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과학기술 보도의 현주소
[기고] 과학기술 보도의 현주소
  • 신동호 / 과학동아 편집장
  • 승인 2004.05.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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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입장에서 취재·보도와 프레스 컨퍼런스 필요
과학기술 보도의 중요성과 과제에 대한 글을 써달라는 포항공대신문 기자의 청탁을 받았다.

포항공대 교수와 학생들에게 과학기술 보도가 중요하다는 얘기를 굳이 할 필요성은 없을 것 같다.

이런 얘기는 오히려 포항공대의 교수들이 과학기술을 중요하게 다룰 생각이 없는 언론사 사장이나 편집국장 또는 논설위원들에게 해줄 얘기인 것 같다.

사실 과학기술 보도가 중요하기는 하다. 노무현 대통령이 제 아무리 ‘과학기술 중심사회’를 만들겠다고 소리 높여봐야 효과가 별로지만, 신문 방송이 매일 과학기술을 1면 기사로 다루고 많은 지면과 시간을 할당한다면 당장 과학기술 중심 사회가 될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의 과학언론은 주변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과학기술도 과학기술자도 푸대접을 받는다.

과학기술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사회나 언론이 모두 인식을 하면서도 정작 과학보도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게 오늘날의 현실이다.

과학기술자 아닌 독자 입장의 기사 되어야

과학보도가 활성화되지 못하는 본질적인 이유는 과학면의 가독성이 다른 면에 비해 떨어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신문사가 주기적으로 실시하는 조사에 따르면 과학면은 스포츠나 문화면, 건강면에 비해 가독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전문성 높고 독자의 입장에서 소재를 선택하는 눈을 가진 기자가 쓰는 글은 어떤 때에는 다른 면의 기사보다 오히려 가독성이 높은 경우도 꽤 많다. 이는 과학보도의 가독성이 전적으로 기자의 능력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과학기사가 재미없는 근본원인은 보도자료를 베끼기에 급급하기 때문이다. 과학보도가 활성화되려면 독자의 입장에서 기사를 기획하고 취재해 보도하는 활동이 이루어져야 한다.

공급자 즉 과학기술자가 만든 보도자료는 대개 ‘국내 최초’니 ‘세계 최초’니 하는 수사를 섞어 과학자가 자신의 업적을 홍보하는 데 급급한 것이 많다.

과학기사는 독자의 호기심을 충족시켜주고, 지식을 늘려주며, 생활과 관련된 과학지식을 늘려주어야 한다.

이런 기사를 만들기 위해서는 과학기자의 전문성 확보가 필요하며, 일단 과학기자가 되면 적어도 5년 정도는 경력을 쌓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과학기자는 독자가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소재를 아이디어로 선택하는 능력을 갖게 된다.

또한 과학기사는 독자에게 놀라움과 흥미를 느끼게 하는 요소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천편일률적인 과학기술 만능주의적 보도 태도보다는 비판적이고 회의적인 시각에서도 보도하는 비판의식이 과학기자들에게도 필요하다.

과학기술은 양날의 칼이고, 독자들도 기술평론가로서 기술발전 문제에 대해 함께 생각해볼 수 있도록 해주는 기사가 좋은 기사라고 볼 수 있다.

과학 섹션화를 통한 심층보도의 활성화

미국 볼티모어선지가 노벨상을 탄 한 분자생물학자의 인간 스토리를 과학과 엮어내는 방법으로 3면에 걸쳐 긴 기사를 실은 기사를 본적이 있다. 광고도 전혀 없는 이 기사는 원고지 1백매가 넘는 엄청나게 긴 기사였지만 과학자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발견의 스토리와 함께 곁들여 소개해 마치 짧은 소설책 한권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과학기사는 기본적으로 분량이 짧아 글의 맛을 느낄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과학면을 섹션화해서 늘이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중앙일보와 문화일보가 뉴욕타임스처럼 사이언스 섹션을 만든 바 있지만 광고가 뒷받침되지 못해 중단되고 말았다. 섹션화가 가능하려면 기사의 질이 높아져 가독성이 있어야 하고 광고가 뒤따라 주어야 한다.

현재 독자의 적어도 3분의 1 정도가 이공계 출신임을 감안한다면 과학면을 섹션화할 경우 고정 독자를 확보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생각된다.

과학부가 독립해야 한다

현재 중앙일간지 가운데 과학부를 독립된 부서로 운영하는 곳은 전무한 실정이다. 과학부가 있어야 1면 등 주요면에 대한 기사 배치를 결정하는 편집국 회의에서 과학부장이 참석해 발언할 수 있다.

그러나 일간지의 과학기술담당 기자는 현재 경제부, 사회부, 산업부에 소속돼 있기 때문에 과학을 잘 모르는 부장이 과학기사를 1면이나 종합면에 세일즈하고 있는 상태이다.

