 인식과 이해가 필요함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특히 동일한 역사 사실에 대한 최소한의 인식은 상호 이해와 공존의 전제 조건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을 형성시켜 나가는 역사교육의 비중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이러한 과정에서 양국 모두에게 진실을 가르칠 수 있는 교재의 필요성을 인식시켰다. 한국에서는 일본 교과서 왜곡 문제에 조직적으로 대응하기 위하여 80여 개의 시민단체 연합으로 ‘일본교과서 바로잡기 운동본부’가 만들어졌다. 2002년 3월 중국의 난징에서는 ‘역사 인식과 동아시아 평화’라는 주제로 국제 심포지엄이 열렸다. 이 회의에 참석했던 3국의 참가자들은 공동의 역사 부교재를 만들기로 합의하였다.


동아시아 역사문제는 민족주의의 충돌

이후 3국을 오가며 10여 차례의 회의를 가졌다. <미래를 여는 역사>라는 이름으로 5월 출간되었다. 이 교과서는 개항 이후의 근현대사를 다루고 있다. 1장은 개항기, 2장은 1910·20년대, 3장은 30년 전쟁 시기를 다루며, 4장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를 다루고 있고, 종장에서는 평화를 위한 공동 노력을 모색하고 있다. 이 모임은 일본의 우경화와 군국주의적 팽창을 경계하는 의미에서 시작되었으며, 각 장은 몇 개의 주제로 이루어져 있어서 해당 내용을 심도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쓰고 있다.

그러나 3국이 공통의 역사 인식을 갖는다는 것은 초기부터 무리였다. 중국측의 태도는 ‘애국주의’라는 국가적 틀을 극복하기 어려운 측면이 많았다. 중국 측의 원고에서는 학생들이 읽기에 무리일 정도의 구체적인 참상들을 사실적으로 나열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일본의 경우는 작업에 참여한 연구자나 교사들이 일본의 우경화에 반대하는 비판적 인물들이었으므로 현실 인식에 있어서는 한국이나 중국보다 더 강경하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론에 있어서는 일본적인 시각이 나타나기도 하였으며, ‘일본’과 관련한 대부분의 서술이 부정적이라는 주장도 개진하였다. 한국의 경우도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이 시기 역사를 보려는 노력들에 많았다고 개인적으로는 생각한다. 이러한 것이 상대방들에게는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작업에 참가한 3개국의 필진들은 이러한 토론을 전개하면서 나타난 반응들에 대해 상대를 인식하는 계기도 되었다. <미래를 여는 역사>는 3국 모두의 독자나 연구자들에게 만족할 수 없는 비판의 대상인 책이다. 특히 민족주의가 팽창한 이즘에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오늘의 현실 인식과 미래를 지향한다고 하였을 때 꼭 필요한 책이기도 하다. 공동 부교재를 통한 여러 노력들은 결국 다음과 같은 의의를 가질 수 있다, 첫째는 독립된 나라로 자국의 입장에서 상대 국가를 바라보았던 이들에게 상대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둘째는 역사교육에 종사하는 그리고 배우는 학생들에게 소재를 제공할 수가 있다. 셋째, 상대국에 대한 인식의 전환과 동아시아 가족 공동체 의식을 공유함으로써 새로운 동아시아 사회의 미래를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후소사판 역사교과서는 한국과 일본의 미래상을 긍정적으로 볼 수 없게 만들 수 있다. 진정 상대를 이해하는 문제에서 모든 것이 출발하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 역사를 상대화한다는 것은 진실에 객관적으로 다가설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며, 이를 통해서만 양국의 미래는 긍정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


피해 당사자 진정한 이해노력 절실

한국에서 일본의 역사교과서가 갖고 있는 여러 문제를 지적하고 비판하는 동시에 한국의 교과서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현재 국정으로 되어 있는 국사 교과서가 8차 교육과정에서는 검인정으로 되리라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국사의 명칭도 국사와 세계사를 합쳐 ‘역사’로 바꾸자는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우리 스스로도 바뀌려는 노력이 진정 필요하다.

근대 사회의 특징은 시민혁명에 의한 민주주의 확립, 산업혁명에 따른 자본주의 확립, 과학적 합리성을 특징으로 한다. 우리는 해방 이후 독재 정권과의 싸움에서 피흘린 댓가로 민주주의를 이룩하였다. 또한 불모의 땅에서 세계 10위 권의 경제성장을 이룩하였다. 끊임없는 연구는 다양한 영역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일들에 자부심을 가져야 하고, 이는 한국이 폐쇄적 민족주의를 극복하고, 세계로 향할 수 있는 자산이다. 그 움직임의 중심에는 젊은이들의 열린 생각과 ‘상생의 공동체’에 대한 열망이 필요하다. 이를 통하여 새로운 한국인들이 동아시아와 세계를 향하여 내달음칠 때, 이해와 관용, 화해와 협력의 손길을 내밀 수 있는 동아시아인, 세계인으로 성장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미래를 위한 역사>를 간행한 목적이며, 추구해야할 미래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