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선 현실을 이용한 통증 치료
개선 현실을 이용한 통증 치료
  • 구교인 / 울산대학교 의공학전공 교수
  • 승인 2018.04.18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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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선 현실(Enhanced Reality, ER)은 무엇인가?

▲[그림 1] 개선 현실을 사용해 뇌조정이 가능하며, 이를 통해 통증을 완화할 수 있다(출처: 연합뉴스)
▲[그림 1] 개선 현실을 사용해 뇌조정이 가능하며, 이를 통해 통증을 완화할 수 있다(출처: 연합뉴스)

자고 일어나면 신조어가 하나씩 생기는 느낌이 들 정도로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이다. 인터넷에 유행하는 ‘급식체’를 따라잡기에도 바쁜데, 기술의 발전 속도는 왜 이리 빠른지. 기술 용어도 인터넷 신조어 못지않게 빠르게 변하고 있다. ‘쎈돌’ 이세돌 9단의 패배와 함께 대한민국을 강타한 인공지능에 대한 공포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신조어를 급속히 퍼트렸다. 지금까지 유행했던 그 어떤 기술 용어(?)보다 이해하기 어려웠던 ‘창조경제’는 자취를 감췄고, 이제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단어가 포함되지 않은, 과학기술 관련 글을 찾기 어려울 정도가 됐다. 이렇게 빠르게 변하고 빠르게 변해서 따라가기 어려운 이 세상에, 개선 현실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포항공대신문 독자에게, 이 세상에 해를 끼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겸연쩍음을 감출 수 없다. 조금이나마 감추고자 주저리주저리 이 세상이 원래 그렇다는 변명을 늘어놓게 됐다. 그래도 이왕 시작한 이야기, 개선 현실은 무엇이고, 이를 개발하게 된 앞뒤 맥락과 함께, 어떻게 통증을 치료할 수 있으며, 앞으로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 소개하고자 한다.

가상현실(Virtual Reality, VR)은 그간 영화와 공상과학소설에서 다양한 형태로 소개되고 묘사됐다. 최근에 대중에게 친숙한 이미지는 고글을 쓰고 허공에 손짓하며 3차원 게임을 즐기는 이미지일 것이다. 하지만 가상현실은 더는 예술 작품 속의 상상이 아니다. 게임을 필두로, 의료진 수술 교육, 관광지 체험, 가구 및 의류 체험 등으로 우리의 일상 속에 서서히 들어오고 있다. 가상현실보다는 덜 알려졌지만,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 AR) 또한 우리의 삶을 크게 바꿀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스마트폰 카메라만 들이대면 카메라 속 물건에 관한 정보가 표시되는 기능으로 많이 알려져 있으며, 이미 많은 종류의 스마트폰 앱이 개발돼 적지 않은 사람들의 일상을 바꾸고 있다.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 내지 않고, 현실 세계의 공간과 사물을 이용한다는 점이 가상현실과 차별되는 지점이다.

개선 현실은 가상현실과 증강현실을 합쳐 놓은 어떤 것으로 봐도 좋을 것 같다. 체험자에게 현실 세계의 공간 혹은 사물에 대한 개선된(enhanced) 현실(reality)을 제공해 체험 후에도 지속하는 효과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울산대의 필자와 황창호 교수 연구진은 무릎 연골 수술로 불편한 환자의 다리 운동을 실시간으로 영상 처리해, 정상적인 다리와 다름없이 잘 운동하는 영상을 제공했다.(그림 1) 체험자는 개선 현실 체험 직후에 수술한 무릎의 통증이 경감됐을 뿐만 아니라, 체험 3주 후에도 통증이 경감된 것으로 관찰됐다.

