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역 먼저? 사생활 먼저?
방역 먼저? 사생활 먼저?
  • 박민해 기자
  • 승인 2018.05.10 17: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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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3일 POVIS 포스텍 라운지에는 대학원 아파트 1동에 거주하는 한 대학원생의 글이 올라왔다. 글쓴이는 “방역이 이뤄지던 날 아침에 샤워하던 중 방역 작업자가 현관문을 마스터키로 열고 들어왔다”라고 밝혔다. 글에 따르면, 작성자가 방역 작업자에게 방역을 조금 이따가 할 수는 없겠느냐고 묻자, 방역 작업자는 금방 끝난다며 막무가내로 작업을 진행한 뒤 나갔다고 한다. 작성자는 “너무나 어이가 없고 화가 나서 할 말을 잃었다”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이에 생활관운영팀에서는 “방역과 관련해 무례와 불편을 끼쳐드린 점 사과드린다”라며 “관련 업체 직원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강화해 다시 이런 불편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라고 답변을 게시했다.

많은 인원이 단체로 거주하는 생활관과 아파트에서, 병원균과 해충의 번식을 막는 방역은 필수불가결하다. 하지만 포스텍 라운지의 게시물에서처럼, 방역이 진행될 때 사생활을 침해당한다며 문제를 제기하는 학우들도 적지 않다. 단체 생활을 위한 방역 작업과 거주자의 사생활 보장 가운데에서 균형을 찾아야 할 시점이다.

 

우리대학의 방역은

공동주택, 숙박업소 등 많은 수의 사람들이 거주하거나 이용하는 시설을 관리, 운영하는 주체는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51조 제2항에 따라 소독을 해야 한다. 우리대학의 경우 △생활관 △대학원 아파트 △포스빌 모두 50인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기숙사 및 합숙소로 분류되며, 매년 4월부터 9월까지 중 두 달에 1회 이상, 10월부터 3월까지 중 석 달에 1회 이상 소독이 시행돼야 한다. 또한, 해당 법률의 시행규칙에서는 소독의 방법을 △청소 △소독 △질병 매개 곤충 방제 △쥐 방제로 규정한다. 일반적으로 우리대학에서 이르는 ‘방역’이라 함은 소독 중에서도 약물 소독, 그리고 질병 매개 곤충 방제 중에서도 화학적 방법에 따른 것이다. 병원균에 대해 소독력이 있는 약제를 살포하고, 질병 매개 곤충에 맞는 곤충 성장 억제제 또는 살충제를 사용해 유충과 성충을 제거하며, 잔류성 살충제를 사용해 추가적인 유입을 막는 방식이다.

우리대학의 방역에는 크게 △구매관재팀 △총무안전팀 △생활관운영팀이 관여한다. 구매관재팀은 우리대학 전 지역에 대해 방역 전문 업체와 연간 단가 계약을 체결한다. 총무안전팀은 교사 지역, 실험동 지역, 그리고 대학 체육관과 지곡회관 등을 포함한 기타 지역에서 이뤄지는 방역을 주관한다. 생활관운영팀은 주거 지역, 즉 △생활관 24개 동 △대학원 아파트 4개 동 △포스빌 6개 동에서 이뤄지는 방역을 주관한다.

주거 지역에 대한 방역은 매월 둘째 주 화요일과 수요일에 실시된다. 연간 방역 일정은 주거 지역의 각 동 게시판에 공지돼있으며, 매월 방역 작업을 진행하기 2주 전에 방역 일시 및 대상 시설에 대한 정보가 교내회보와 POVIS Student Notice Board를 통해 다시 공지된다.

