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적 병역거부 논란 재점화…대체복무제 시행은 어떻게?
양심적 병역거부 논란 재점화…대체복무제 시행은 어떻게?
  • 국현호 기자
  • 승인 2018.11.29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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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별 양심적 병역거부 무죄판결 현황 그래프. 이번 대법원 판결 이후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연도별 양심적 병역거부 무죄판결 현황 그래프. 이번 대법원 판결 이후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집총과 병역을 종교적인 이유나 양심적인 이유에서 거부하는 행위인 양심적 병역거부가 요즘 뜨거운 논란이 되고 있다. 이는 지난 1일, ‘여호와의 증인’ 교리를 이유로 입영을 거부해 병역법 위반으로 기소된 신도 오승헌(34) 씨의 상고심에서 대법원이 9(무죄) 대 4(유죄) 의견으로 무죄 판결을 내렸기 때문이다. 이 판결은 지난 6월 헌법재판소에서 대체복무제를 시행하지 않는 현 병역법 제5조 1항에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어느 정도 예상됐으나, 직접적인 결과로 나타난 만큼 사회적으로 커다란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사실 양심적 병역거부가 최근에만 논란이 돼왔던 것은 아니다. 2005년 12월에도 국가인권위원회가 종교적 병역거부를 인정할 것을 요구하고, 국회와 정부에 대체복무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사회적으로 찬반 논쟁이 거세게 일어났다. 이후 정부는 2007년 9월, 2009년 초부터 종교적 병역거부자들이 36개월 동안 한센병원이나 결핵병원 등에서 근무하면 병역 이행으로 간주해 주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인 2008년 12월에 국방부는 대체복무제 도입이 시기상조라며 최종 결정을 무기한 보류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다르다. 헌법재판소에서 현재 대체복무제가 규정돼 있지 않은 병역법 5조가 헌법에 위배된다고 판결했고, 이를 2019년 12월 31일까지 개정해야 한다고 판시했기 때문이다. 또한, 정당한 사유 없이 병역 자체를 거부하는 사람을 처벌하는 법안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합헌 판결이 났다. 게다가 오승헌 씨의 판결에서는 재판부가 “종교적 신념은 헌법상 의무보다 우월한 가치를 지닌 ‘양심의 자유’이고, 이는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라며 종교적인 이유로 병역을 거부하는 것이 무죄라고 못 박았다. 물론 양심적 병역거부가 유죄냐 무죄냐 하는 것도 중요한 쟁점이지만, 대법원의 마음이 돌아선 이상 이제 중요한 것은 대체복무제가 어떻게 시행될지에 대한 문제다.
그러나 이에 대한 논의도 쉽지 않다. 대체복무제를 개정하기 위해서는 법안에 그에 관련된 사항들을 명시해야 한다. △대체복무제 적용 대상을 어디까지 한정해야 하는가 △대체복무 이행 기간을 어느 정도로 잡아야 하는가 △대체복무를 이행할 때 어떤 작업을 수행하게 되는가 와 같이 다양한 사항을 법에 기록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 개개인의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현재 많은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해외에서는 어떻게 시행되고 있을까. 현재 전 세계적으로 징병제는 약 80개국에서 시행되고 있으며, 그중 헌법이나 법률로 대체복무제를 시행하고 있는 국가는 △독일 △스웨덴 △덴마크 △오스트리아 등 40여 개국이다.
이 나라들은 주로 대체복무제의 업무에 행정시설, 복지시설, 의료기관 등 여러 가지 일을 포함하고 있다. 특히 이탈리아의 경우에는 전쟁 발발 시 민간인 보호에 대체복무자를 투입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다. 또한, 독일과 오스트리아 같은 경우에는 자신의 업무를 선택할 수 있지만, 그리스는 병무청에서 직접 대체복무자들의 담당 분야를 정해준다.
복무 기간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정해진 기준이 없다. 대체복무와 현역복무의 기간이 같은 스웨덴, 덴마크, 이스라엘부터 2배 정도까지 차이가 나는 노르웨이도 있다. 이에 대해 유럽평의원회에서는 대체복무 기간은 현역복무 기간의 1.5배를 넘기면 안 된다고 결정한 바 있다. 또한 국가인권위원회에서도 현역복무의 1.5배 기간을 권고한 바 있고, 전 세계적인 추세 또한 약 1.5배의 기간을 적용하고 있다.
적용 대상의 문제는 결국 대체복무 심사 진행 방식의 문제로 귀결된다. 대만의 경우에는 까다로운 조건 아래에서 2년 이상의 신앙생활(종교단체나 시민단체 활동 등)을 서면으로 증명해야 하고, 서면만으로 불충분할 경우에는 1년 이내의 관찰과 대면 심문 이후 대체복무가 결정된다. 그러나 독일 같은 경우에는 헌법으로 병역거부권을 보장하기 때문에 자신이 군대에 가고 싶지 않다면 병역거부권을 행사하고 대체복무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현재 여러 개정안이 발의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전해철 의원은 대표 발의한 병역법 개정안에서 ‘사회복지 또는 공익과 관련된 업무를 현역병의 1.5배 기간 동안 행하는 것’으로 대체 복무제를 정의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이철희 의원 △자유한국당 이종명 의원 △바른미래당 김중로 의원은 현역복무의 2배로 대체복무 기간을 제시했다. 또한, 김학용 자유한국당 의원은 업무에 ‘지뢰 제거 작업 투입’을 적시하고, 복무기간은 현재 복무기간이 22개월로 가장 긴 공군의 2배로 규정했다. 개정안마다 주요 사항들에 대한 기준이 다른 것을 볼 수 있다.
현재 국회의원들의 개정안이 발의될 때마다 수많은 기사가 쏟아져 나오며 여론의 저울 위에 놓이고 있다. 특히, 이번 대법원의 양심적 병역거부 무죄 판결로 인해 더욱 관심이 몰리고 있다. 현 정부는 국민들이 만족할만한 대체복무제를 개정해 논란을 잠재울 책임을 떠안은 것이다. 대체복무제는 종교적·양심적으로 병역을 이행하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필요한 법안이며, 동시에 그들이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의무를 이행할 수 있도록 돕는 제도이다. 하지만 잘못된 기준에 따라 제정될 경우 악용되는 등 심각한 사회적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국방부, 법원, 검찰, 국회의원들은 긴밀히 협력해 국민들이 납득할만한 기준을 조속히 제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