가상현실 및 증강현실과 비교해 가장 큰 차별점은 바로 이런 효과의 지속성이다. 고글을 벗는 순간, 스마트폰의 앱을 종료하는 순간, 가상현실과 증강현실은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만다. 반면 개선 현실은 체험 중에 뇌의 구조를 바꿔 체험 후에도 효과가 지속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거울 치료(Mirror Therapy)의 원리를 빌려 오다
어떻게 뇌의 구조를 바꿀 것인가? 본 연구진은 거울 치료(Mirror Therapy)에서 그 실마리를 찾았다. 사고로 신체 일부를 잃었음에도, 이미 사라진 부위가 가렵거나 아프다고 느끼는 환자가 적지 않다고 한다. 이런 증상을 환상통(Phantom pain)이라 한다. 1996년 Ramachandran은 환상통 환자들을 위해 거울 치료법을 개발했다. Ramachandran은 편부위 절단 환자의 절단되지 않은 정상 신체를 적절한 위치에 반사해, 마치 잘린 신체 부위가 새로 생겨서 통증 없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잘려나간 부위의 신체가 통증 없이 움직인다는 착각을 일으킨 환자들은 잘린 부위에서 느끼는 환상통을 줄일 수 있었다. 이후 거울 치료는 사지 절단 환자의 환상통뿐만 아니라 뇌졸중으로 인한 편마비 환자의 운동 개선 등과 같이 다양한 병증에의 응용에 대해 연구되기 시작했다. 거울 치료의 정확한 기전은 아직 완전히 밝혀지지는 않았다. 지금까지 연구된 바로는, 시각적 자극만으로도 뇌의 운동 영역을 활성화해 운동 영역의 재조직화를 유도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즉, 개선 현실이 추구하는 뇌의 비가역적인 재조직화가 시각 자극만으로도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개선 현실만의 기술적 차별성과 그 효과

▲[그림 2] 개선현실 장치의 모식도(Koo, et al., Scientific Reports, 8, 2018)
▲[그림 2] 개선현실 장치의 모식도(Koo, et al., Scientific Reports, 8, 2018)

Ramachandran의 놀라운 발견 이후, 거울 치료 원리를 응용한 연구들은 수없이 많이 진행됐고, 현재도 진행 중이다. 거울을 이용해 다양한 병증에 응용했을 뿐만 아니라, 가상현실 기술을 이용해 거울만으로는 구현할 수 없는 복잡한 운동에 대해, 거울 치료 원리를 구현할 수 있는가에 대한 연구도 진행됐다. 거울 치료 원리를 가상현실 기술로 구현하려 했던 대부분의 연구는 가상의 공간에 환자의 아바타를 생성하고, 그 아바타를 조작해 환자에게 치료 효과를 보고자 했다.
반면 본 연구진은 가상공간에 아바타를 만들지 않고, 가능하면 환자의 실제 모습을 이용하고자 했다. 일반적으로 편측 무릎 연골 수술을 받은 환자들은 삽입된 인공 연골이 자리잡을 때까지 통증이 수반되는 재활 운동을 수행해야 한다. 본 연구에서는 무릎 연골 수술을 받은 환자 30명에게, 수술을 받지 않은 정상 무릎 다리의 운동을 실시간으로 거울 반사 영상 처리해, 수술을 받은 무릎 다리의 운동 대신에 보여줬다.(그림 2) 즉, 환자는 가상공간의 아바타가 아니라, 현실 세계에서 수술을 받은 자신의 다리가 정상적인 다리와 다름없이 잘 움직이는 영상을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아바타가 아닌 실제 자신의 다리 영상을 체험함으로써 자신의 몸 일부로 느끼는 일체화 지수가 높게 나타났다. 이로 인해 뇌의 착각이 더욱더 잘 일어나, 관련 뇌 영역이 더욱더 잘 활성화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기술적 차별성은 개선 현실 체험 후 3주까지 통증 경감이 지속하는 차별적인 효과를 초래했다. 기존의 아바타를 이용한 연구들이 단기간의 지속성을 보인 것과 비교하면 주목할 만한 결과라 할 수 있다.


가상현실과의 더 멋진 콜라보를 꿈꾸며
어찌 보면 너무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다. 아무리 잘 다듬어진 3차원 아바타라 할지라도, 카메라로 촬영한 자신의 신체 일부보다 더 실감 날 수는 없을 테니까. 그렇다면 3차원으로 촬영된 내 신체가 실시간으로 개선돼 보인다면? 분명, 훨씬 더 높은 일체화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무릎 운동과 같이 제한적이고 단순한 운동을 넘어, 골프나 바이올린 연주와 같이 더욱 복잡한 신체 활동에 대해 3차원 개선 현실을 제공할 수 있다면, 매일매일의 일상생활에 더욱더 큰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때에는 새로운 신조어를 만들어 포항공대신문 독자에게, 이 세상에 해를 끼쳤다는 겸연쩍음이 조금이나마 줄어들어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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