 

▲여학생 생활관 1동 게시판에 공지된 연간 방역 계획
▲여학생 생활관 1동 게시판에 공지된 연간 방역 계획

방역 작업자의 출입 문제

문제는 방역 작업 중에 발생한다. 방역 작업자는 입주자가 침실에 있지 않을 경우에 문을 임의로 개방하고 방역을 할 수 있다. 실제로 교내회보에 게시돼있는 생활관과 아파트에 대한 방역 작업 안내 공지를 보면 ‘입주자 부재 시 임의 개방 실시’를 명시해놓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생활관운영팀에서 안내하는 ‘POSTECH 주거생활안내’에도 생활관과 아파트에 대해 “세대 내 입주자 부재 시 마스터키를 이용해 문을 개방하고 방역을 실시한다”라는 규정이 존재한다. 단, 사정이 있는 경우 입주자는 사전에 생활관운영팀에 연락해 그 달의 방역 일정을 조정하거나 중단을 요청할 수 있다. 이런 규정에 대해 한 학우는 “방역을 하는 시간 동안 침실에 상주하지 않으면, 언제 모르는 사람이 문을 열고 들어올지 모르는 것이냐”라며 “내가 없을 때 누군가가 내 침실에 들어온다는 것이 너무 꺼림칙하다”라고 밝혔다.

한편, 침실에 있는 입주자가 작업자의 출입을 원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작업자가 이를 무시한 채 방역을 진행하는, 앞선 포스텍 라운지 게시물의 사례와 같은 일도 종종 발생한다. 해당 사건에 대해 생활관운영팀 김태완 씨는 주관 부서의 책임을 통감했다. 김태완 씨는 “게시물을 확인한 당일, 해당 학생에게 대신 사과하고 사후 조치를 약속했으며, 방역 업체의 사장에게 게시물을 그대로 보냈다”라며 “방역 진행과 관련해 유의사항을 재확인시키고,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요청했다”라고 말했다. 나아가, 지난달 23일에는 방역 업체의 현장 소장과 생활관운영팀의 회의가 진행됐다. 김태완 씨는 “업체 내부에서 진행하는 방역 작업자 교육의 지침과 계획을 들었다”라며 “방역 작업자에 대한 주기적이고 철저한 교육과 작업 지침 준수를 당부했다”라고 말했다.

 

방 점검 시에는 예고가 필요

생활관을 운영하는 다른 대학들도 예외는 아니다. 2016년 8월,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국의 대학교 17개 기숙사의 이용약관을 점검하고 불공정약관 조항을 시정했다. 당시 시정된 불공정약관 중 하나가 바로 학생이 없어 비어있는 기숙사 방을 불시에 출입해 점검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이었다. 공정거래위원회 소비자정책국 약관심사과 측은 “약관법 제6조 2항에 따라 해당 규정은 학생들에게 부당하게 불리한 조항이다”라며 개인의 사생활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강원대 △연세대 △전북대 △한양대 등 8개 대학교의 기숙사 이용약관 일부는 원칙적으로 학생이 재실한 경우에만 점검할 수 있도록 시정됐다.

2016년 11월, 우리대학 감사실 역시 생활관 점검 방식에 개선을 권고한 바 있다. 그 후로 생활관 방문 점검 지침이 각 동에 게시됐고, 방문 점검 방법에 대해서도 사전 공지가 이뤄졌다. 이 지침에 따르면, 생활관운영팀 차원에서 방을 방문하는 경우는 △정기점검 △일반점검 △긴급점검 보수로 나뉘며 방역 작업은 이 중 일반점검에 해당한다. 이 지침에 따라 최소 일주일 전에 POVIS 게시물과 안내문을 통해 공지하는 원칙이 세워졌고, 이것이 지금까지 시행되고 있다.

 

서로가 이해해야 할 일

방을 점검하는 것은 본래 생활관에 거주하는 학생들의 안전과 편의를 위해 실시된다. 특히나 방역이 병원균과 해충을 박멸하는 공공의 이익을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생활관운영팀은 학생들에게 협조를 부탁했다. 실제로 생활관운영팀은 많은 학생이 방역 작업을 진행한다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게끔 사전에 여러 차례 반복적으로 일정을 공지하고, 작업 중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방역 작업을 하는 당일에 작업자들을 집합시켜 재교육을 진행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김태완 씨는 “이런 점검이 학생들 입장에서 불편할 수 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 개인 사생활이 지켜져야 하는 주거 공간의 특수성을 고려해, 다양한 방면으로 힘쓰고 있다”라고 말했다. 공공의 이익도, 개인의 사생활도 무엇이 우선이라고 할 것 없이 중요하다. 생활관운영팀은 학생들의 불편을 최소화하고, 학생들은 방역 작업에 적극적으로 협조함으로써 서로서로 배려하고 이해하는 것만이 해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