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위허위 형산강을 거니는 김동리
허위허위 형산강을 거니는 김동리
  • 김일광 / 동화작가, 포항문인협회장
  • 승인 2003.1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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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리 선생의 본명은 시종이며, 1934년 시 「백로」가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입선하면서 몇 편의 시를 발표하였지만 1935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화랑의 후예」,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산화」가 당선되면서 소설가로서의 위치를 다졌다. 초기에는, 한국 고유의 토속성과 외래사상과의 대립 등을 신비적이고 허무하면서도 몽환적인 세계를 통하여 인간성의 문제를 그렸으나 6.25 이후에는 인간과 이념과의 갈등을 조명하는 데 주안을 두기도 하였다.

동리 선생은 경주시 성건동 186번지에서 태어났다. 출생당시만 해도 한적하기 이를 데 없었던 이곳에서 도시와 농촌의 양면적 삶을 체험하면서 작가의식 형성을 했을 것이다. 이미 주인이 바뀐 생가는 옛 흔적을 조금도 찾아볼 수 없게 번듯한 2층 양옥집이 되어 서 있다. 그러나 골목 입구 가게의 팔순 노인이 아직도 동리에 대해 많은 것을 기억하고 있듯이, 선생은 형산강 곁에 가깝게 머물러 있다고 할 수 있다.

「을화」로 개작된 「무녀도」의 배경이 된 애기소는 생가에 인접한 곳으로 서천과 알천이 만나는 형산강을 이루는 합수 지점이다. 동국대 경주 캠퍼스로 들어가는 경대교의 북쪽 300미터쯤에 자리한 애기소는 꽤 넓은 물웅덩이로 명주 실꾸리 하나가 들어갈 정도로 깊다고 소설에는 소개되어 있다. 아직도 무슨 풀지 못할 한의 응어리인 양 검푸른 빛깔로 고여 있는 이 소는 한낮에도 오싹한 느낌을 준다.

이외에도 동리 선생의 초기 작품인 「무녀도」,「황토기」,「바위」,「허더풀네」,「달이야기」등에서 동원된 실질적인 인물과 배경은 모두가 경주이며 지금도 확연히 더듬을 수 있다.

파랑새 뒤쫓다가 / 들 끝까지 갔었네 / 흙 냄새 나무 빛깔 / 모두가 낯선 황혼인데 / 패랭이꽃 무더기 져 피어 있었네. - 김동리 「패랭이꽃」 전문

패랭이꽃은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 동리 선생은 어느 날 문득 고향을 찾았다가 알천 그 언저리 어디에서 파랑새를 만났다고 한다. 그 파랑새를 뒤쫓아간 들 끝에서 흐드러진 패랭이 꽃밭에 들어섰다고 한다. 그런데 흙 냄새, 나무 빛깔 모두 낯선 황혼이었다니 그곳이 저승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더욱이 그곳에서 전생에서 보았던 패랭이꽃을 또 보게 된다. 말하자면 이승에서 파랑새를 뒤쫓다가 끝내 저승에 다다랐다고 한다. 그래서 이 시의 제목을 처음에는 ‘이승 속의 저승’ 으로 붙이려 했다고 한다. 이처럼 동리 선생은 아직도 이승과 저승을 넘나들며 알천과 애기소 주변을 허위허위 걷고 있단다. 볕 좋은 날, 석양 무렵 알천을 따라 애기소로 가면 저승에서 산책 나온 동리 선생을 만날 수 있으리라. 재수좋은 날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