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대학 교정을 산책하며 자연과 생명을 생각한다
우리대학 교정을 산책하며 자연과 생명을 생각한다
  • 이승우 / 생명 교수
  • 승인 2019.02.28 03: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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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늘어버린 나잇살을 빼야겠다는 이유로 교정 산책을 시작했다. 매번 비슷한 코스로 산책하다 보니 계절에 따라 변하는 자연이 알아서 눈에 들어온다. 어디나 마찬가지겠지만 우리 교정에도 바야흐로 봄이 왔음을 알리는 꽃은 목련이다. 겨우내 손가락만 한 겨울눈 안에서 웅크리고 있다가 땅이 녹기 시작하고 따듯해지면 어느 날 갑자기 아기 손만 한 꽃이 받침도 없이 홀연히 나타난다. 크고 하얀 꽃송이가 일제히 피어나는 장면은 진정 장관이다. 비록 떨어질 때 남루한 모습이 안쓰럽지만, 목련 나무가 일제히 하얀 꽃들을 내뿜듯이 매달고 있는 이삼 주 간은 정말 황홀하다. 교정에서 가장 멋진 목련을 볼 수 있는 곳은 노벨동산에서 RIST 식당으로 가는 샛길이다. 4월로 접어들어 온 교정이 흩날리는 벚꽃으로 만발하면 누구라도 마음이 동하지 않을까? 버스커버스커의 노래처럼 벚꽃은 시간을 거슬러 순진했던 청년 시절의 기억을 절로 불러온다. 벚꽃은 피는 순간부터 떨어지기를 기다린 양 포항의 매서운 바람 때문에 채 몇 주를 버티지 못한다. 김훈 작가는 ‘자전거 여행’에서 봄꽃 들이 저마다 멋을 가지고 떨어지는 모습을 이렇게 쓰고 있다. “매화는 질 때, 꽃송이가 떨어지지 않고 꽃잎 한 개 한 개가 낱낱이 바람에 날려 산화한다. 가지에서 떨어져서 땅에 닿는 동안, 바람에 흩날리는 그 잠시 동안이 매화의 절정이다. 배꽃과 복사꽃과 벚꽃이 다 이와 같다.” 비장하다. 글로만 비장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다. 혹한의 시절을 뚫고 나온 꽃잎을 이루고 있는 세포들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며 떨어져 나간다. 세포가 스스로 사멸하는 과정을 학문적 용어로 아폽토시스(Apoptosis)라고 하는데 어원은 그리스어로 apo(분리) + ptosis(떨어짐)이다. 모든 생명(세포)의 마지막이 비장할 필요는 없다지만, 자연의 순리라는 것이 때론 냉엄해서 제 쓸모를 다 한 후 미련 없이 퇴장한다. 이는 전체를 위한 희생이고 결국 순환을 통한 부활과도 같으니, 비장해도 애처롭진 않다. 교정 곳곳에서 벚꽃을 만날 수 있지만, 청암로에서 무은재 가는 양 옆길과 폭풍의 언덕 끝에서 지곡회관을 내려다보는 곳에 있는 벚꽃 나무들이 좋다. 4월의 맑은 기운과 파릇파릇 올라오는 풀들, 활짝 핀 벚꽃을 배경으로 예비 신랑 신부가 웨딩 촬영을 하고 있었다. 마침내 이어폰을 통해 브루크너의 4번 교향곡 1악장이 시작했으니 봄날의 로맨틱함이 이만하면 최상이다.
우리대학 교정에서 높고 푸른 가을 하늘과 흘러가는 흰 구름을 보는 건 언제나 청량하다. 10월이 되면 어느새 자연도 수확과 정리의 계절을 맞는다. 이맘때 내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나무는 무은재 올라가는 길 오른편 모과나무다. 어떻게 가느다란 가지에 그렇게도 큼지막한 열매들을 달고 있는지 놀라울 뿐이다. 저 주먹만 한 모과가 하늘의 태양 빛과 땅속의 물 그리고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로 결국 만든 것이니, 바로 광합성(Photosynthesis)이라는 지구 생명을 지탱하는 식물의 경이로운 반응이다. 현대 과학이 광합성의 높은 효율을 여전히 따라가지 못하고 있으니 자연은 언제나 우리를 앞서간다는 말이 지극히 어울린다. 한편 삶에 필요한 에너지 동력을 스스로 만들어내지 못하는 동물들은 생존을 위해 유기물을 섭취해야 할 숙명을 타고났다. 그 유기물의 공급원이 무엇이든지 근원은 결국 식물들의 수고로 만들어지는 것이니, 제 필요가 아닌 다른 생명들 양식을 만드는 식물들의 매일의 노고에 감사할 뿐. 
“걷는다는 것은 자신을 세계로 열어놓는 것이다. 발로, 다리로, 몸으로 걸으면서 인간은 자신의 실존에 대한 행복한 감정을 되찾는다.” 프랑스 사회학자 다비드 르 브르통은 ‘걷기예찬’에서 산책에 대한 기쁨을 이렇게 표현했다. 인간이 자신의 실존을 깨닫는다는 것이 나와 같은 생명과학을 전공한 사람들에겐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이해된다. 산책을 하며 만나는 많은 생명의 시원은 먼 우주 어디에선가 전해진 원소들로부터 기원했다. 이들이 우연히 지구라는 행운이 가득한 행성에서 무기물과 유기물로 퇴적돼 스스로 복제하고 진화하는 경이로운 유기체로 거듭났다. 영원과도 같은 아득한 시간을 지나며, 세균도 잠자리도 물고기도 새도 또 나무도 인간도 생명이라는 유기체의 연속체(Continuum)로서 긴 여정을 동행 중이다. 제각기 다른 모습의 삶을 살고 있지만, 이들 중 누구도 영속할 수 없음을 안다. 모두 종래엔 다시 유기물로 또 원소로 돌아가서 다른 생명의 피와 살이 돼 나타날 것이다. 베토벤의 전원 교향곡 5악장처럼 모든 생명이 하나 돼 공존하는 자연을 느낄 때 나는 실존하는 생명체로서 기쁘고, 감사하며 스스로 겸손해진다. 산책을 마치며 돌아오는 길가에 쥐라기부터 살았다는 메타세콰이아와 은행나무가 늠름히 서서 날 반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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