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04호 ‘증오로 증오를 몰아낼 수는 없다’를 읽고
제404호 ‘증오로 증오를 몰아낼 수는 없다’를 읽고
  • 하현우 / 전자 16
  • 승인 2019.02.11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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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동물권 단체 ‘케어’의 직원들이 해당 단체의 대표인 박소연 씨의 사퇴를 촉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직원들이 주장하기를, 박소연 씨는 일부 직원들까지 속여가면서 200마리가 넘는 동물들을 안락사시켰다고 한다. 박소연 씨는 동물들을 안락사시켰던 사실을 인정했다. 그런데 그녀는 사죄하는 대신 “끔찍하게 (개를) 도살하느니 안락사가 훨씬 낫지 않나”라고 반문하며, 끔찍한 개 도살 장면이 담긴 영상을 업로드 했다.
일견 그녀의 주장은 일리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개 도축은 불법화도 제도화도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고, 상황이 그러니 일반적인 가축에 비하면 보다 비인간적인 도살이 흔히 행해지고 있다. 그보다는 약물에 의한 안락사가 덜 잔인하다고 느끼는 것이 그리 이상하지는 않다. 그러나 문제는 이 단체가 본래 안락사 없는 동물 보호단체를 표방했었다는 점이다. 그러니 그녀가 한 일은 후원금이 동물 구조에 쓰일 거라고 믿고 후원한 사람들을 배반한 행위이며, 그녀의 주장은 뒤늦은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그녀가 믿음을 배반했느니 마니 하는 이야기는 접어두고, 도축될 예정인 개를 구조해 다시 안락사시키는 이 행위 자체가 옳다고 할 수 있는 것인지를 생각해보자. 도축은 근본적으로 도축한 후에 음식으로 취하겠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도축될 예정인 개를 구조하는 순간, 그 개는 음식으로 취한다는 목적에서 자유로워진다. 먹지 않을 것인데 사람이 데리고 있는 개를 흔히 반려견이라고 하지 않던가. 이 행위는 반려동물을 조금 덜 아프게 죽인 것과 다르지 않다. 필자가 아는 한 우리 사회에서는 반려동물을 살해하면 정부 기관이 아닌 다음에야 그게 누구고 어떤 방식이든 간에 강하게 비난받는다. 그런데 이런 행위를 ‘동물권’ 단체가 저지르는데도 이를 “그래도 개 도살보다는 낫다”라고 두둔한다니, 그런 의견에는 참으로 동의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이것이 바로 앞선 제404호 ‘증오로 증오를 몰아낼 수는 없다’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언급했던 ‘어둠으로 어둠을 몰아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가치 판단에 속하는 문제들은 사람마다 옳고 그름이 아주 다르다. 자신의 가치관 내에서 ‘아주 추악한 일’을 막기 위해 ‘조금 덜 추악한 일’을 하며 스스로 정의롭다고 여길 수 있으나, 그것은 어떤 이들이 보기에 ‘덜 추악한 일’을 막으려 ‘훨씬 더 추악한 일’을 하는 것일 수도 있다. 때로 우리는 최선도 차선도 아닌 차악을 택하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추악한 일’을 막기 위해서는 ‘선한 일’로써 응해야 한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가령 개에 대해 여타 가축들과 같이 도축 과정을 제도화해 비인간적이고 비위생적인 도살을 막을 수 있고, 식용견의 품종을 명확히 규정해 반려견이 식용으로 흘러 들어가는 끔찍한 일을 미연에 방지할 수도 있다. 구조된 반려동물의 안락사 문제의 경우에도, 독일처럼 구조된 반려동물만을 입양할 수 있도록 체계를 구축함으로써 안락사라는 선택지 자체를 지울 수도 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어둠으로 어둠을 몰아내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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