과학지식과 과학보도에 대한 신념이 부족한 경제부, 사회부, 산업부장은 과학기사를 키우는 데 자신이 없어하거나 관심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따라서 과학면에 나가는 뉴스를 제외하고는 과학뉴스가 비중있게 다뤄지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또한 과학뉴스는 다른 뉴스와 달리 영향력 있는 뉴스라기보다는 지식을 전파하는 뉴스가 대부분이어서 독자들의 반응이 없는 경우가 많다.

과학부를 독립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요즘 기사량이 크게 늘어난 건강 의학 분야, 90년대에 한창 비중이 늘어났으나 요즘은 매우 소홀히 취급되고 있는 환경분야, 그리고 과학분야를 합쳐서 과학부를 만드는 것이 가장 좋은 대안이라고 볼 수 있다.

1면에 과학기사가 자주 나가야 한다

현재 과학담당 기자의 숫자는 대개 신문마다 1-2명 수준이다. 동아일보와 중앙일보가 주2면 과학면을 만드는 것을 제외하고는 대개 각 언론사는 주1회 과학면을 내보내고 있다.

현재의 기자 숫자로는 과학면을 제작하는 데 온통 정신이 쏠려 1면이나 사회면 기사를 쓸 여력이 거의 없는 상태이다. 게다가 기사를 발굴해 1면 같은 곳에 출고를 해도 채택되는 확률이 희박한 실정이다.

따라서 과학부가 신설돼 기자의 숫자를 늘리고 과학부장이 편집국 회의에서 적극적으로 세일을 해야 과학보도가 살아날 수 있다. 뉴욕타임스나 아사히신문의 경우 7-8명의 과학기자를 두고 있다.

인터넷 사이트에서 과학이 독립된 카테고리로 등장해야 한다

한국과학문화재단의 ‘2002년 과학기술국민이해도 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과학기술 관련 정보의 인지 경로는 TV/라디오 등 방송이 50.3%, 신문 20.5%, 인터넷 13.3%이다.

인터넷의 비중은 계속해서 증가하는 추세다. 신문기사도 요즘에는 인터넷 포털 사이트를 통해서 보는 게 보통이다.

따라서 신문에 실린 과학기사가 좀더 인터넷 이용자에게 노출되려면 신문 뉴스 사이트와 대형 포털사이트의 뉴스 카테고리에 과학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러나 다음, 야후, 네이버, 엠파스 같은 주요 포털사이트들은 대부분 IT라는 카테고리 속에서 과학기사를 취급하고 있어 과학기사에 대한 네티즌의 접근이 매우 어려운 상태이다.

신문도 마찬가지다. 조선일보는 과학 카테고리가 없고 대신 경제 카테고리 속에 숨어 있어 독자들이 접근하기 어렵다.

중앙일보를 제외한 나머지 신문들은 연관성이 별로 없는 IT와 과학을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어서 기사를 함께 싣고 있다. IT/과학이란 카테고리를 만들고 다른 기술은 거의 다루지 않고 있다. 게다가 기술을 IT로만 국한시켜 다루고 있어 에너지, 자동차, 환경기술 등은 매우 소홀히 취급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과학기술이 제대로 다뤄지려면 과학이 독립된 카테고리로 존재하거나, 이것이 어렵다면 과학과 건강을 묶어 다뤄야 한다. IT도 기술이란 카테고리 속에서 다뤄져야 다양한 기술을 소개할 있다.

프레스 컨퍼런스가 자주 열려야

이 지면을 빌려 포항공대에 프레스 컨퍼런스를 조직하라고 권유하고 싶다. 학자들끼리만 학술대회를 할 것이 아니라, 별도의 스케줄을 잡아 기자 초청 프레스 컨퍼런스를 개최하는 것이다.
필자는 미국 MIT에서 사이언스 저널리즘을 연수하던 시절 하버드의대가 미국 전역의 과학기자들을 초청해 열었던 ‘유전자 치료’ 프레스 컨퍼런스에 참여했었다.

권위있는 교수 20여명을 강사로 내세워 이틀에 걸쳐 유전자 치료의 모든 것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한 뒤 유전자 치료에 대한 많은 기획기사가 미국의 언론에 등장했다. 아쉽게도 한국의 과학기술계는 언론인만을 대상으로 한 프레스 컨퍼런스에 별로 관심이 없다.

오랜 기간 동안 과학 보도를 해오면서 큰 어려움을 겪은 게 있다. 교수들은 언론에 자꾸 나오기 좋아하는 교수를 경멸하는 경향이 있다. 실력도 없는게...언론만 밝힌다는 것이다.

또 나이든 교수가 있는데 젊은 교수가 언론에 등장하는 것도 실례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과학기술자도 있다. 그러나 이런 잘못된 생각은 깨져야 한다.

과학기술 보도는 기자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과학기술은 매우 전문적인 영역이어서 과학기술자의 협조 없이는 좋은 기사를 쓸 수 없다.

좋은 과학기사를 쓸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과학기술자는 경멸의 대상이 아니라 ‘과학기술 중심사회’ 만들기에 앞장서는 진정한 애국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